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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길은    
글쓴이 : 백두현    16-03-09 18:24    조회 : 5,818

그 길은

                                                              백두현/bduhyeon@hanmail.net


여전히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두 발의 감촉만으로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학창시절 16년간 등하교하던 길이라 바람의 세기만으로도 방향의 감지가 가능하다. 그리고 비교적 경지 정리가 잘 된 넓은 들판 사이로 쭉 뻗은 신작로였다. 시골길 치고는 비교적 잘 생긴 길이었으며 군데군데 오래된 무궁화나무가 꽃을 피우며 오고 가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라서 어쩌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연기처럼 흩날렸는데 대견하게도 뽀얗게 앉은 먼지를 밀어내고 매일 아침 무궁화 꽃이 하나, 둘 피어올랐다. 피어 난 꽃잎 위에 켜켜이 먼지가 앉았고 다음날 아침이면 그 먼지를 헤치고 또다시 봉긋봉긋 피어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다시 피고 또 먼지가 앉고 또 다시 자고 일어나면 꽃이 피고 먼지가 앉기를 반복했던 내 젊은 날의 아련한 꽃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하면서 대머리처럼 머리가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오시자 할머니는 매일 새벽 그 길을 오가며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셨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이른 장보기였으리라. 새벽닭이 울기도 전, 세시쯤 일어나신 할머니는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이십 리 길을 걸어 읍내까지 다녀오셨다. 꼭꼭 숨겨두었던 비상금으로 어떤 날은 조기도 사오고 또 어떤 날은 자반고등어도 사다 어머니가 차린 아침상 한 가운데 당신이 만든 생선 반찬을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누가 감히 생선접시에 젓가락을 가져가는지 뚫어지게 지켜보고 계셨다. 가련하게도 할머니는 그것이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여기신 듯하다. 한 자식의 엄마로서 마지막 역할을 그 일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러다 아버지가 다시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시면 어머니는 그 길을 통해 끝없이 보신탕을 나르고 또 날랐다. 긴 병간호기간 내내 입맛을 잃은 아버지를 위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보약이라고 여기신 탓이다. 집에서 끓여 가는 것이지만 병원 한 귀퉁이에서 휴대용 버너로 덥혀야 할 때마다 병원 관계자는 냄새가 진동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젊은 간호사들도 요즘 누가 보신탕을 먹느냐며 질색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것이 아버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유일한 힘이라고 믿었던 탓에 못들은 척 계속해서 보신탕을 날랐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내조를 그 일에서 찾으신 것이다.

가장 힘차게 그 길을 오간 사람은 나였다. 새로 산 자동차에 병원을 오가는 아버지를 태우고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다녔다. 20개월간 월급의 절반씩을 갚기로 한 빚 덩어리 할부차를 야무지게 몰고 다녔다. 당시 자가용을 타고 고향 집을 찾는 고향 선배 한 분을 크게 출세했다고 부러워하시던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자부심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 무리해서 산 차다. 아버지께는 회사에서 차가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마치 내가 자가용 기사처럼 뒷좌석을 최대한 넓혀놓고 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 아버지는 아는 분이 지나칠 때마다 차를 세우게 하고 아들회사에서 나온 차로 병원 간다며 자랑을 하셨다. 나 역시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그 것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것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같은 길이지만 서로 다른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길을 걷게 되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안타까움이 하나 있다. 할머니는 그 길에서 무궁화 꽃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출과 함께 꽃을 피우기 시작한 부지런한 꽃이었지만 새벽 장을 보는 내 할머니만큼은 아니라서 그렇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 길을 오가며 활짝 핀 무궁화 꽃을 볼 수 없었다. 보신탕 국물을 담은 들통을 들고 눈물로 오가던 길이라 색색의 꽃이 색맹도 아니면서 뿌옇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속 모르게 출세한 아들의 차에서 위안을 찾는 아버지를 보면서 울려오는 목울대를 진정시키느라 언제나 먼 산을 바라보며 운전해야 했던 탓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다. 누구라도 삶은 끊임없이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크고 작은 인연을 따라 쉼 없이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다. 기왕이면 이 한 세상 좋은 인연 따라 만나기만 반복하면 얼마나 좋을까만 아쉽게도 세상은 그렇게 편안하지 않기 마련이다. 만남의 수만큼 같은 양의 이별도 존재해 끊임없이 반복한다. 때로는 아주 길고 또 때로는 찰나에 의해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고 있다. 그 많은 만남 중 가장 큰 만남은 가족으로 만난 인연일 텐데 큰 만남일수록 이별의 길이가 길어서 문제다. 가족의 죽음이란 남은 사람에게 얼마나 모질고 끝이 없는 여정인지 참으로 가늠하기 힘들다.

그 여정을 따라 할머니도 어머니도 어느 날 아버지와의 이별을 완성시켰다. 뒤따라 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별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별했지만 이별이 완성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만나기 때문이다. 때로 사진으로 만나고 추억으로도 만난다. 글 속에서도 만나고 꿈속에서도 만난다. 그리움으로도 서러움으로도 만난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만나고 이웃집 어른을 보다가도 만나고 자식들의 해맑은 미소 속에서도 만난다. 그리고 자반고등어에서도 만나고 보신탕 국물에서도 만나며 지금은 무궁화나무가 없어져버린 옛 고향 길을 지나면서 여지없이 다시 만난다.

이제 그 길에는 더 이상 흙먼지가 날리지 않는다. 말끔하게 포장되어서다. 벼이삭이 고개 숙이던 들판은 회색 빌딩으로 변했다. 또한 무궁화 꽃 대신 어디선가 잘 길러진 느티나무가 옮겨와 살고 있다. 무릇 가로수라 함은 지나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차분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다. 차를 타고 가는 길마다 가로수가 은행나무면 은행나무대로 벚나무면 벚나무대로 또 느티나무면 느티나무대로 가로수의 소임을 다하는 것은 맞지만 나의 고향 가는 길 만큼은 여전히 무궁화나무이길 바란다. 무심한 세월을 따라 가로수도 바뀌고 가치관도 변하는 법이지만 아버지와의 이별이 아직까지 진행 중인 내 가슴에는 그 날의 무궁화 꽃이 계속해서 피고 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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