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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신화의 세계 (한국산문 23. 3월)    
글쓴이 : 이용만    23-02-26 19:38    조회 : 2,663

그 곳을 담아오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


 

 스웨덴의 남서부 멜라렌(Mälaren) 호수 한가운데 있는 비르카(Birka) 섬 여행을 나섰다. 스톡홀름에서 뱃길로 2시간 거리다. 섬은 바이킹 시대(8~10세기) 유적으로 1993년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바이킹의 생활상을 보여주려고 여성 가이드는 빛바랜 무명천의 옷과 해진 가죽 백도 둘러멨다.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은 모두 자신이 바이킹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섬들이 풍랑을 막아서인지 늘 잔잔하고 8월 태양 빛을 받아 하얀 구름은 호수 면에 앉을 듯 평화롭게만 보였다. 호수 끝 발틱 앞바다에서 3백여 년 전 바사(Vasa) 호가 출항하고 곧 돌풍에 침몰했다는 이야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먹빛의 멜라렌 호수는 발트 해(海)와 1m도 안 되는 수문(水門)으로 연결되어 바닷물이 역류하면 홍수가 난 일도 있었다.

 비르카는 10세기 이후 사라진 도시가 되었는데, 버려진 덕에 아이러니하게도 바이킹 시대의 무덤들이 3천여 기(基)나 있다. 군도(群島)로 이루어진 스톡홀름과 멜라렌 호수에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지도에는 호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현지 사람들은 발트 해(海)의 일부로도 생각하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멜라렌 호수는 원래 바다였는데 서쪽 지역이 융기하여 만(灣)이 막혀 거대한 호수가 되었다. 비르카도 25m가량 융기하고 바닷물의 수위가 5m나 낮아졌다. 그 이후로 지리적 이점(利点)을 잃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거인 이미르(Ymir) 조각상을 해변에서 만난다. 두 팔로 팔베개하고 다리를 한쪽 다리에 얹어 놓은 채 거인의 허리는 땅속에 잠겨있다. 해변에 누워 신화와 전설을 되뇌며 꿈을 꾸는 듯했다. 거인 이미르는 가장 먼저 창조되고 가장 먼저 죽은 존재였다. 거인의 세계너머는 이미스랜드(Ymisland)로 "산 자의 땅, 빛과 따뜻함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먹을 것과 아름다운 여인들이 넘치는 곳이며 죽지도 않고 질병을 모른다고 했다. 우리의 신화와는 결이 다른 현장을 자그마한 해변에서 확인하는 기쁨이 작지 않았다. 나는 제주도 남쪽 상상의 섬 이어도가 떠올랐고, 해양 민족에게 이미스랜드(Ymisland)는 그들의 염원이었을 것 같았다.

 비르카에 묻힌 바이킹들의 삶이 섬 박물관에 빼곡했다. 비르카 인근 섬에는 스웨덴 왕이 거주하였다. 섬 안의 농경지 주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왕의 임무였다. 잔잔한 바다에서 풍력은 엄청난 에너지원이다. 돛을 올리면 바닷길은 곧 하이웨이였다. 반도의 무역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크게 자라났다.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고 언덕에서는 적의 약탈로부터 침입을 경계했다. 바이킹이 유럽 해안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이야기가 거꾸로 된 게 아닐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사는 누구든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법이니까 따질 일도 아니었다. 이야기꾼들이 머리를 맞대었을까. ‘초록색 물병을 든 바이킹 여인’과 ‘바이킹 여전사’가 박물관의 멋진 조형물로 실제 인물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로 세공된 아름다운 초록색 물병이 출토되었을 때 발굴자들은 환호했다. 황톳빛 물병이 아닌 에메랄드빛으로 반사되어 뿜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남쪽 먼 나라에서 온 교역품은 희소가치도 있어 신분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초록색은 유혹의 색이라고 했던가. 초록색 물병은 바이킹 시대의 욕망이었다. 삶의 동력은 예나 지금이나 욕망에 기인했던가 보다. 더 활발한 교역이 필요했고 유리한 조건을 다투느라 전쟁이 벌어졌다. 바이킹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화 속 발키리 여신들이 용감하게 죽는 전사를 하늘을 나는 마차에 태웠다. 바이킹들은 오딘 신(神)의 발할 궁전에서 부활한다고 믿어 전투에서 빨리 죽기를 고대하기까지 했다. 

 봉분 한 곳에서 가이드가 심호흡을 하며 진지했다. ‘1878년 Bj 581’이라는 무덤의 화강암 슬래브는 폭발물을 사용하여 제거했다고 한다. 발굴하는 동안 무덤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 길이가 3, 45m, 너비가 1, 75m, 깊이가 1, 8m인 큰 무덤으로 그 안에는 의자와 해골이 있었다. 무덤의 아래쪽 끝에는 두 마리의 말이 단상에 놓여 있었다. 분석해 보니 넓은 골반을 가진 여성이었다.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40세 전후의 바이킹 여전사(Warrior Woman)였다. DNA, 치아 분석, 골(骨)학 및 고고학의 도움이 컸다. 1000년 뒤 여전사는 북유럽의 신화와 함께 유명해졌다. 여전사는 북유럽 신화 속 발키리처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알 수 없는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스토리텔링에는 묘한 마력이 숨어있다. 신화나 전설 또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더해지고 현세의 우리와도 연결되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데에는 우선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논문 등으로 1차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2차 관문은 그 지역 주민들의 보존, 관리 의식이 성숙해 있는가이다. 문화유산이 지속 보존되기 위하여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중요하다. 특별한 예술적 문화적 고리가 필요한 것이다. 초록색 물병은 무덤 속 여주인을 따라 나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녹색 물병을 든 여인’이 박물관에 생생히 재현되었다. 비르카의 물병은 테이블 세트로 전시 판매되고 있는데 아름다웠다. 디자인 강국인 스웨덴에서 바이킹에 대한 상상을 동력(動力)으로 쓰고 있다. 우리의 신라시대 금관을 떠올려본다. 찬란한 문화유산에 문학과 예술, 신화와 철학 스토리를 담은 상상력이 더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이용만

lym4q@hanmail.net

『한국산문』2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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