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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블(Swivel)    
글쓴이 : 이용만    23-04-10 20:42    조회 : 1,991

스위블(Swivel)

이용만


사교춤인 블르스에서 지그재그로 파도를 타듯 진행하다가 여성을 스위블(Swivel)로 마주보면 춤의 맛이 느껴진다. 댄스용어 스위블은 한 쪽 발끝으로 여성의 무빙(Moving)이 180도 반전하는 동작이다. 발이 아닌 보디의 무빙이 있어야만 내추럴한 턴이 가능하다. 무게중심보다 무빙을 강조하는 이유는 진행중인 바디를 발 끝에서 낚아채듯 해야 여성이 중심을 잃지 않는다.

여성은 루틴을 몰라도 된다라는 말은 스위블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듯한 무의식의 흐름에서 유능한 남성의 리드로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는 데에 춤의 진수가 있다. 여성이 피겨의 다음 동작을 알고 한 템포 빠르게 스위블을 해버린다거나, 남성이 미덥지 않아 무게중심을 제대로 옮기지 않게되면 발이 꼬이기도 한다. 한번 꼬인 불신은 기억된 학습이 되어 긴가민가하게된다. 이윽고 말도 꼬이고 머릿속이 꼬이면 하얗게 된다. 남 탓이 늘면서 흥미도 줄어드는 게 춤이 어려운 이유이다.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지 1년 남짓 설레는 마음으로 난생처음 댄스 플로어에 서고 루틴대로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학원에서 처럼 익숙한 출발위치가 아닌 출입구 쪽에서 시작하는 게 우선 당황스러웠다. 머뭇거리는 우리커플을 슉슉 지나치는 회원들 틈에서 첫 발을 뗄 수도 없었다. 머릿 속이 하얗게 백짓장처럼 되어버렸다. 리셉션에서 홀짝홀짝 주고받은 와인때문에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춤 종목별 루틴을 포켓용 단어장에 깨알같이 적어오기도 했다. 기껏 식사중에 한 번 꺼내보았을 뿐 음악이 계속 바뀌는 중에 일일이 찾기도 어려웠다. 플로어에 올라서면 음악은 벌써 저만치 흘러갔고 파트너에게 들을 핀잔부터 떠올라 속수무책이었다.

댄스스포츠 클럽에 골프모임도 있다. 골프라면 뭔가 보여줄 자신감에 골프투어를 신청했다.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칭다오로 향한다. 모두 19 커플로 적지 않은 인원이다. 골프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없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댄스 탓이다. 단체 수업 외에도 개인 레슨이 늘고 언제부턴가 골프는 뒷전이 된 지 오래였다.

골프 백에 댄스화와 무대 의상으로 늘어난 짐을 밀며 끌며 시끌벅적한 데, '블랙풀'에 세 번이나 참가했다는 선배 회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고 잠이 다 깨었다. 춤을 추러 영국까지 댄스 원정도 가는구나 싶었다. 블랙풀은 댄스 본고장인 영국의 서해안 끝에 있는 댄스 경기의 성지이다. 영국 문화원 비디오 교재를 통해서 블랙풀 소개장면을 보고는 골프의 성지인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와 함께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

 1시간 남짓 날아온 칭다오는 쾌청하고 따뜻했다. 공항에서 리조트로 향하는 버스에서 사무총장의 일정 소개가 있었다.  골프의 10도(道) 중 첫 번째 : 버디 birdie와 파 par를 사랑하기 이전에 동반자를 먼저 사랑하라. "이를 인(仁)이라 한다"라는 준비된 말에 게임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절로 추슬러진다. 댄스 10도(道)는 없는지 묻고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댄스에 대한 기량이라 할 것도 없는 터이므로, 매너와 미소가 제일이다.

골프장을 탓하랴? 스코어는 나쁠 수밖에 없다. 동반자인 치과 원장은 어금니 2개로 만든 것 같은 퍼터로 정교하게 홀인(hole in) 하니 우린 충치 뽑힌 환자 꼴이다. 무참해진 골프 게임을 만회하고 싶어 당구장도 들러보았다. 당구 경기라도 잘 하고 싶었다. 쓰리(Three)쿠션을 제일 먼저 끝내고는 마사지 받는다며 빠져나왔다. 숙소에서 아내와 함께 받는 마사지. 낯설지만 기분은 좋았다. 

 오후 문화 탐방 시간이 있어 시내 관광을 나섰다. 칭다오는 100여 년  동안 독일, 스페인, 러시아 등의 영향을 받아 유럽의 작은 도시처럼 예쁜 집들과 건물들이 많았다. 마을을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명품을 본 따 만드는 짝퉁으로도 유명하니 먼저 아이쇼핑을 하기로 한다. 골목을 돌고 돌아서 남대문시장 같은 건물에 들어가 혹시 하며 돌아보지만 건질만한 물건은 역시 없었다. 칭다오의 항일 운동을 기리기 위한 5.4 광장에 하루 종일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미처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각자 손수건이나 방금 산 실크 머플러를 머리에 썼다. 히잡을 쓴 중동의 여인들인 양 까르르 마냥 웃는다. 잔잔한 바다를 끼고 돌아오는 길에 유럽풍의 마을이 인상적이었다.

 저녁 식사와 함께 댄스는 기본이다. 댄스화도 준비 해오지 않았던가. 아니, 그런데 카펫에서는 어떻게 춤을 춰야 하나? 테이블에 폭이 넓은 스카치테이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잘 미끄러지도록 구두 바닥에 붙이고 춤을 춘다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처음 댄스화를 신었을 때 밑창에 붙어있던 비닐을 떼어내지 않았다. 왜 그리 미끈거리는지도 모른 채 춤추었던 황당한 추억이 떠올랐다. 이번엔 반대로 황당하게 해야 맞나보았다. 궁하면 통한다던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순발력과 재치가 무도장 분위기를 띄웠다.

남녀 골프 우승자의 룸바 리딩(leading)댄스는 테이프를 붙이지 않고도 출중했다. 몇 분은 신발 밑창에 테이프를 붙였으나 숙녀분들은 아예 맨발로 추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카펫 위에서 '스위블' 같은 회전 동작을 하면 카펫이 꼬이던가 자칫 엉덩방아를 찧을 일이다. 파라 클럽 숙녀분들 파이팅. 숙녀의 맨발은 용서되는데다 섹시하기까지 하다. 신사의 맨발은 느낌이 달라도 엄청 다른 것은 왜일까? 신사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끝내 양말은 안 벗는다. 카펫 위에서 추는 블르스와 탱고는 남성들을 조심스러운 신사로 만들었다. 신사 체면에 어찌 훌러덩 양말마저 벗고 춤을 출 수 있겠냐 싶었다. 아니 맨발로 춤을 추는 숙녀분 발을 밟기라도 하면? 내 춤 솜씨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익살 꾼 회원의 자이브jive 춤에서 '스톱 앤 고 Stop & Go' 피겨는 폭소를 자아냈고 춤에 대한 영감도 불어넣어 주었다. 언제쯤에나 근엄한 표정이 아닌 미소로 춤을 출 수 있을는지. "많은 것을 바라지 마세요. 우린 60세에 시작했어요" 또 다른 선배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 날은 상쾌하게 개었다. 아카시아 향이 퍼진 골프 코스에는 푸르름이 돋보였다. 자칭 '중국통'이라는 회원이 중국인 경기 보조원의 가족 사항을 설명해 준다. 이쪽 캐디는 아들이 둘이고 저쪽 캐디는 다섯이다. 아니 몇 살인데? 스물여덟. 그런데 애가 다섯 명이나? 마음속으로 '아니 언제부터 애를 낳기 시작한 거야?' 2살 터울이라도 5명이면 10년은 걸리지 않나. 연신 손바닥 다 펴 보이며 '다섯이 맞아?' 놀라 물으니 부끄럽다는 듯 '맞다'라는 캐디 언니.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가 다섯이 아니라 아들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다.

골프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엉뚱한 농담에 정신 팔리더니 게임을 또 졌다. 춤을 배워 상상도 못한 일이 떠가는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살다보면 스위블(Swivel)처럼 꼬이는 일도 비일비재한 게 아니더냐. 댄스화 밑창에 비닐테이프를 붙여 양탄자가 발끝에서 돌돌말리는 일이 없도록 했던 추억이 아스라하다. 신입 회원으로서 여행 후기도 써보라니 회피하기 어려웠고 클럽의 일원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클럽이 자체 발행하는 파라 소식지에 ‘영원하고 파라! 사랑하고 파라!’라고 글 제목을 붙여 보냈다.

≪파라 잡지 20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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