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빌라둘께라
봉혜선
“갯내음과 땅내음이 어우러진 그 미묘한 냄새도 고향만이 주는 특이한 냄새였다. 그 냄새 속에는 이상하게도 갈대잎 쓸리는 소리, 기러기 울음소리 같은 것도 섞여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갯가이면서도 포구가 한정도 없이 길어 정작 바다는 멀리 밀쳐두고, 민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며 반원을 그린 산줄기에 그 넓은 낙안벌을 품고 있는 고향... ”(6권 3장)
멀기도 멀다. 고려 때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 글자를 따서 부르던 명칭이 현재까지 이어진 전라도(全羅道), 그중에서도 남도(南道), 그에 더해 벌교(筏橋). 벌교는 보성군(寶城郡)에 속하지만 군인 보성보다 더 번창해서 옛부터 ‘벌교군 보성읍’으로 하자는 말이 성했다고 한다. 벌교에 있는 조정래 소설가의 태백산맥 문학관이 개관 15주년을 맞이했다. 한국산문 문학회원 80여 명은 2023년 10월 28일~ 29일 1박 2일간 문학관 개관식을 기념하는 행사 북 토크쇼에 참여하고 녹차 도시 보성을 찾았다.
조정래 소설가의 문학관은 아버지 조중현 작가와 부인 김초혜 시인이 함께 하는 고흥의 가족 문학관, 김제에 있는 아리랑 문학관 등 3군데다. 벌교에 위치한 태백산맥 문학관은 작가가 51세부터 장장 11년에 걸쳐 쓴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해 세워졌다. 소설 『태백산맥』을 쓰고 그 앞 세대 이야기인 『아리랑』, 뒷시대 이야기 『한강』을 집필함으로써 명실공히 “민중의 실체가 지워진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모두의 힘으로 지켜내는 일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6권 머리말).”라는 작가의 소명을 증명했다.
지난 8월 18일, 세 명의 답사팀이 양산 없이 걷기 어려운 한여름 벌교를 방문했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로 인해 두 번이나 연기한 끝에 세 번 만에 나선 길이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던 먼 풍경의 산이 어느 순간 우람한 자태로 차 안에 들어선 듯한 놀라움은 지리산 자락에 들어섰음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문학관 위쪽에 자리한 현 부잣집에서는 드넓은 낙안벌에서 일하는 소작농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보인다고 소설에서 밝히고 있다. 소화의 집 울타리는 무당집에 쓴다는 대나무다. 소설이 밖으로 걸어 나와 있는 느낌은 각별했다. 소화다리 아래에 수많은 작은 게들의 등은 붉었다. 70여 년 안쪽에 묻힌, 죽창에 넘어지고 총칼에, 고문에 스러져 내던져진 농민들의 한이런가. 중도방죽과 갯벌의 진하고 눅진한 빛깔은 아직 맑혀지지 않은 넋이 배여 있는가. 안치환의 노래 <부용산>의 배경인 벌교의 한여름은 가을을 연상하지 않아도 서늘했다.
문학관 1층을 빈틈없이 메운 북 토크쇼 <민족분단 그리고 태백산맥>은 소설가가와 시인부부의 다정함을 지켜본 원불교 정녀가 쓰기를 강조하며 문을 열었다. 본격 북 토크는 유성호 평론가의 사회로 작가 조정래 작가와 임헌영 평론가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유성호 평론가의 갖추린 세 가지 질문은 첫째, 다양한 등장인물 창조와 설정, 둘째, 언어로 남는 역사에서 특히 고향 말인 전라도 사투리로 쓴 의도, 셋째,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필사본 전시에 대해서였다. 2부는 평론가 이동순 교수가 진행했으며 61번째가 넘는 필사자와의 대화로 이어졌다. 작가는 수많은 칭송을 받은 중에 특히 ‘민족 작가’라는 별칭을 소개하며 등장인물 설정에 대한 답은 유구무언, 작가의 기본 자질에 속한다고 했다. 유튜브에서도 밝힌 바 있는 답을 육성으로 들었다.
제4권에 나오는 ‘이약 할아버지’의 입을 빌린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나가 쪼깐만 유식허고, 쪼깐만 젊었드라먼 이약책 쓰는 사람이 되얐을 것인디.” 51세에 쓰기 시작한 『태백산맥』은 1권을 쓰는 데에 3년이 걸렸고 총 10권 쓰는 데에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1,200명의 등장인물이 즉 자식과 같으니 가장 부자라는 임헌영 평론가의 부러움도 놓칠 수 없는 작가적 정신을 일깨운다. 작가에게 필수 요소인 상상력과 구성력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이 하게 했다. “이약이사 듣고 잡은 사람 맴이 허란 것을 혀야 쓰는 것이제.” 이어진 이약 할아버지에서도 작가는 등장해 작가인 우리에게 일침을 놓는다. 소설에서 1인칭으로 수시로 등장하는 작가는 설명하거나 각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왜곡된 시대를 깨우치고 경종을 가한다.
제목 ‘내빌라둘께라?’는 산으로 쫓겨 간 염상진의 부하 강동식의 아내 외서댁이 염상구의 아이를 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외서댁의 친정어머니가 그 남편에게 외친 말이다. 동시에 작가의 말이면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외친 향토색 짙은 사투리이다. 이긴 자들이 쓰는 대로 가르치고 학습되는 역사를 진실로 알고 있는 상태를 ‘내버려둘 것이냐’는 질문은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작가의 소명을 밝힌 질문이다. 역사 바로 밝히기를 천명한 조정래 작가에게 우리가 모인 사명이기도 하다.
주로 하층민이나 피지배 계층민의 대표 언어로 인식하고 있던 남도 사투리를 맛깔나다고 한 사람은 주먹으로 깡패 두목을 하고 시대에 맞춰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염상구다. 전라도 사투리야말로 남도의 대표이면서 남자를 남자답게 만드는 언어이니 군인 토벌대 사령관 심재모에게 배우라고 쥐어지른다. 외세에 의해 뒤바뀌며 권세가로 오르는 염상구를 바라보는 심정과는 대조적이다. 일제 치하에서 권세를 누리던 사람들이 해방과 더불어 쫓겨났다가 미군정 하에 다시 권세를 누리며 같은 민족을 탄압하며 오늘에 이른 현실에 대해 그 시대를 겪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니 그저 이렇게만 살다 죽게 하소서, 라며 생을 안온하다고 생각해오던 중이었다.
필사본이 늘어나며 작가의 방을 없애고 면적을 늘린 2층 필사본 전시실에는 ‘필사는 최고의 정독’이라고 쓰여 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원고와 함께 작가가 글을 쓰며 썼던 도구들을 돌아보며 자신감 확보, 시대정신 확립 등 필사자가 한 이야기를 톺아보았다.
필사 중에 있는 지금으로서는 수시로 작가가 되었다가 또 등장인물 중 누가 된다. 정하섭이었다가 이지숙일 수 있겠다가 고문을 이겨내지 못할 푼수이니 그저 숱하게 죽어간 동학군이기도 했다. 염상진의 아내 죽산댁일 수도 있었으려나. 아니면 해방일보 기자? 어쩌면 인천상륙작전에서 폭격을 가하는 비행기 조종사거나. 율어의 주민이거나. 나 혹은 주변 인물을 대입해가며 이건 같네, 흠 이건 누구와 비슷하군. 하며 읽어나가는 책은 앉아서 경험하는 인생으로 안성맞춤이다. 소설 속 인물 중 누구도 그냥 등장한 인물이 아니듯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 그것이 이 소설이 역사성을 지닌 것과 동시에 생명력을 지닌 이유이다. 다만 시대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서도 놓치지 말아야하는 것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소설의 가르침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중도 방죽 · 김범우의 집 · 소화다리 · 횡계다리 · 남도 여관 등 소설 속 장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자유 시간과 꼬막축제를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즐기는 저녁 시간은 가을의 익어가는 벌판과 방죽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서울을 떠난 여유로운 발걸음은 생각지도 못하게 크게 열린 꼬막축제의 길을 따라 밤거리를 이리저리 쏠려 다니게 했다. ‘벌교에 살아요’ 라고 쓰인 다리를 중심으로 옛 읍내와 방죽 전체를 따라 길게 밝혀진 불빛을 따라 벌교 전체가 축제 분위기를 펼쳐보였다. 축제의 일환으로 쏘아 올려진 불꽃들은 시대를 아파하며 스러져 간 민중들이 비로소 빛을 얻은 듯 유난히 하늘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생선구이 정식, 벌교 대표 음식인 꼬막 정식, 아침으로 먹은 짱뚱어탕, 보성 율포 해수욕장 옆 쌈밥 정식 등 남도에서만 제 맛이 나는 음식들을 누린 회원들의 포만감에 젖은 얼굴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대한 다원 · 녹차박물관 등 녹차 도시 등 답사 다녀온 대로 차질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회원들을 따르며 느끼는 감흥을 바라보는 감격은 덤이었다. ‘보성 벌교 태백산맥 문학기행’이라 쓰인 현수막 아래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회원들의 일치단결하는 모습이 한국산문을 떠받치고 밀고 가는 것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어떤 문구가 작가를, 우리의 문학기행을 대변해주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영어로 쓰였다면 진즉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임헌영 교수님의 말을 굳이 남기고 싶다. 돌아오는 길, 만산홍엽이 울울창창한 ‘산이 산을 품고, 산이 산을 업고, 산이 산을 거느리고 있는 (9권 중에서)'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는 감회는 달랐다. 염상진은 숨을 곳이 많은 곳, 토벌대에겐 감히 찾아 나설 수 없는 깊고 깊은 미지의 장소.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던 곳, 갈 때와는 달리 막히지 않아 짧아진 길로 달리는 동안 달라 보이는 역사.
<<한국산문>> 12월호 특집 글 " 벌교 보성 태백산맥 문학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