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참 미묘하다
날씨가 흐려서 비라도 내릴
것 같다. 어둡고 긴 터널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이런 날은
몸이 천근만근이 되어 꼼짝달싹하기도 싫다. 일어서는 것조차도 힘에 겹다. 무엇을 하려고 일어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날은 이러지 않았다. 밥을 맛있게 먹었다. 된장찌개 하나만 있어도 목구멍으로 잘 넘어갔다. 배로 내려간 것들이 소화가 되는지 뱃속이 편안하다. 편안하다는 것은
마음이 가볍고 즐거운 일이다. 그 생각을 그대로 이어 하루 일을 시작하면 좋은 일이 많다. 반면에 무거운 기운이 돌면 괜히 짜증이 난다. 사람은 간사해서 1초 1분마다 생각이 뒤집힌다.
내 스스로 왜 이러는지 몰라 하고 노래 가사를 되뇌어 본다. 딱히 그럴 만한 이유도 없다. 방 안의 공기도 무겁다. 할말도 별로 없고, 말을 받아 대화할 상대도 없다. 공기는 마음의 먼지가 되어 날아 다닌다. 옷에 붙은 먼지는 탈탈
털면 가볍게 떨어지지만 마음에 짓눌린 것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옷은 입으면 가볍다. 내 어깨에 내린 침묵은 몹시 무겁고 짓누르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의
손이 어깨에 닿으면 가벼운 손이 있고,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짐이
된다는 자체가 가벼움을 이기지 못한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운다. 머리가
어수선하고, 표정 없는 얼굴, 축 늘어진 어깨가 볼품없다. 옷 속에 숨겨진 살과 앙상한 뼈의 부딪힘, 길고 긴 세월의 흐름이
지나가는 파도 소리 같다. 부딪히면 아프고 파도가 밀려가고 나면 남는 것은 아픔이다. 산다는 것은 참 좋다. 얼마나 좋은가! 날마다 웃으며 맞이하는 사람들과 자연의 아름다움. 한 움큼의 행복이라도
하늘만큼 기쁘고, 사랑하는 마음이 세상을 바꾸게 한다. 우울한
덩어리는 흐르는 개천에 버리고 새로운 물이 샘솟는 옹달샘은 얼마나 맑고 깊이가 있는가!
사람이 사는 일이란 얼마나 위대하고 성스러운가! 마음먹기 따라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은 참 미묘하다. 내가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집 안을 둘러봐도 좋은 것이 없고, 말라 비틀어진 귤껍데기만 식탁에 놓여있다. 밥그릇에 말라붙은 밥풀
떼기, 손잡이 달린 냄비 속에 들어있는 먹다 남은 무 시래기가 늙어가는 시간을 말해준다.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는 말들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는 것들이 꿈틀거리며 하는 말이다.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때가 되어도 밥하기 싫다. 파뿌리도 다듬기 싫고, 콩나물 무침도 귀찮다. 그대로 두고 침대에 누워 보니 따끈따끈하다. 천장을 바라본다. 꽃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가물가물거리는 기억을 떠올려본다. 시도때도 없이 생각만 할 뿐 글
한자 못쓰고 핑계만 되고 있었다. 무엇을 쓸까 고민이 고민을 낳고 끝없이 이어지는 어지러운 생각이 따라다니며
방해를 한다. 한번 손을 놓아 버리면 언어를 잡기가 어려운 것이 글쓰기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얄궂은 마음만 헛되이 기어 다닌다. 이겨내야 하지만
가시덩굴을 해체하기에는 넉넉한 마음이 아니다. 옹졸하고, 피해
가기를 즐겨하니 글친구가 내 곁에 오기를 꺼린다. 그래도 노력을 하고 마음이 섬세하게 움직이면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쪽이 더 강하게 짓누르면 이기지 못하고 좌절을 한다. 그래도 끝까지 이기는 법을 터득하여 제목이라도 써 놓고 다시 한번 또 기 싸움을 한다. 나쁜 것은 잿불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 내가 선택을 하여 첫 줄을
써내려 간다.
글쓰기가 두렵고 마음이 약해지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무슨 일이나 자신이 하고 싶어야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둘 수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마음을 다잡고 무슨 일이나 성의껏 밀고 나가면 성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실하게 하다 보면 분명 결실을 맺으니, 참고 인내하며 하기 싫더라도
이겨내고 힘들어도 산굽이를 넘어 가듯, 평지 같은 길을 만날 때까지 나의 글쓰기는 이어갈 것이다. 자신에게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