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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의 체계와 초월적 변주 <평론>    
글쓴이 : 박태원    14-02-23 12:37    조회 : 4,643

상상력의 체계와 초월적 변주

法門 박태원 (시인. 문학평론가)

창조적인 상상(想像, imagination)은 예술과 과학의 중요한 정신 작용이며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다. 상상을 통하여 구상한 이미지에 삶의 생명력을 부가하고 심미적인 정서를 담아서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 그 작품에서 인간의 조건을 극복하려는 극적인 드라마를 읽을 수 있고 언어와 색채가 상징하는 근원적인 의미에 공감하는 것이다. 불가역적인 시간과 필연적인 죽음이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는 운명이라면 이것을 초월하여야 하는 것도 인간의 숙명이다. 종교와 철학, 과학 그리고 문학, 미술, 음악은 이러한 도정에 놓여있다.

상상력이 무엇이고 언제, 어떻게 발현되는가?

석가모니는 제상비상(諸相非相)이면 즉현여래(卽現如來)하여 이미지와 생각이 실상이 아닌 마음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달으면 자기의 본래 성품이 드러난다고 한다. 깨달은 후에는 어떠한가?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인 시간이 멈춘 순간에 동시적으로 우주와 소우주인 나의 본래면목이 드러나는데, 상상력은 니르바나의 상태에서 주관(對自)과 객관(卽自)이 상즉(相卽)하여 발동하는 것이다. 무의식인 아뢰야식과 의식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개별적인 나의 자아이며 마음의 그림자로서 몽상과 같고 집착할 바가 아니어서 자유롭게 거리를 두고 상상계에서 노니는 것이다. 우주와 소우주인 인간이 실상이 아닌 꿈인 것이다.

상상계의 구조는 어떠한가?

인간의 육체는 地, 水, 火, 風의 4大로써 인연 화합하여 존재한다. 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을 섭취하고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투쟁하며 안락과 부귀를 누리기 위해서 경제 활동을 하고 영혼의 평화를 위해 서로 사랑한다. 이러한 기쁨과 고통의 역사적인 인간사가 무의식에 저장되어 예술 작품에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바슈라르는 물, 불, 대지, 공기의 4원소를 상상계의 원형으로 보고 예술 작품이 상징하는 의미를 해석하였다. 엘리아데, 레비스트로스 등은 신화를 통하여 그 상징의 의미를 연구하였고, 뒤랑은 상상계의 구조를 이미지의 낮의 체제와 밤의 체제로 정리하였다.

작가는 시간과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고 사회 환경의 억압에 저항하는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창작 활동을 통해서 심미적인 카타르시스와 정화를 얻는데, 그 작품의 상징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부분에 전체를 담고 전체에서 부분을 읽어내는 것이 온전한 이해이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즉일체 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의 법계가 상상계의 구조이다. 주역에서는 태극에서 음양, 사상, 팔괘, 64괘가 분열하고 순환한다. 음악적인 대위법과 화성이 리듬을 타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뒤랑은 힘 + 물질 = 도구 라는 르루아 구랑의 등식을 응용하여 상상계의 구조를 분석한다. 인간의 각각의 몸짓은 동시에 하나의 물질과 하나의 기술인 상상의 재료와 도구를 불러들이는데, 직립 보행하는 상승의 자세와 소화 작용의 하강성, 리듬의 몸짓이 지배소가 되어 상승구도(정상, 광명, 하늘), 분할구도(검, 세례), 하강구도(동굴, 밤, 걸리버, 잔), 웅크림구도(품, 내심), 순환구도(바퀴, 뱀)로 나누고, 변환적이고 역동성있게 구조화 시켜 낮의 체계(자세 지배소: 상승, 홀과 검)와 밤의 체계(소화, 순환 지배소: 하강과 잔, 은화와 지팡이)로 정리한다. 순수와 어둠은 시간과 죽음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의 상징적인 개념이다. 순수는 하늘, 태양, 낮, 빛, 황금이 상징하는 바이고, 어둠은 사랑, 비밀, 내면, 슬픔, 동굴, 최초의 시간, 물, 죽음, 용, 달, 월경, 뱀, 거미, 나르시즘이 상징하는 바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이란 그 작품 속에 영웅적이고 대조법적인 악센트, 반어법의 부드러운 향수, 희망과 절망의 수축과 이완이 모두 녹아있을 경우에 완벽한 만족을 줄 수 있다.

(참조: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질베르 뒤랑 저, 진형준 옮김)

雪中梅 한 송이 꽃을 피우려 / 恨을 마셔라 // 무서리 모진 바람이 들어도 / 내 안에 품은 熱이라면 / 천리를 중독 시키리니 // 한 떨기 꽃을 피우려 / 靜을 품어라 // 아직 봉우리 안은 / 매몰찬 바람만 일고 있다. (雪梅/김종선 전문)

評 : 타버린 검은 매화나무 가지에 눈꽃이 핀다 / 달이 기울고 마당에는 바람 소리 처량하

다 / 고목나무에 꽃이 필까 의심하지만 / 님 그리는 애달픈 열정은 천지를 향기롭게

하네

論 : 나무는 인생을 상징하며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하여 일 년을 준비한다. 恨, 熱, 靜은 내면으로 하강하는 이미지를 나타낸다. 지극히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실오라기 같은 미묘한 / 한 자락 끈을 놓으려다 / 벼랑 끝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보네 // 쉴 새 없이 꺼져가는 / 희미한 미등 앞에 꿇어 앉아 /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허상을 보네 // 내달리며 질주하는 미로 속에서 / 희미한 미등이 찬란한 빛이 될 수 있는 / 벼랑 끝에 서광이 비칠 마지막 히든카드는… (마지막 히든카드/김성미 전문)

評 : 절벽 위에서 날개를 펴라 / 그리하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으리라 / 어두운 미로 속에서 눈을 감아라 / 천상에서 황금빛 사다리가 내려오리라.

論 : 끈은 운명이나 인연을 상징하고, 벼랑과 빛은 두려움과 소망을 의미한다. 미로는 어두운 인생을, 히든카드는 행운을 상징한다. 판세를 역전시킬 히든카드는 무엇일까?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데 성공으로 이끄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인생의 성공은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오면 동굴이 되는 사람들 / 태몽 속에서 유산되지 않을 목숨을 키운다 / 내일이면 방생할 몸 / 재난을 대비하려 / 새로운 가면이 벽에 걸리고 / 수의(壽衣)를 준비하듯 내일 입을 옷을 꺼내어둔다 / 염(殮)하듯 구석구석을 씻어낸 후 / 관속에 눕듯 / 정결히 누워 죽음을 연습한다 / 두려움에 / 그리움의 외줄을 타는 광대놀이 / 환한 빛 아래 중성이어야 했던 그들, 마음 놓고 / 암컷이 되고 수컷이 된다 / 가뭄을 익혀 눈물 병에 물을 저축하고 / 태양을 복제한 백열등 아래 진창길 육신을 말리며 / 무릎 오그린 태중의 모습으로 / 양수 같은 어둠에 안기면 / 기어코 날짐승이 되어 / 가슴에 사다리를 놓고 별을 따러 올라간다 / 꽃이 되고 / 바람이 되고 / 안개가 되고 / 하늘로 쏟아져 올라가는 사람들의 빗소리 / 포도(鋪道)의 기승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 어둠의 낭하(廊下)에서 차라리 / 행복해지고 마는 것이다 / 서러운 금단(禁斷)의 순간이 날아 다닌다 / 페시미즘의 지병을 다스리는 소리 / 농밀한 어둠과 동침에 들어가는 / 동굴 속 (동굴/이월란 전문)

評 : 시간과 죽음이 운명처럼 따라온다 / 순수와 어둠이 광대처럼 춤을 춘다 / 까마귀는 태양을 삼키고 심연으로 사라진다 / 밝은 어둠이 동굴을 점령하면 아기를 출산하라

論 : 시간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을 페시미즘으로 유혹한다. 순수와 아득한 어둠으로 인간의 조건을 타개하려 하지만 일시적인 행복을 줄 뿐 다시 세속에 물들어간다. 동굴은 우주적 자궁이며, 구멍의 원형이다. 가면은 죽음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며, 옷은 줄과 함께 연속성, 인연을 상징한다. 중성이란 양가성인데 부정의 부정으로 완곡화를 통한 조화를 의미한다. 태양, 날짐승, 사다리, 별은 상승하는 이미지로서 시간의 공포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꽃, 바람, 안개, 낭하, 동침은 양극단을 벗어나 부활의 생명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불빛 속으로 / 줄달음친다 / 세상 속 / 골목길 어디쯤인가에서 / 멈춘 / 시선 / 불꽃처럼 곤두박질 쳤다 / 단 한 번의 투혼 / 점을 친다 / 만신의 신기를 훔쳐내어 / 몰래 점을 쳤다 / 묵시적 거부의 시간을 빠져나와 / 만신의 집을 기웃거려 / 신기를 훔쳐낸 / 인간의 극한

(소망/ 최애자 전문 )

評 : 북두에 몸을 감추고 / 태양을 삼키고 달을 낳았소 / 13번째 골목을 돌아가오 / 그러니 나는 나외다.

論 : “불빛 속으로 줄달음친다” 는 것은 시간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골목은 인생길이며, 점을 치는 행위 역시 숙명적인 시간의 공포를 부정하려는 본능적인 의지이다.

13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를 질주하오. /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 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11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제13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오감도(烏瞰圖)/이상 전문)

評 : 나는 나일 뿐이오 / 나는 오고 가지 아니하오 / 내 얼굴에는 12개의 얼굴이 있소 / 내가 가는 길은 시작과 끝이 없소

論 : 아해는 자아를 상징하며, 골목은 인생길을 의미하며, 12는 반복되는 세월을 의미하고, 13은 시간을 극복한 자아를 상징한다. “무서운 아해”는 객관적인 자아(卽自), “무서워하는 아해”는 주관적인 자아(對自)를 상징하며, 제13인의 아해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하는 초자아(相卽)이다. 1은 개별적인 자아이고, 2는 사회적 자아이다. 초자아는 주관과 객관, 개인과 사회에 걸림이 없이 자유롭다. 초자아는 유위(有爲), 무위(無爲)에 구속되지 않는다. 무섭다고 한 것은 초자아인 본래면목이 시간을 극복하였지만 공간적인 현실의 영역이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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