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딱히 잠버릇이 사납지 않은 아내지만 잠 찜에 한쪽 다리를 내 배위에 올려놓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면 아내의 무의식적인 신뢰에 안도하면서도 순간 숨이 막힐 듯하다. 다리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그 다리에는 아내와 두 아이를 합친 가족의 무게가 함께 실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기억을 더듬는다. 60년 대 소매치기가 한창 기승을 떨던 시절이었다. 버스 손잡이에 넋 놓고 매달려가던 나는 깜빡하는 사이 손목시계를 날치기 당했다. 그 후 어쩌다 손목에 눈이 갈 때면 시계 찬 자리에 동그랗고 붉은 원이 상흔처럼 아른거렸고,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기도 했다. 손목의 허전함은 시계의 무게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본디 무게에 심리적인 무게가 덧놓이면 실제보다 무겁게 다가오기 마련인가보다. 눈꺼풀에 한사코 달라붙는 졸음이 그렇다. 재활치료 중인 알츠하이머 환자가 떼는 첫발의 힘겨움도 마찬가지다. 친지의 주검을 운구한 적이 있다. 관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운 것인지 미처 몰랐다. 세상을 등진 자의 아쉬움과 보내는 자의 안타까움이 함께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그 옛날 기억속의 꽃상여도 망설이며 뒷걸음치고 물러서며 앞으로 나가는 듯 발 구름 했던 모양이다. “에헤라디야~ 상사디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잃어버린 것의 무게는 잃어버리기 전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놓쳐버린 작은 조각의 무게는 남겨진 전체 무게의 합(合)과 같다. 퍼즐은 마지막 작은 블록으로 완성되고, 깨진 거울이나 꼭지가 떨어져 나간 도자기는 온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겨울날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두 짝을 모두 잃어버린 셈이었다. 성경에는 ‘선한 목자’의 비유가 나온다. 길을 잃은 1마리 양의 무게는 다른 99마리 양의 무게를 합친 것과 다를 바 없다.
구체적인 사물이지만 무게를 마음속으로 계량할 수밖에 없는 소소한 것들이 있다. 창틀에 내려앉은 눈송이, 공중을 부유하는 홀씨, 곤충의 빗살무늬 날개, 갓 부화한 병아리의 솜털, 하늘로 올라간 헬륨 풍선, 손만 가까이 대도 기척을 알아차리고 하르르 닫히는 미모사…. 도대체 무게가 있을 성 싶지 않은 현상도 있다. 끌탕처럼 피어오르는 먼지, 동심원을 그리며 번져나가는 물무늬, 소멸하려 하늘로 흩어지는 연기, 햇볕과 더불어 자취를 감추는 안개 알갱이…. 사람이 죽었을 때 육체를 빠져나가는 에너지 생명체[靈魂]의 무게는 또 얼마나 될까?
사람은 평생 심리적 무게를 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든 잊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둔 한과 자책이 있을 법하다. 남몰래 짓는 한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간절히 바라면서도 꿈꿀 수 없고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있을 때, 그 원망(願望)의 무게를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마음속 돌멩이는 켜켜이 쌓여 돌탑이 되었다가 소리를 내어 구른다. <한오백년> 구슬픈 가락에 돌덩이를 실어낸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 제3회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