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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태    
글쓴이 : 박유향    15-11-17 13:22    조회 : 4,121

 명 태

 

박유향

 

집에서 명태탕을 끓이면 머리토막은 늘 엄마 차지였다. 깊은 냄비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누워있는 명태 대가리를 엄마는 어김없이 당신 국그릇에 홀랑 담아갔다. 그리고 그 무섭게 생긴 명태 대가리를 참 맛있게 드셨다. 위협하듯 노려보고 있는 명태를 엄마는 단숨에 가볍게 부수어서 뾰족한 뼈들을 하나하나 집어 거기 붙어있는 보드라운 살들을 잘도 발라드셨다. 호르륵 쪽쪽 호르륵 쪽쪽. 마술이라도 부리듯 어떤 뼈는 입에 홀랑 넣었다가 다시 쏙 뺐고, 또 어떤 뼈는 막대사탕처럼 손에 들고 쪽쪽 빨아서 드셨다. 간혹 진품을 가려내는 금은방 주인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살핀 후 단호하게 그냥 내려놓기도 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엄마 앞엔 격렬한 전투라도 끝난 듯 명태 대가리의 잔해들이 수북이 쌓였다.

내 몫으로는 명태 몸뚱아리 중간, 하얀 살덩이가 넉넉하게 붙어있는 토막이 주어졌다. 하지만 난 어렸을 때 생선을 넣고 끓인 탕 종류는 무조건 싫어해서, 내 몫의 살덩이도 전혀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가 드시는 그 대가리는 탐이 났다. 생긴 건 저래도 엄마가 드시는 모습으로 봤을 때 뭔가 비밀스러운 맛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 요구했다. 엄마 그거 내가 먹을래. 그러면 엄마는 눈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그 마음 다 안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넌 못 먹어.

한번은 조르고 졸라 내 국그릇으로 옮겨 담은 적이 있었다. 바로 내 앞에 생선 대가리가 뻔뻔한 표정으로 떠억 누워있으니 참으로 혐오스러웠지만 꾹 참고 분해를 시작했다. 으...이걸 어떻게 먹는 거지? 뭐 먹을 거 하나도 없잖아? 엄만 뭘 드신 거지? 요건 먹어도 되는 건가? 아이구 써. 도대체 이게 뭐람. 으악 저 눈깔 좀 봐! 둥둥 떠다니잖아!

그 후론 구태여 머리토막을 달라고 요구하진 않았지만, 생태나 동태탕을 끓인 날 엄마가 식사하시는 걸 보면 내내 의아해 했다. 엄마가 숨겨놓은 비밀의 맛을 내가 못찾아냈나? 대체 뭐가 저렇게 맛있는 걸까?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 명태탕을 끓이면 머리토막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됐다. 싫어했던 명태탕도 어렸을 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시원한' 맛 때문에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무서운 명태와 눈을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자주 돌아온다.

하지만 아직도 그 험상궂게 생긴 대가리는 여전히 혐오스럽고 분해 과정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기껏 작살내서 뒤져봐야 머리뼈 바로 아래 붙어있는 작은 살점 한 젓가락 말곤 먹을 만한 것도 못 찾아낸다.

이상하다. 엄만 분명히 머리 한 토막 가지고 밥 한 공기 다 드셨는데. 도대체 뭘 그렇게 드셨던 걸까. 아니 드시기나 한 걸까. 정말 맛있었던 걸까. 엄마는 언제부터 명태 대가리를 그렇게 먹었을까. 엄마가 밥상을 차리면서부터였겠지. 그럼 엄마도 어렸을 땐 하얀 살을 차지했을까. 엄마의 엄마도 엄마한테 살덩어리 주시고 나머지 머리토막을 드셨을까.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머리뼈를 맛있게 발라드시면 그게 그렇게 탐났을까. 그래서 엄마가 달라면 하면 엄마의 엄마도 빙그레 웃으며 “넌 못 먹어” 그러셨을까.

예쁜 장식품이나 귀한 그릇, 비밀스런 손맛이 들어간 집안 음식 같은 것도 아니고, 겨우 싸구려 생선 명태, 그것도 대가리 따위가 이렇게 대를 이어가다니.

 

저녁,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명태와 억지로 눈을 맞추며 “넌 못 먹어” 라고 말하던 엄마와 그 엄마한테 “넌 못 먹어” 라고 말씀하셨을 엄마의 엄마와 또 그 엄마의 엄마한테 “넌 못 먹어”라고 이야기하셨을 엄마의 엄마의 엄마를 잠깐 생각하다.

 

 

 


(시선  201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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