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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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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화가    
글쓴이 : 박병환    15-11-20 09:18    조회 : 5,428
                      도리화가(桃李花歌)
 
 고창에 모임이 있어 갈 때마다,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항상 허전함을 느꼈다. 몇 번을 다녀온 뒤, ‘도리화가가 내 마음에 고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엿보기를 몇 번, 나는 지난 토요일 답사에 나섰다.
도리화가는 스승이자 한 남자였던 신재효 선생이, 제자이며 한 여자였던 진채선 선생에게 띄우는 연애편지이자 판소리 단가이다. 한 번 곁을 떠난 제자는 돌아올 줄 모르고 봄날에 산뜻하게 피어있는 복숭아꽃과 순결한 자두 꽃은 저리도 만발한 데, 마음의 허기는 그리움이 되었다가, 연정이 되어 선생에게 형용 못할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게 했다.
 진채선 생가인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사등마을로 갔다. 국도에서 마을로 진입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너무 작아 비 오는 날씨와 더해져 술래를 시키고서야 내 눈에 들어왔다. 구불구불 고샅 곁으로 집들이 앉아 있고 예스러움을 느낄 때쯤 잡초가 살짝 우거진 생가 터가 나왔다. 비는 인정 없이 내리고 우산을 받쳐 들고 안내판을 바라보니,1847년에 태어나 우리나라 최초 여자 명창이라고 쓰여 있다. 손길을 아쉬워하는 듯 사십 평 남짓 작은 터의 잔디는 잡초에 기운을 빼앗겼고, 박석을 따라 정자에 앉으니 걸어왔었던 박석 첫머리에 가녀린 여인이 부채를 펼치며 노래를 부르는 듯하였다. 생가 터를 나온 뒤, 마을 가장자리를 둘러보니 바닷가가 보였고, 진채선 선생은 어릴 적 이곳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읍내에 있는 신재효 선생의 생가로 발길을 돌렸다. 고창읍성 앞에 자리 잡은 생가는 그때와 다르게 단출하였다. 집은 여섯 칸으로 어느 방엔 판소리를 가르치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었다. 생가를 둘러본 후, 뒤에 자리 잡은 판소리 박물관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나는 해설사를 소개받아 방문하게 된 이유를 말하였더니, 그녀는 도리화가가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위주로 설명해 주었다.
 진채선 선생의 어머니는 당골이어서 그녀는 어릴 적부터 무가(巫歌)를 불렀다. 소리에 소질이 있음을 안 어머니는 그녀를 신재효 선생에게 데리고 갔다. 신재효 선생은 관아의 호장(戶長)이었고 또한 당대 판소리 귀명창이자 이론가로 판소리 열두 마당 중 여섯 마당을 개작하여 그것이 오늘날 불리고 있다. 신재효 선생은 여자는 법적으로 소리꾼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진채선 선생은 자기를 여자로 보지 말고 소리꾼으로 봐 달라고 당돌하게 말하였다. 신재효 선생 귀에 그녀의 말이 꽂혔다.
 집은 사천 평, 으리으리한 집에 많은 소리꾼 지망생들이 기숙하고 있었다. 그때는 19C 후반으로 판소리가 대중화와 함께 가장 인기 절정이었던 시대로, 섬진강 동쪽으로 남자다움의 동편제와 섬진강 서쪽으로 여자다움의 서편제가 분화될 때였다. 그녀도 신재효 선생에게 당시 동편제 소리꾼이자 후기 여덟 명창 중 한 사람인 김세종 바디를 구전심수(口傳心授)하여 본격적인 소리 공부를 시작하였다. 공부할수록 무가의 소리는 슬픈 계면조로 허공을 쳐다보며 힘없이 평탄하게 부른 것에 비해 판소리는 배에 힘을 들여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신재효 선생은 그녀를 불렀다. 소리꾼을 광대로 부르던 시절, 선생은 훌륭한 광대가 되는 네 가지 덕목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먼저 인물 치레인데 얌전하고 정적인 얼굴이 좋고, 두 번째는 사설 치레인데 소리꾼은 사설 내용을 알고 희· · · 락 표정이 얼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관객은 가슴을 치고, 이런 연후에 득음해야 한다고 했다. 득음한 후엔 단청의 채색처럼 소리에 맞는 몸짓인 너름새를 익혀야 비로소 광대라 칭할만하다고 하였다.
 다음 해 단오(端午)가 되었다. 선생은 그녀에게 득음을 위해 입산하라고 하였다. 안전과 장단을 맞추기 위해 남자 수행 고수를 딸려 보냈다. 심산유곡 폭포수 앞에서 그녀가 소리를 내지르면, 폭포는 멍하니 서 있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소리를 지르고 지르면, 더는 목이 쉬어 소리가 안 나오는데 예부터 전해오는 방법으로 똥물을 먹으면 목이 풀린다고 하였다. 계속해서 소리를 내다 보면 쇠망치 소리와 같이 견고하고 강한 철성과 쉰 듯이 컬컬하면서도 힘 있는 수리성이 합해 천구성이 된다고 하였다. 그 소리는 하늘이 내린 소리로 판소리에 가장 어울리는데 그녀는 백일이 지난 추석이 되어서야 천구성을 얻은 후 산에서 내려왔다.
선생은 처복이 없었다. 세 번을 결혼했지만 모두 사별하였다. 선생과 그녀가 처음 만날 때가 오십 대와 이십 대로 서른다섯 살 차이가 났다. 세 번째 부인은 죽음을 예감하고 그녀에게 선생을 보살펴 주라고 하였다. 그녀는 저녁이 되면 선생의 이부자리를 봐 주었고 말벗도 되었다. 그럴수록 선생은 그녀에게 애틋한 감정이 생겼고 판소리 이론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 알려주려 하였다.
 판소리는 마당에서 하는 소리라 하였다. 남도 지역 무당들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세습무가 되었는데 세습무집안 남자들이 광대로서 연애와 오락에 종사했고, 이들 중에서 17C 말부터 판소리 창자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시대 상황도 모내기법 등 농업기술 발달과 대동법 시행은 부농(富農)과 부상(富商)이 출현했고, 국가 재정 증대를 위한 공명첩 발행은 신분제 동요를 가져와 서민들의 각성과 함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는데 그 중심에 판소리가 있다고 하였다. 새 임금이 등극하고 그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 상징인 경복궁을 중건하고 있는데 소리꾼을 초청한다 하니 가보라고 하였다.
 1867, 그녀는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 남자 소리꾼으로 참가하였다. 서편제의 시조인 박유전과 박만순 등 전국의 명창들이 대원군의 초청을 받아 소리를 하였다. 과연 사자의 갈기 털이 떨고 져버린 꽃이 살아나는 듯하였다.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수성가방아타령을 불렀다. 성음은 웅장하고 맑았으며 기량이 다단하였다. 소리의 꺾임에 청중들은 점점 몰입되어 넋이 나갔다. 대원군 또한 귀명창이지만 처음 듣는 표목이었다. 대원군은 연회가 끝난 뒤 그녀에게 사람을 보내 삼일 만 운현궁에 머물도록 하였다.
 다음 날, 산천초목도 떤다는 대원군을 처음으로 대면하였다. 마른 체격이지만, 얼굴엔 강단이 있어 보였다. 소리를 청하는 대원군 앞에서 그녀는 가장 자신 있는 소리인 춘향가의 기생점고 대목을 더늠으로 불렀다. 소리에 체력과 공력을 들이니 웅장하면서도 쥐어짜는 소리가 운현궁을 휘돌아 감았다. 대원군의 가슴엔 긴 여운이 쌓였다.
나흘째 되던 날, 그녀는 대원군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대원군은 한 참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여자인가?’를 물었다. 대답을 못하는 그녀에게 대원군은 대령기생을 하라고 명하였다.
 세상에 이름을 올리려 보내었건만,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선생에게 살풍경이 시작되었다. 그럴수록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당대 최고의 권력자의 명()이 아닌가? 간혹 인편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선생은 갈수록 몸조차 아픈데 무망한 그리움은 더해갔다. 그녀도 선생의 소식을 들었다. 용기를 내어 그녀가 대원군에게 선생을 찾아뵙겠다고 하면, 대원군은 선생에게 관직을 하사할 뿐 선생 곁으로는 보내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둘 만의 애틋한 사연을 소리꾼뿐만 아니라 관아의 수령들도 알게 되었다. 점점 야위어가는 그녀를 보며 대원군은 한발 물러섰다. 고을의 수령들이 어렵게 관아 행사에 그녀의 소리를 청하면 들어주었다. 그녀는 선생이 사는 인근 고을 관아로 소리를 하러 왔다. 얼마 만인가? 삼 년 만에 선생은 그녀를 보았다. 선생은 그녀의 소리를 듣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단 하나의 노래를 만들었다. 바로 도리화가였다. 선생의 나이 59, 그녀 나이 24세 때였다.
 ‘스물네 번 바람이 불어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이 드니, 구경 가세 구경 가세 도리화 구경 가세. 꽃 가운데 꽃이 드니 그 꽃이 무슨 꽃인고, 웃음 웃고 말을 하니 수령궁의 해어환가? 해어화 거동보소 아릿답고 고을시고 나와 드니 빈방 안에 햇빛가고 밤이 온다. 일점잔등 밝았는데 고암으로 벗을 삼자. 잠 못 들어 근심이 꿈 못 이뤄 전전한다. 언제나 다시 만나 소동파를 읊어볼까.’로 시작되는 도리화가는 그녀를 만나게 되는 설렘부터 그녀를 만나 이야기의 잔정을 쌓고 싶다는 염원이 들어 있다. 다른 연들을 보면 그녀의 용모와 자색, 궁에 갇혔다 한탄하지 말고 고생 끝에 영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당부, 낙목한천(落木寒天) 같은 선생의 서글픈 처지, 장안의 평가, 연정의 마음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운현궁에서 삼 년을 보낸 그녀 또한 자유로운 삶과 스승인 선생이 그리웠다. 인편으로 전달받은 도리화가는 그녀에게 상사(相思)의 정을 더욱 깊게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애조가 깃들인 계면조의 추풍감별곡을 불렀다. 야심한 시간에 담을 넘어 들려오는 그녀의 소리는 대원군에게 번민의 싹을 트게 하였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영원할 것 같은 대원군은 외척이 없는 혈혈단신이라 생각해 왕비로 간택했던 민비에게 힘을 잃고 양주로 낙향하였다. 그녀를 육 년간 데리고 있던 대원군은 추풍감별곡을 떠올리며 그녀를 드디어 풀어주었다. 그녀는 선생 곁으로 왔다.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선생은 그녀의 병간호를 받았다. 간혹 선생의 몸이 좋아지면 도리화가를 불러주곤 하였다. 선생은 가장 편안한 얼굴로 그녀의 소리를 듣곤 하였다. 그러다 선생은 188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삼 년을 거상하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가, 1898년 대원군이 세상을 뜨자 삼 년 상복을 그를 위해 입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도 선생 곁으로 떠났다.
시대의 가녀린 한 여자를 세상의 중심으로 올려놓고, 자신은 밤하늘에 외롭게 걸린 슬픈 그믐달 같은 한 남자의 이야기인 도리화가사연에, 어쩌면 한때 내 젊은 날의 사랑 고독이 그 속에 꼭꼭 포개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도리화가가 내 마음의 그리움의 강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허공을 쳐다보면 그리운 사람 하나가 그려지고 그를 위해 꼭 해 주어야 하는 말이 소리 없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진채선 선생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여 살아생전 하지 못한 답가(答歌)를 내가 진채선 선생이 되어 신재효 선생에게 대신 전하고 싶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풀잎이었습니다.
                                      치이면 집 앞바다에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불렀던 무가(巫歌)를 불렀습니다.
                                      물결에 실려 보낸 내 노래는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내 앞날의 어둠을 보았습니다.
                                      큰 나무에 기댄 채 태양을 바라보는 능소화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얘진 어머니는 나를 스승님께 데려갔지요.
                                     산속 도인()보다 저잣거리 도인()
                                      한 수 위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스승님 덕에 만록총중홍일점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창의 선구자가 되었고, 수령궁의 해어화도 되었습니다.
                                    그저 외경스럽게 바라보았을, 권력과 끝을 지켜보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를 누린들 슬픈 정만 남았습니다.
                                   허기가 찾아왔습니다. 먹고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스승님의 도리화가를 받았습니다.
                                   초승달이 그믐달이 될 때까지 울었습니다.
                                  수령궁의 해어화보다는 능소화로 지냈던 그 시절이 얼마나 좋은지를
                                  이제 다시 태어나면 내가 나무가 될 테이니 능소화가 되십시오.
                                 천 년 만 년 그 살결, 그 향기 맡으며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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