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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결혼 전야제는    
글쓴이 : 백두현    15-11-26 19:10    조회 : 5,001

나의 결혼 전야제는

백두현 / bduhyeon@hanmail.net

 

부어라, 마셔라 흥청망청 혼동의 대축제였다. 마치 30년 동안 숙성시키다 터져버린 술독 같았다. 흔한 말로 코가 삐뚤어져라 마셨는데 왜 그렇게까지 마셨는지 지천명이 지난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고향친구 4명이 새벽까지 쓰러질 정도로 술잔을 주고받았던 기억뿐이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라 고향 친구가 그 4명이 전부였는데 마포구 합정동에 마련한 나의 신혼 방에 모여 성대한 술 축제를 치른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더 이상 총각이 아니라는 아쉬움을 그들이 달래주려는 것인지 내가 위로받으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서로 재울 생각도, 잘 생각도 없이 마시고 또 마셨다.

“우당탕탕!”

“아직까지 자는 거예요?”

예비 처남의 황급한 목소리가 잠결에 희미하게 들렸다.

“아차! 오늘이 나의 결혼식이었지?”

화들짝 놀라 준비를 하고 달려갔지만 시계바늘은 이미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허겁지겁 5분 거리인 예식장까지 뛰어가 결혼식을 치르긴 치렀는데 정말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몸이 달은 아내는 울어서 화장이 지워져 다시 고쳐야 했고 신부를 번쩍 안고 찍어야 하는 기념사진은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사양해야만 했다.

비몽사몽 취한 걸음으로 결혼식을 마치고 뒤풀이라는 것도 했는데 하필 장소가 접대 장소로 어울리는 <룸싸롱>의 지하 방이었다. 이 또한 전날 밤 그토록 술을 권하던 친구 녀석이 잘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곳이라며 빌렸다고 했다. 노래방도 없던 시절 밴드를 불러 마시고 놀기는 딱 좋았는데 신부 친구들은 시큰둥했다. 도대체 친구를 밤업소 종업원에게 시집보낸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신혼여행을 떠나려고 짐을 챙기는 신혼방의 풍경은 더 기가 막혔다. 전기밥솥 안에 무언가 물기가 있었는데 나의 주장은 맥주였고 아내 주장은 누군가 밥솥 뚜껑을 열고 소변을 본 것이었다. 신혼여행지에서 입으려고 벽에 걸어두었던 예복 또한 방바닥에 떨어져 노란 얼룩이 생겼는데 그 또한 나의 주장은 술을 흘린 자국이고 아내 주장은 소변으로 얼룩진 무늬였다.

겨우 겨우 훌쩍이는 신부를 달래 신혼여행을 떠나긴 했지만 여행지에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신혼여행지가 설악산이라 자동차를 타고 진부령을 넘어가는데 경찰차가 쫒아오며 차를 세우라며 사이렌을 울렸다. 아내는 이 사람이 범죄자인가 싶어 기겁을 했고 죄가 없는 나는 당당하게 차를 세웠지만 이내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속도위반 딱지를 받아 들고 꾸벅 인사를 했다. 아차! 음주운전이 아닌가싶어서였다.

그리고 아내는 신혼여행지에서 내내 한복만 입고 다녀야 했다. 예복을 망쳤으니 도리가 없었다. 설악산 등산길에서만 커플티를 입었을 뿐 차 안에서도 한복, 주례선생님께 인사가서도 한복, 처가에서도, 시댁에서도 내리 한복만 입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것은 범인이 과연 맥주인가 소변인가였다. 참으로 첫 날 밤을 치르기도 전에 이혼당해도 싼 뒤죽박죽, 엉망진창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기보다 사실은 미안하다. 재미있으려고 기획한 설정이 아니고 단순한 핑계고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젊은 신부가 들고 사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찌기야 했을까. 너무 많이 마셔 서 있기도 힘든 탓이었다. 뒤풀이 장소 역시 <룸싸롱>이어야 했을까. 서울에 진출한 시골 청년의 사려 깊지 못한 객기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맥주도 소변에 가까웠다. 얼룩이야 같은 얼룩이었지만 냄새는 맥주냄새보다 조금 독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밥솥에 소피를 본 녀석을 탓할 일도 아니다. 내가 좀 더 여유로워 화장실이 달린 전세를 얻었다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속도위반 딱지는 또 왜 끊겨서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괌이나 제주도 같은 좀 더 근사한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면 피할 수 있는 해프닝이었으리라.

그렇더라도 뭐 후회만 남은 것도 아니다. 아내를 번쩍 안고 결혼식 사진을 찍지 못했어도 2남 1녀를 낳았고 뒤풀이를 유흥가에서 했을지언정 이렇게 제법 고상하게 글을 쓰며 살고 있지 않은가. 맥주와 소변을 구분하지 못했어도 어른을 몰라본 적 없이 살았고 속도위반 딱지도 끊었지만 사고 한 번 없이 안전운전하며 나름 무탈하게 잘 살고 있다. 그렇게라도 미안한 일이 있어서 종종 설거지라도 해줄 구실이 생겼으니 아내 역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말이지만 어쩌면 그날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날의 전야제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차마 아내에게까지 박박 우기기는 뭣하지만 나이 들어 미안할 일도 사실 어느 정도는 품고 살아야 한다. 너무 좋은 일만 있으면 좋아도 좋은지 모르는 법, 오늘처럼 이렇게 생각할 일 좀 많게 만드는 추억이 뭔 죽을죄란 말인가. 좋게 생각하면 치매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되새길 일이 그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기는 것 없이 옛이야기 할 적마다 계속 엄마 편만 드는 아직 젊은 나의 아들 역시 반드시 바른생활만 고집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나처럼 세월 지나면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 지금부터라도 방청소나 설거지하는 습관이나 갖기를 권한다. 그런 의미에서 흥청망청 혼동의 대축제였던 나의 결혼식 전야제는 어느 정도 정당했다. 지금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아내가 이 글을 절대 읽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어야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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