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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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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신을 신고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7:28    조회 : 5,732
 
                                    새 신 을 신 고                
                                                                                                        노문정(본명:노정 애)

   
  전자렌지에서 연기가 슬금슬금 빠져나오고 있다.  서둘러 실내화를 꺼내보니 고무 테는 동그랗게 부풀어올랐으며 서로 눌러 붙은 체 표면은 노릇하게 잘 구워져 연기까지 뿜어내며 온 집안을 고무 타는 냄새로 가득 채워 놓았다.  학교에 가져가야 할 큰아이의 실내화를 급한 마음에 빨고 보니 건조가 문제였다.  전자렌지를 이용해 말렸다는 어느 학부형의 말이 떠올라서 그 속에 넣고 5분으로 맞춘 후 자신 만만하게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아이들에게 기계의 원리 운운하며 잠시 후에는 완전히 마른 따뜻한 운동화가 요술처럼 나올 거라며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는데....  잘 익은 신발을 보며 울상 짓는 아이를 보니 어린 시절 내 운동화 생각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탄불 하나면 뜨끈한 아랫목에서 한겨울 꽁꽁 언 손발을 녹여주거나 구수한 청국장 찌개 끓이는 것까지 모두 가능했던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식구들과 닮지 않은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놀리시는 아버지와, 유독 나에게만 설거지며 청소 등 집안 일을 시키시는 어머니 때문에 콩쥐가 분명하다며 어느 일요일에 가출을 했다.
  먼 친척 할머니께 친 엄마를 찾아 달라 조를 작정으로 한 시간을 걸어 찾아갔지만 큰 개만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 머쓱해진 나는 오후 내내 바닷가에서 늦가을 바람만 맞으며 돌아다녔다. 날이 어두워지자 추위와 배고픔, 두려움이 겹쳐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는데, 가족들은 내가 가출했는지 조차 모른 체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딜 싸돌아 다니냐는 아버지의 호통과 어머니의 근심 어린 표정을 눈치보며 바닷물에 절어 모래범벅이 된 신발을 휙 벗어 던지고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려는데 신발이 없어 두리번거리니 어머니께서 깨끗하게 잘 말려진 따뜻한 운동화를 내려 놓으셨다.  밤늦게 빨았다 해도 너무 오래 부뚜막에 두면 색상이 누렇게 변하기에 새벽녘에는 내려놓았다가 아침에 다시 부뚜막에 올려 따뜻하게 데운 것이다.  발을 넣으니 발끝부터 느껴지는 따뜻함이 가슴으로 전해져 온 몸이 훈훈하게 데워져 등굣길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닫겠네” 딱히 새 신이 아니라도 깨끗함과 따뜻함 모두 가진 것이 꼭 새신 같아 목소리 높여 동네가 떠나 갈 듯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하루를 시작했다. 
  따뜻한 운동화는 겨울까지 계속되었는데 3학년이 되고서는 내가 빨아 신었지만 지금도 운동화에 발을 넣으면 추억 끝에서 어머니의 거친 손이 느껴진다. 그 후 난 가출을 기도한 기억이 없다.  바쁘신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 일이 맡겨질 때는 콩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가끔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고 따뜻한 신발의 느낌과 함께 커갈 수록 내 모습이 가족들을 닮아갔으며 철도 조금씩 들어갔다.
  요즘이야 여러 켤레의 신발이 있지만 그 시절에는 달랑 한 켤레라 비에 젖기라도 하면 연탄 아궁이나 부뚜막 위에 올려 건조시켜야 했다.  집안 일을 대신할 가전제품들 덕분에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자식 사랑은 정성들이지 않고 기계의 힘을 빌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불변의 법칙처럼 느껴진다.  
  작가 공선옥은 마흔에 화전민의 후예들이 사는 경북 봉화의 산골, 분단의 아픔이 남아 있는 강원도 화천, 수해가 뒤덮은 전북 무주 등 화려한 곳은 아니지만 우리네 삶이 묻어 있는 곳으로 여행을 한 후 아들의 손을 잡고 “너는 말이다 적어도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눈물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받아쓰기를 못해도, 영어는 못해도 소쩍새 울음소리에 눈물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눈물나는 사람들 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라 가르치지는 못해도 물질 문명에 밀려 기계의 힘을 빌어 어머니가 주신 따뜻함을 아이에게 주려한 내 어리석음을 가르치기라도 하듯 노릇노릇 구워진 실내화는 제 할 일 다한 것처럼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새 실내화를 사주자 아이는 자신의 신발이 전자렌지에 들어가 타 버린 것이 너무너무 잘됐다며 엄마는 역시 최고를 외치더니 즐거이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닫겠네”를 부르며 교문으로 뛰어들어갔다.  따뜻한 운동화는 신겨보지 못한 채 새신 들려 보내며 소쩍새 울음소리에 눈물나는 사람이 되라 가르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못난 어미 같은데 최고라는 찬사를 들으니 내 어머니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못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지는 월요일 아침이다.
 
                                                                                                              <책과 인생>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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