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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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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바지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7:36    조회 : 5,905
 


                                                  청 바 지

                                                                                                             노문정(본명:)노정애 

  강남의 한 패션 몰에 큰 형님이 청바지 가게를 열게 되어 낮 시간동안의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얼마 동안은 손님이 들어오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손이 떨려 초보운전자 딱지 붙이고 도로에 나선 기분이었다. 판매할 청 제품이 60종을 넘어 내 집 전화번호도 깜빡깜빡 잊는 나로서는 번호별로 붙은 청바지 위치며 각각 다른 가격들을 외우는데도 1주일 이상 걸렸다. 유명 연예인이 TV에서 입고 나오면 그 날로 **바지로 개명된 이름표를 붙이고 최신유행을 내세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판매에 열을 올렸다.
  일을 하는 동안 내 관심은 청바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불루진에서 진(Jeans)은 이태리의 제노아(Genoa)항을 나타내는 불어^Genes에서 유래했으며, 지금 우리가 즐겨 입는 청바지도 1850년대 독일 출신 미국인 레비 스트라우스(Levi Strauss)가 천막 원단을 광부 노동자들의 작업복으로 만들면서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50년이 넘는 하늘빛처럼 도도한 푸른빛은 인디고 염료에서 나왔으며, 1980년대 이후 개발된 다양한 워싱기법이 청바지의 색상을 나타내는 중요한 디자인의 일부가 되었다.
이상한 버릇도 생겼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바지만 보였으며, 유명 배우들이 입은 옷을 뚫어질 듯 보거나 눈도장으로 슬쩍슬쩍 판매되는 옷들을 입혀보기도 하고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명함이라도 뿌리고 싶은 충동들을 가까스로 눌러야했다. 새벽시장에서 새로 나온 제품 중 불티나게 팔릴만한 것을 고르는 것도, 신제품을 실컷 입어 볼 수 있는 것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난 일을 하면서 청바지와 사랑에 빠진 듯 했다.
  "입어 볼 수 있죠"
  "그럼요,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세요?"
  손님의 행동이 심상치가 않다. 마음에 드는 것이라며 입고 벗기를 수차례. 디자인 별로 벗어 놓은 옷들이 산을 만들어 미소로 대하는 나와 함께 그분도 등산을 한다. 그 중에 하나라도 사면 정상에서 야호 라도 외쳐 볼텐데... 많이 입어 본다고 반드시 사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남기고 당당하게 나간다. "마음에 드시는 게 없나봐요. 일주일 뒤 신상품 들어오니 다시 오세요 죄송합니다." 등 뒤에다, 다시 오세요를 외치고 20여 개의 벗어 놓은 옷들을 정리하며 소금이라도 한 됫박 뿌려 주고 싶은 심정이다. 청바지처럼 질긴 손님이 오늘 마수이니 온종일 등산할 각오를 해야 할 가보다. 허나 어쩌겠는가, 손님은 왕인 것을, 이럴 때는 아주 얄미운 왕이다.
  처음 구입해 입은 청바지의 뻣뻣함처럼 느껴지는 어린 학생손님에서부터 열 번 이상 세탁된 청바지가 부담 없고 편안함을 주는 것처럼 연륜 속에 푸근함이 묻어있는 중년아주머니와 옷을 골라주는 다정한 부부 손님들을 보면서 청바지에 묻어 있는 세월의 향이 느껴진다. 요즘 젊은이들은 물까지 왕창 빼고 구멍까지 숭숭 뚫어 입지만 연륜의 멋 속에 묻어나는 애정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일주일 뒤 그 손님이 친구 두 명과 함께 다시 왔다. 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등산할 각오를 하고 있는데 그 분은 홍보 대사라도 된 양 지난번에 내가 했던 말들을 판박이처럼 쏟아내며 친구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제품 설명을 했다. 너무 친절해서 다시 왔다는 말과 함께 친구들은 물론 자신까지도 옷을 구입했으며 그 후 그분들은 단골이 되었다.
 지금이 진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튀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독특한 디자인이 선보이고 있다. 과거 우리가 즐겨 입던 일자형 청바지도 '기본'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걸려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가정, 직장. 학교, 사회의 울타리 속에서 나이라는 틀을 가지고 공존하며 사는 우리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기본이 없으면 새로움도 얻기 힘든 것처럼 세월 속에 묻어있는 연륜의 깊이를 쉽게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길 떠날 때, 휴식을 취할 때, 일할 때, 멋쟁이가 되고 싶을 때, 어떤 이유로라도 정장 차림에서 벗어나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고 뒤돌아 볼 줄 아는 인생의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삶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낡을수록 멋을 더하는 편안함을 찾기 바라며 오늘도 청바지를 입는다.

                                                                                       <한국수필> 2004년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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