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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여인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8:24    조회 : 5,355
 
귀여운 여인
                                            
                                                                                                          노문정(본명: 노 정 애)

  10년 전 이종사촌 동생녀석이 큰 사고를 당했었다. 6시간이 넘는 수술 후에 목숨을 건졌을 때 종교도 없으신 이모는 “신이 없다는 말을 못하겠다. 내가 대중목욕탕에서 혼자 오신 할머니들의 등을 자주 밀어드렸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돌려주시잖니”라며 눈물 섞인 미소를 띄우셨다. 그런 분들을 보면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등을 밀어주는 모습을 가끔 보았었다. 한꺼번에 돌려주신다는 그 말에 나 또한 목욕탕에서 혼자 오신 할머니를 찾아다녔지만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쉽지 않아 한번으로 끝냈었다. 쉬워 보이는 그일 조차 타인에 대한 애정 없이는 흉내조차 내기 힘들었다. 지금 동생은 한 가족의 가장으로 건강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6.25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혼자서 6남매를 키우셨다. 맏이이신 어머니보다 일곱 살 아래인 이모는 아궁이 앞에서 몽당치마에 불붙은 줄도 모른 체 책에 정신 팔려 있다가 어머니의 물세례를 여러 차례 받은 독서광이다. 그분은 홀어머니에 3대 독자인 이모부와 결혼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매운 시집살이를 했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거야” 또는 “난 잘 할 수 있어”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다. 그러면서도 정작 당신의 딸은 홀어머니의 외아들에게 시집보내지 않으려고 사윗감 골랐던 것을 보면 그 시절이 말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이모부의 직장관계로 서울서 부산으로 이사해 몇 년 동안 그분과 가까이 살게 되었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일에 치여 자신을 돌볼 틈조차 없는 어머니와는 대조적으로 월급쟁이 아내로 편안해 보였던 그분도,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과 관심을 받으며 온갖 행사에 주인공으로 빛나는 이종 동생들도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가끔 초대받아 가는 우리 가족들은 그저 잠시 머무는 손님일 뿐이었다. 난 한 쪽 구석에서 동경과 시샘의 눈길을 던졌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공연히 투정을 부리거나 뿌루퉁한 얼굴로 입조차 닫아버려 어머니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든 괘씸한 딸년이었다. 
   사춘기에 들어선 난, 남편의 귀가시간에 예쁜 홈웨어를 입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아내, 멋을 낸 건강식 반찬으로 식탁을 준비하는 일등 요리사, 아이들 시험기간에 함께 공부하며 옆에서 밤을 세는 열렬 엄마, 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때 친척들까지 초대해 즐거움을 나눌 줄 아는 안주인,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더욱더 매력적이며 자기 관리에 철저한 이모처럼 긍정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멋진 현모양처로 살아갈 40대의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내가 서울로 시집왔을 때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신 분이다. 결혼 후 한동안은 이모부가 자다 깨어 맨 얼굴 보면 실망 할까봐 가루분을 바른 후 잠들었다는 그분은 초보 주부인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하셨다. 가정을 잘 꾸리기 위해 자신의 선택을 믿고 가족을 사랑하라. 시댁에 최선을 다하라. 남편을 친구로 여기지 말라. 부부싸움에서 화날 때 반드시 입을 다물어라. 신문은 꼭꼭 챙겨 봐라. 책을 많이 읽어라 등 좋은 스승을 뒀지만 지금 내가 실천하는 것은 화날 때 입을 다무는 것과 한 달에 두어 권의 책을 보는 정도다.
  이모는 50을 바라보던 즈음에 스키장에서의 접촉사고로 다리에 철심을 넣는 큰 수술을 받아 1년 정도 거동이 불편하신 적이 있다. 그런 중에서도 다친 사람이 자신인 것에 감사했다.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책도 실컷 볼 수 있겠다고 갑자기 무수리에서 왕비로 등극했다며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마지막 장면에 보이는 쥴리아 로버츠의 그 환한 웃음을 그분에게서 봤다.   
   이것만은 안 닮았으면 했다. 상대의 약점을 귀신처럼 알고 꼭 집어 말하신다. “그거 나쁘다. 고쳐라” 나도 잘 몰랐던 못된 습관이나 버릇들이 그분의 레이다 망에 걸리면 벗어날 방법은 없다. 가까운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뱉어내는 그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을 멍들게 하기도 했다. 또한 한번 발동이 걸리면 몇 시간씩 지치지도 않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물론 날 위한 좋은 말이지만 귀를 틀어막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무심히 뱉은 말이 타인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 같아 배우고 싶지 않았다. 잠재된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푸는 것 같았다. 이상한 것은 요즘 와서 그 지루한 잔소리와 따끔한 충고가 그리워져 이모를 찾지만 “잘 하고 있지?”라며 환한 미소로 대신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정작 40대에 들어선 난 남편의 귀가에 펑퍼짐한 파자마와 폭탄 머리로 문을 열고, 아이들 시험 기간이라도 내가 보고 싶은 TV드라마는 꼭꼭 챙겨보며, 시어른들 보살필 일이 생기면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목욕탕에 가도 후닥닥 내 몸만 씻고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오기 바쁘다. 냉장고에 남은 반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고 식탁을 준비한다. 조금 손해 보는 것이 편안하다며 삶을 긍정적으로 보라고 타인에게 늘어놓을 뿐, 정작 난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거리며, 눈에 거슬리는 일을 꼭꼭 되짚어 가며 혼내고 따지려드는 피곤한 사람이다. 별 힘들지도 않은 일에 짜증부터 부리는 투덜이 대장이다.  닮지 않았으면 했던 끝없는 잔소리를 아이들에게 따발총처럼 퍼부으며, 별일 아닌 것에도 분기탱천해 비수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토해낸다. 긍정적으로 산다는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멋진 현모양처의 꿈은 아마도 물 건너 간 것 같다. 
  얼마 전 이모가 운전면허증을 따셨다.  이모부가 눈이 나빠져 운전이 힘들자 환갑을 훌쩍 넘긴 그분이 도전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 집 기사로 취직됐다”며 좋아하셨다. 힘들다고 말하기보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 항상 소녀 같은 표정으로 다 잘 될꺼야를 외치시며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와 따뜻한 눈빛을 가진 분. 자신도 할머니면서 아직도 목욕탕에서 “등 밀어 드릴까요?”라며 혼자 오신 할머니를 찾아다니시는 참 귀여운 여인이다. 지금도 난 이모처럼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에세이 플러스>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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