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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들은 모두 행복했다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8:45    조회 : 5,261
 
그래서 그들은 모두 행복했다
                                               

                                                                                                             노문정(본명: 노정애)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Am?lie Nothomb)의 장편 소설 <<오후 네시>>는 학생들에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다가 퇴임한 에밀의 이야기다. 그의 평생 꿈은 아내와 함께 조용한 곳에서 나머지 여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첫눈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서 평온한 삶을 잠시 동안 누리게 되지만 거구의 이웃집 남자 베르나르댕이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매일 방문하면서부터 평화는 깨진다. 마치 제 집인 것처럼 들어와 차를 달라고 요구하며 예, 아니오의 대답만 하는 이 거구는 친분을 쌓기엔 불가능한 이웃이다. 이 불청객을 피해 산책도 가고, 문도 열어 주지 않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지만 실패하게 된다. 
  그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는 에밀은 이웃집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된다. 베르나르댕이 차고에서 자살하려는 것을 보고 구해낸다. 돼지우리 보다 엉망인 그 집에는 의사소통조차 힘든 괴물 같은 살덩어리 아내가 있다. 잘 맞추어진 25개의 시계만이 죽음을 기다리듯 돌아가고, 자살을 실행하기 위해 많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에밀은 이웃이 원하는 것을 자신만이 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베르나르댕을 배게로 눌러 살해한다. 에밀의 아내 쥘리에트는 이웃집 남자의 죽음을 잘된 일이라 평가했고, 타고난 봉사심으로 이웃의 살덩이 아내 베르나데트를 매일 두시간씩 돌봐 주며 그녀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이사 온지 1년이 되던 날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면서 ‘나의 흰색은 녹아 버렸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며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책을 덮으며 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엉뚱하고 다소 엽기적이며 해피엔딩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그래서 그들은 모두 행복했다’였다.
   
  내게도 오전 10시쯤이면 아이를 데리고 문을 두드리는 이웃이 있었다. 그녀의 딸과 내 딸아이가 비슷한 또래였기에 쉽게 친구가 됐다. 차분하며 말이 없는 편인 그녀와 출근부에 도장이라도 찍을 만큼 가까워져 서로의 아이를 몇 시간씩 대신 봐줄 만큼 친해졌다. 시댁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던 내가 푸념처럼 털어놓는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던 그녀가 그래도 당신은 행복한거라며 술만 마시는 남편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몇 달씩 월급이 밀려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 남성으로서의 자신감 상실, 아이에게  아빠 노릇조차 못해줄 것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와 자포자기하는 심정 등이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술을 찾게 만든다고 했다. 남편에게 자책하지 말라는 충고와 노력하면 좋아질꺼라고, 자신도 직장을 가지겠다는 말들로 희망을 심어주려 하지만 항상 실패하는 것 같다며 얼굴에 그늘 한 점 드리웠다. 가난한 사람이 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는 것은 참 고달픈 일이라며 남편에게 잘하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던 것 같다. 그 후 난 그 집 가장의 술 취한 모습을 더 자주 보았으며 그녀는 부업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발품을 팔곤했다. 그 뒤 그녀는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일년에 한두 번 그 집을 찾아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아빠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달음에 달려간 내게 이틀 전에 장례를 마쳤다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으니 남편이 목을 메어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날도 만취 상태에 들어온 그에게 제발 당신 몸과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했단다. 미안하다는 말만 하는 그를 잠자리에 재우고 아이 방에서 잠들었는데 아침에 방문을 열어보니 딴 세상 사람이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고 더 잘해주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며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세상으로 갔으니 그는 행복할꺼야”라는 그녀의 울음 섞인 말에 난 몸조심하고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한동안 난 그 남편이 괘씸하기도 하고 안됐다는 생각에 마음의 몸살을 했다. 아이와 어떻게 살지 막막해진 그녀 생각을 하면 더 우울해지곤 했었다. 내 집 남편은 갑자기 친절해진 마누라의 행동에 도대체 왜 그러냐며 무섭다고 몸을 사렸다. 초라한 내 삶에 감사하는 마음도 가졌었다. 그녀와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었는데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집에서 하루 빨리 이사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후 연락조차 되질 않았다. 
   재혼했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은 것은 몇 년 후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인 것 같다며 자신도 열심히 일하는 중이니 한번 놀러오라고 했다. “잘 지내고 있는거야?”라는 내 물음에 “사는게 다 그렇지 뭐, 그냥 지내고 있어”라는 대답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마음 한곳이 착잡했다. 사는게 다 그렇지 라는 말속에는 ‘나 같은 죄인은 행복해질 자격이 없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아파하라며 넌 행복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난 그 말을 하지 못했으며 그녀에게 가보지도 못했다. 바빠서라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다 잊으라고’도 ‘행복해 보인다고’도 말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무심한 내 성격 탓으로 돌리는게 훨씬 편안했기에 기억 저 편에 묻어두었던 이웃이다.
  내 등줄기가 서늘해진 것은 아마도 그녀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던 것 같다. 죽고 싶은 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에밀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그녀도 결국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여버린 것이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며 네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끌어안고 있는 고통의 악역을 세월 속에 묻어두었으면, 전 남편이 못 견디고 버려버린 힘든 세상 속에서도 남겨진 사람들만은 행복했으면 하는 희망. 그런 것들이 내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고통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은 내가 미안했다. 그래서 악역을 맡은 에밀도, 그녀도 행복해졌으면 하는 ‘그래서 그들은 모두 행복했다’. 이말 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채 그녀 생각을 하니 내 마음에 태산이라도 옮겨놓은 듯 무겁다.              
 
                                                                                      <책과 인생>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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