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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절 기억하십니까?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8:51    조회 : 5,388
 
혹시 절 기억하십니까?

                                                           노 문 정(본명:노정애)
 운동을 마치고 아줌마들과 커피를 마시던 중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남자다.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물으며 본인이냐고 묻는다. 사기 전화가 극성인 때라 심드렁하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S입니다.”
“잘 모르겠는데, 혹시 같은 학교를 다녔나요?”
“아뇨”
“그럼 누구시죠?”
순간 주위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내게 화살처럼 박혔다. 저 쪽에서는 당황했는지 잠시 말이 없다. 죄송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끓으려는 그에게 어떻게 이 번호를 알았느냐고 물었다. 잡지에서 내 글을 보았다고 했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글쓰기 모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사진도 보고 연락처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기억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게 아니라며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초보 수필가인 난 몇 편의 글을 잡지에 실었었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그 글을 보고 한 전화를 받으니 좋으면서도 조금 부끄러웠다. 주위의 아줌마들이 묻는다. 누구냐고. 모르는 사람인데 내 글 보고 전화했다고 했다. 그런 사람 조심해야한다며 전화에 얽힌 경험담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머릿속에서는 한가지 질문만이 떠돈다.  S가 누구지?
 아.. 그다. B대 지질학과. 내가 첫 미팅에서 만난 사람. 공대생인 난 지질학이란 학문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 무슨 과목을 배우는지, 지질학 연구가 지구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것은 아니냐는 등 쉴 새 없이 퍼붓는 내 질문에 자기도 신입생이라 아직 모른다며 나중에 알게 되면 대답해 주겠노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 뒤 그의 학교 축제에 파트너로 갔으며 1년에 몇 차례씩 6년을 만났었다. 어떻게 그렇게 까마득히 잊어버릴수 있을까. 망각의 레테 강물을 한 바가지쯤 마셨는지 깡그리 잊고 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며 기억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자. 용기 내어 전화했는데 모른다는 대답에 창피했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린 그 시절로 돌아가 편하게 말을 놓고 있었다. 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 몇 차례의 메일이 오고 갔다. 그에 대한 기억도 세월을 거슬러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만난 그해 여름방학의 끝 무렵에 자수정이 총총히 박힌 하트 모양의 엄지 손톱만한  돌조각을 내게 주었었다. 왠 것이냐는 내게 “친구들이 여자 친구 준다고 만들어서 나도 만들었는데 줄 사람이 없어서.” 눈치 없는 나는 “너도 다음에 여자 친구 생기면 줘”라고 했더니 “그때 더 크고 좋은 것 만들어 주면 되니깐 그냥 너 해라.” 그 하트는 ‘혹시 녀석이 내게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몇 년을 내 서랍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난히 영어를 어려워하는 내게 비법을 가르쳐 준다며 복사된 테이프를 한보따리 내밀기도 하고, 비를 좋아한다는 내 말에 몇 시간씩 비를 맞으며 걷다가 슬그머니 손을 잡아 자기 주머니 속에 넣기도 했었다. 군대 갔을 때는 자기만 여자에게 편지 못 받았다고 해서 선심성 편지를 몇 차례 쓰기도 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린 가끔 손을 잡는 정도일뿐 더 이상 찐한 사이로 발전하지는 못했었다.
 가까운 사이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제대후 복학한 그와 대학원에 다녔던 나는 그의 친구들과 파트너를 동반한 여름휴가로 덕유산에 갔었다. 쌍쌍이 흩어진 친구들을 찾는다며 늦은 저녁 나간 숲길 산책에서 어설프게 연인 흉내를 내다가 서로 쑥스러워 웃고 말았었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불발로 끝났으며 다시 그냥 친구로 돌아가 있었다. 2박3일 동안 시원한 산속에서 밥만 해먹고 가져간 에릭 시걸의 <<닥터스>> 두 권을 다보고 왔었다. 생각해보니 참 재미없었던 사이였다.
 그가 대학 4학년때 난 결혼을 했었다. 내 결혼 소식을 알리는 전화에 그는 자신도 곧 일본으로 갈지 모르겠다며 축하한다고 했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통화였었다. 화끈한 로맨스도 가슴 아픔 이별의 추억도 없었으며 만나면 그저 미지근한 맹물처럼 덤덤하고 가끔 궁금해서 안부나 묻는 그런 친구였었다.
  그간의 근황을 메일로 주고받았다. 울산에서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 둘과 함께 잘 살고 있단다. 드디어 서울 출장을 온다며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그와 약속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주책없이 내 가슴이 뛰었다. 17년만의 만남. 며칠의 고민 끝에 최대한 날씬하고 어려보이는 옷으로 골라 입었다. 화장하는데 다른 날보다 두배의 시간이 결렸다. 세월을 감추고 싶었다. 
 멀리 그가 있었다. 시간을 잠시 되돌려 놓은듯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의 얼굴에 흘러간 시간들이 담겨 있었다. 중후한 모습의 신사로 변한 그는 내 기억 속에서 보다 더 멋있어져 있었다.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었나?’ 잠시 생각했었다. 그러니 나에게 자신이 먼저 만나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했다. “넌 하나도 안 변했네, 여전히 예쁘다.”나는 말했다. “야! 너 나 만날 때 한 번도 예쁘다고 안 했잖아. 입에 발린 칭찬도 할 줄 알고, 철들었네.” 함께 웃었다.
 참 이상하다. 만나는 순간 내 가슴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우린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여전히 무덤덤하게. 세월을 거슬러도 감정은 속일 수 없나보다. 그 뒤 메일만 몇 차례 오고갔다. 둘 다 다시 만날 이유를 찾지 못한채 ‘아니 만나면 좋았을 세 번째 인연’은 없었다.  한 20년 후 쯤 그가 다시 전화해 “혹시, 절 기억하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지금은 기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때 가봐야 하지 않을까? 내게 세월은 또 어떤 망각의 그물을 던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에세이 플러스>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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