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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의 두 얼굴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9:01    조회 : 5,523
 
컴퓨터의 두 얼굴

                                                  노 문 정 (본명:노정애)

  TV에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본적이 있다. “컴퓨터가 친구가 돼줘요. 채팅도하고 동호회도 만들어 활동도 해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띠는 그들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채팅으로 만나 결혼한 부부는 컴퓨터가 중매쟁이라며 웃음을 건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들은 컴퓨터 속 천사의 날개를 빌어 자유로운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발견한 것이라고나 할까.
  한때 나도 이들처럼 채팅을 즐겼었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던 때였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낯선 서울 생활과, 시댁과의 작은 갈등, 남편의 늦은 귀가, 육아 스트레스 등을 이 천사가 해결해 주었다. 내 말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었다. 여섯살 네살을 갓 넘긴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몇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는 롤러코스트처럼 아슬아슬한 짜릿함과 흥분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었다.
  일주일에 부부관계를 몇 번 하느냐? 묻는 이상한 인간부터 마누라 험담하는 남편(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가슴이 뜨끔 거렸었다), 염소 키우는 이야기를 하는 재미있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그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외로운 사람, 만나고 싶다는 사람, 애인을 구하는 사람 등 일탈(逸脫)을 꿈꾸는 사람은 많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죄송’이란 말만 남기고 바람처럼 빠져 나오면 되니 전혀 부담가질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데 조금의 위안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비밀스러운 이 헛바람은 남편의 퇴근과 함께 끝이 나곤 했었다.
  한때의 이 짜릿한 즐거움은 친구의 일을 알게 되면서 영구히 폐기처분 되었다. 
  H는 까만 피부에 커다란 슬픈 눈을 가진 고등학교 동창이다. 상담실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 앉아 우는 모습을 여러 번 봤기에 더 슬퍼보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속을 잘 드러내 지 않는 조용한 친구였다. 후일 알코올 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동생이 둘 있는 집의 장녀라는 생활환경이 그녀를 무척 힘들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항상 학급에서 1,2등을 유지한 대단한 친구였다. 내가 서울 생활 5년쯤 되었을 때였다. 인천에 살고 있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꼭 놀러오라는 것이었다.
10년만의 만남. 아기자기한 살림 솜씨를 뽐내며 주방에서 먹거리를 만드는 친구의 모습에서 과거의 슬픈 그림자는 볼 수 없었다. 오랜만에 웃으면 초승달모양으로 귀엽게 변하는 그녀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표정에서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TV의 광고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게 했다. 성실한 가장인 남편은 일찍 퇴근해서 아내 칭찬에 열을 올렸다. 단칸방에 힘들게 살고 있던 나는 놀러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하더니 살림도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부럽다, 좋겠다, 행복하겠다 등의 말로 밥값을 대신했다. 조금 수다스러워진 친구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것이 내가 H를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었는데 서로 이사를 몇 차례 한 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심한 성격의 나는 행복해 보였던 그녀가 더 잘 살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다른 친구를 통해서라도 연락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헛바람에 정신 못 차릴 즈음에 고교 동창 중 마당발이라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H의 안부를 묻게 되었다.
“너 아직 모르고 있었니? H 형무소 있어.”  
“왜?”
“뉴스에도 나왔는데... 채팅 못하게 한다고 남편을 죽였데. 그리고 바로 자수했다고 하더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등줄기에 서늘한 냉기가 흘렀다. 몸이 떨렸다. 전화를 어떻게 끊었는지 지금도 기억하지 못한다. 인터넷에 들어가 뉴스를 검색하니 채팅에 빠져 있던 아내에게 바람까지 피운다고 의심하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그녀가 나와 있었다. 그녀도 친구가 간절히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단칸방으로라도 초대했어야 했는데 때 늦은 후회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채팅은 하지 않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전보다 늘어났다. 창만 열면 되는 편리함 덕분에 내 생활 깊숙이 들어와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아이들 가정교사도 그 속에 있고 고스톱을 통한 치매 예방법도 그 속에 있다. 외국사는 아이들 고모나 멀리 있는 친구들의 변해가는 얼굴을 볼 때는 천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악성 댓글로 인해 자살했다는 이야기나 인터넷이 범죄에 악용되었다. ‘집단 광기’의 도구가 되었다는 등의 뉴스를 들을 때면 괴물의 모습을 본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쓸수록 내 기억력을 야금야금 파 먹는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이 녀석의 유혹에 이제는 빠지지 않기를, 공격당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에세이 플러스>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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