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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리 윤'과 라운딩    
글쓴이 : 이용만    23-01-20 22:14    조회 : 3,715

'넬리 윤'과 라운딩

TV에서 LPGA(여자프로골프협회) 경기를 즐겨 보는 편이다. 보는 것 만으로도 선수들의 걸출한 기량을 배울 수 있다. 잘 다듬어진 조경과 초록의 코스 잔디는 보기만 해도 좋다. 여성들의 화려한 복장과 섬세한 숏 게임, 부드러운 샷과 표정 등 남성 경기보다 볼거리가 많다. 우리의 팬pan 제시카 코다는 톱텐top10의 귀여운 선수였고, 괄괄한 편인 동생 넬리 코다도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스포츠 가족으로 가문을 빛낸 ‘코다Korda’자매의 성姓이 재미있다.  

음악 용어로 코다Coda는 클래식 음악의 마지막 악장의 끝 부분으로 절정으로 치닫는 피날레이다. 흥분의 도가니요 클라이맥스다.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더 강렬하게 느껴진 걸까. 180cm 넬리 코다가 뿜어내는 폭발적인 샷은 그녀의 미니스커트마저 날려버릴 정도다.


오늘은 아내와 둘 만의 라운딩을 갖기로 했다. 95세 어머니를 여위고 50일 간의 연미사를 끝내며 수고해 준 아내를 위로하고 싶었다. 오래 전 장인과 장모님을 먼저 여윈 아내를 깊이 공감하지 못해 미안했다. 그때 심한 우울에 시달리던 아내를 위해 급히 떠난 곳이 베트남이었다. 자정에 도착해 택시로 골프장을 찾아가는데, 길을 찾는 운전사가 바뀌면서 거의 납치되는 줄 알고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언어 소통이 안되 벌어진 해프닝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의 우울증은 그렇게 나아졌다. 심각해지는 때가 오기 전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나섰다. 


아내 이름은 순자이다. 윤순자! 딸 다섯 중 막내. 처녀 시절 아내는 이름이 뭐냐고 묻는 남자에게 촌스러워 그냥 '윤尹 이에요' 라고만 했다. 오래 된 에피소드인데 늘 웃게 만든다. 순자順子라는 이름은 큰 언니와 비교해도 촌스럽긴 하다. 아마도 장인 어른은 내리 딸 다섯에 이름을 ‘순자’라고 지으면서 순리順理를 따르기로 하고 아들을 포기하셨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큰 언니를 ‘정희’라고 예쁘게 이름 짓던 감각이 어디로 사라졌겠느냐고 여쭙고 싶다. 

 

들뜬 아내는 컨디션도 좋다. 기가 막힌 어프로치는 깃대에 척척 붙는다. 캐디의 조언으로 멋진 원거리 퍼팅도 홀인 해낸다. 이럴 수가! 남편따라 골프를 하나 둘 배웠고, 띄엄띄엄 가르쳐온 세월이 대견했다. 아내에게 자부심을 넣어 주고 싶었다. 어제 LPGA 경기 중 하이라이트 장면이 떠올랐다. 늘씬한 '넬리 코다'의 6m 퍼팅을 반복해서 틀어주었다. 결정적 시기에 우승한 미녀 골퍼의 명 장면이었다. 그게 제대로 팬 서비스를 하는 거다.

오늘 아내의 퍼트는 넬리 코다를 능가했고, 자신감이 붙은 어프로치 는 프로처럼 당당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넬리 윤!' 하며 외쳤다. 남들이 속으로 무슨 말인가 하는 듯 하지만, 우리 부부 사이에는 '넬리 윤'이 애칭이 되었다. 듣고 보니 나쁘지 않은 눈치다. 이 참에 아내를 애인으로 보기로 했다. 사르트르가 말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시인 김춘수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꽃이 되었다’ 고했다. 순자 대신 넬리 윤과 라운딩하는 상상도 못하랴. 꿈인가! 생시인가! 굳게 믿으면 이뤄진다.


'코로나 19'는 부부간 말싸움보다, 서로 돌아볼 시간마저 그리 녹록치 않음을 일깨웠다. 어느 날 갑자기 유리 벽을 통해 만날 수 밖에 없음을 TV에서 보았다. ‘황혼 이혼’ 이란 말도 사라졌다. 아직도 아내의 뇌리에는 "왜 이게 안돼? 고개를 들었잖아! 방향을 잘 못 섰지!"하는 남편의 말 조각들이 맴도나 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하던가? 꾸중도 격려도 흔적은 남는 법. 아직 정신이 멀쩡할 때 훌훌 털고 축배를 들자. '오~올All’ 하면 ‘버디Birdy’! 버디 낚는 '올 버디'로 건배라도 하자. 해도 팀목과 딤돌이 되자'는 취지다. 손녀와 아내 또 누군가를 위해 버팀목과 디딤돌이 되어 보자. ‘코로나 19’는 '서둘러 사랑할 용기'를 내게도 불어 넣고 있었다. 누구처럼 잔디를 덮고 있을 나이에 밟고 다니니 더 겸손해져야겠다. 


잊지 못할 내 삶의 한 순간』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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