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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의 전화    
글쓴이 : 노정애    17-09-05 18:40    조회 : 4,112

한밤의 전화

 

노 정 애

 

전화벨이 울렸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는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한다. 투병 중이신 친정아버지, 연로하신 시어른들, 멀리 사는 형제들 때문에 받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남편이 받았다.

춘천 경찰서였다. 그이에게 생년월일을 확인하더니 어린 시절 춘천에 살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곳에 산 기억은 없다며 이유를 묻자, 임종을 앞둔 여인이 오래전 버린 아들을 찾는다며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들에게 확인하는 중이라고 했다. 도움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쁜 소식을 들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무거웠다. 경찰까지 나서서 찾으려는 것을 보면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여인인 듯했다. 그녀는 아들을 만났을까?

어느 한가한 휴일 날 아침, 남편은 시어른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어린 시절 춘천에 살지 않았냐며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출생의 비밀을 들려달라고 제법 진지하게 물었다. “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다 듣겠다,”는 어머님의 말에 그날 받은 전화 이야기를 했다. 세월 갈수록 형제들과 닮아가는 그이가 친엄마를 찾아야 한다고 해서 한바탕 웃고 말았다. 곧잘 생모에게 가겠다며 시어른들에게 응석부리듯 말해 식구들을 웃기곤 했다. 한통의 전화는 춘천을 어린 시절 남편이 살았던 곳처럼 친숙하게 만들었다. 그 날 이후 춘천에 가거나 지날 때면 그 여인을 떠올렸다. 그분이 아들을 만났으면 했다.

시간이 숨차도록 달리는 동안 새벽이나 한밤중에 걸려오는 반갑지 않은 전화들을 받았다. 친정아버지, 아버님과 어머님이 몇 년 사이를 두고 돌아가셨다.

치매를 앓던 시어머님은 돌아가시기 6개월 전부터 대부분의 기억들을 다 지워버렸다. 결혼 전으로 훌쩍 뛴 과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가족들에게 유치원생처럼 공손하게 배꼽인사를 하며 아이처럼 굴다가도 달아났던 기억이 돌아오면 작은 시아주버님 이름을 부르며 왜 안 오냐고 기다렸다. 현실로 돌아온 짧은 시간, 문 앞을 서성이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작은 아들을 찾았다. 자식을 기억하는 늦은 밤의 기다림은 더 간절했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이리 어두워 어찌 올꼬라며 잠자리에도 들지 못하셨다. 사업 실패의 여파로 국내외를 떠돌아 연락조차 되지 않고 간혹 바람처럼 나타나 금전적 피해를 안겨줘서 식구들을 힘들게 했던 분이다. 끝내 아주버님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임종 때 어머님은 눈을 감지 못하셨다.

어머님 떠나신지 2. 기일 음식을 준비하면서 부지런하고 살림솜씨 야무지셨던 어머님 생각이 났다. 이런 날은 더 그립다. 야채를 간결하게 다듬거나 마른 빨래들을 사각 귀퉁이를 맞춰서 반듯하게 개어 주시던 모습들이 눈앞에 선했다. 여전히 시아주버님은 돈이 궁할 때만 전화를 한다. 남편이 마지막 순간까지 형을 기다린 어머님을 떠올리며 오래전 그날 밤 걸려온 전화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아들을 못 찾으면 전화 달라고 했어야했는데... 그냥 아들이라고 임종 때 손이라도 잡아드렸으면 그 분은 편히 눈 감지 않았을까. 내내 마음에 걸리고 후회가 되네. 내가 너무 철이 없었어.”

자식을 향한 부모의 간절함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어른들을 보내고서야 우리는 알았다. 제사를 지내며 형을 기다리는 남편의 눈길은 내내 문밖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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