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이별
김기수
아침 식사 후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마시고 오전 9시에 집을 나선다. 하루 일상 걷기 시작이다. 자연치유력을 위한 힐스템 온열 테라피로 향한다. 소위 온열 의료 찜질방이다. 아내 꽃보선이 적극 추천한 시간과 공간이다. 9시 반에서 10시 사이부터 시작하는 나만의 힐링 공간에서 건강과 평안을 위해 1시간 정도 몸을 맡긴다. 43℃ 전후 저온 찜질 시에도 땀 배출이 아주 잘 되고 피로감이 빠르게 완화된다. 영육 간에 맑고 쾌적함을 준다. 귀가 후 부족한 걷기 걸음수를 채우려 런닝머신에 오른다. 하루 일상 걷기 걸음 수를 7천 보 이상으로 채운다. 건강한 삶을 위하고 영육간에 강건함을 찾으려…
2023년 말에 오랜 절친이 (『사상계』 177호, 1968.1)에 실린 [조지훈, 병(病)에게]라는 詩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 중략 …
잘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이 시는 「지조론(志操論)」이라는 글을 통해 지사적(志士的)인 삶을 추구하던 조지훈이 말년에 이르러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적 인생관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랜 나의 절친이 자신의 심경과 처지를 이 시를 빌어 나에게 보여 준 것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일상생활에서도 호흡기를 사용한다며 건강에 불편함을 호소했던 오십여 년 가까이 지내던 친구다. 그러던 그가 갑작스레 2024년 3월 초에 서울 00병원에 입원했다. 며칠 후 대학 동기 몇 명이 병문안을 다녀왔다. 호흡기능과 관련해 비슷한 불편함(COPD,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을 잘 알기에 깊은 위로와 관심을 가졌던 친구다. 얼마 후 시설 좋은 요양병원으로 옮겨 치료 잘 받고 삶과 투쟁 중이다.
아래는 오랜 벗이 3월 중순에 보낸 카톡 문자 내용이다.
”친구 기수 님께, 오늘은 봄비가 제 철에 맞게 곱게 내립니다. 가족 모두 평안하시고 심신 아울러 건강하게 지내시죠. 엊그제 저는 여러분의 염려 덕분에 00병원 잘 다녀왔습니다. 그런대로 괜찮다는 주치의 교수님의 말씀 듣고 진료와 사전에 검사(X-ray) 받고 응급차로 편리하게 요양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그런대로 진료 받으며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훨씬 정신 맑고 청정하며 반짝이는 듯이 두뇌 회전이 좋습니다. 염려 덕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친구님께서도 예전보다 더 재미있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5월 중순에 혼자 요양병원을 찾았다. 어느 정도 평범한 환자 모습이려니 했던 생각은 간데없고 코, 입, 배에 호스를 연결해 삶을 지탱하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말은 힘들게 하면서도 지치진 않았고 휴대폰 사용은 잘하고 있었다. 얼굴과 몸 손발이 창백하고 깡마른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이 지내던 벗들에게 전화 통화도 했다. 헤어지려고 손을 잡았을 때 오랫동안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뭉클함이 가슴을 누르는 기분이었다. 마음 아프고 아쉬움에 쓸쓸하기가 그지없었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겠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톡 문자가 나의 심금을 울리고 안타까운 내용뿐!
나의 답신, “희구 친구! 자네 생각에 글 하나 써 봤네. 수필과 비평 4월호에 실렸다네. 제목은 「사유의 종착역」” “5월 말에 담양 죽녹원과 순창 메타세콰이어길을 다녀왔네. 자네 눈이라도 시원하시게. 사진 몇 장 보내네.”
절친의 답신, “오랜 친구 기수에게. 메타세콰이어가 길옆으로 늘어선 곳에 다녀오셨군. 그 유명한 담양 메타세콰이어 그 나뭇길 속으로 시원하게 가로수길 여름맞이 산책 나들이 잘 다녀오셨군. 부근에 한우 맛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맛있게 먹고 오셨군. 눈앞이 산뜻해지는 상쾌한 남도 여행 축하합니다. 오월 말 절친” 이것이 나에게 날아온 마지막 문자.
6월 한 달여 무소식. 김훈의 『허송세월』을 읽으며 일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책 읽기.
7월 7일 오전, 일요일 아침 영상예배를 마치고 스탭퍼에 올라 워킹하는 시간. 절친의 카톡이 떴다. “이길용 부친상. 저의 아버지이신 이희구 님께서 향년 75세로 2024년 7월 7일에 숙환으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절친의 아들이 보낸 訃告! 아… 올 것이 왔구나! 멘붕이 엄습한다. 동문수학한 대학 동기들과 서울 00병원 장례식장에서 오후에 보기로 했다. 오호, 통재라. 가슴이 울면서 탄다.
「친구여, 잘 가라」(추도문)
대학 시절부터 50년 지기지우 대학 동기 절친이 그제 아침 소천했습니다.
이제 겨우 70대 중반 넘었는데~ 아직은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친구는 ROTC 11기 출신으로 전방 지역 철원에서 근무하다
역사적인 사건 제2땅굴을 발견하여 뉴스의 초점이 된 소대장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며칠간을 방송에 오르내리면서
영광스러운 충무무공훈장을 국가로부터 수여받았습니다.
… 중략 …
혼자된 지 7년 여 세월이 지난 지금 힘든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아, 자랑스러운 육군 장교, 그리고 존경받던 교사 이희구 그 이름 석자!
길지도 못한 삶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서럽고 기구한 굴곡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진달래 꽃비 내리는 서역 삼만 리
그곳에 사랑하는 아내도 가슴 저리게 하던 큰아들도 함께 있을지니,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가족 사랑 마음껏 어울려 누리시게나.
아, 아까운 친구여, 두 손 모아 영생을 축원하고 기도하노라.
대전 국립묘지가 아니고 서울 동작동의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니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서울 나들이에 오가며 가끔은 만나 뵐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매년 7월 7일을 잊지 않으리…
삶의 종착역을 달려 저승으로 소풍을 떠난 벗. 저승으로 여행을 떠난 절친.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한 줌의 가벼운 재로 납골당에 안치됐다. 청춘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이승에서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노래하던 그였는데… “인생은 헛되고 헛되도다.” 뇌이면서 귀가했다. 이제 칠십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다. 부질없는 생각에 잡념이 많이 인다. 잡념이 부질없다기보다 삶과 죽음이란 단어가 늘 친근하다. 인간의 존재는 죽음을 향해 있는 삶이 아닐까? 언젠가는 사라지는 인생이라도 현재 삶을 충실하고 건강히 살자.
“친한 벗이 한 자 글월도 없으니(親朋無一字) 늙어감에 외로운 배만 있구나(老去有孤舟)” 함께 공부한 〈두시언해〉 중 ‘악양루에 올라서’가 현실이 되었다.
- 한국산문 9월호(vol 221) 발표작 - https://blog.naver.com/2kschon/2kschon's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