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국화’
국화 리
‘저 여자가 왜 이름 갖고 몸부림이야.’
수 천 의 개미목소리가 왕왕거리며 달려들어서 몸이 가렵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몇 개의 이름들을 많은 사람들은 알아 버렸나 보다. 어쩌다 내 분신들이 모두 나서서 춘추전국시대를 누리고 있나. 내 이름의 사연은 또 다른 사연을 만들어 가며 울고 웃는 해프닝이 있었다.
첫 딸로 나타난 나를 어른들은 반기지 않았다. 아들이 대세였던 그 시절엔 어머니도 죄인이었다. 이름도 없는 나를 어머니는 슬그머니 ‘국화’로 불러 주었다. 그녀의 첫사랑인 국화는 자라면서 웃지 않았다. 바로 남동생들이 태어나 그들이 집안의 기쁨이었다.
국화는 학교를 좋아했고 공부에도 열심을 보였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름으로 인해 입가가 땅 끝으로 주저앉았다. 배우는 책에서 국화꽃이 보이고, 가을이면 국화꽃 이름이 곳곳에 가득했다. 온 세상에 국화라는 글자가 널려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라 숨고 싶었다. 꽃 이름은 가볍고 천박한 이름으로 학급 반장의 이름은 아니라 생각했다.
딸의 상한 마음을 알고 어머니는 정숙(곧을 정 맑을 숙)으로 바꾸어 주었다. 모범생 이름을 갖고 기생 같았던 나의 위치가 귀족으로 신분 상승된 희열을 맛보았다. 이제는 당당하게 내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새 이름에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보아왔던 교실 뒷면에 시커먼 큰 글자 ‘정숙’이 내 눈을 잡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어느 날은 공원, 또는 극장에 ‘정숙’이 나붙었다. 내 이름은 조용히 해야 할 공공장소에 단골인 보통명사이었다. 그뿐인가, 손 정숙, 천 정숙, 한 정숙, 염 정숙, 오정숙...등등으로 세상은 정숙 가족처럼 보였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동명이인이 두 명이 더 있었다. 새 학년 첫 교실에서 출석을 부르자 두 명이 동시에 ‘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고는 출석부를 흩었다. 교실안의 백여 개의 눈이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그후 큰 이정숙, 작은 이정숙, 노래 잘하는 애, 점 많은 애…수업 중엔 선생님이 부르면 둘이 동시에 일어나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웃음거리가 되는 내가 재미있지 않았다.
입이 한 줌 튀어나오고 눈물이 쏟아질 듯한 나를 보고 어머니는 이름이 좋으면 많다고 껴안아 주셨다. 꽃 이름보다는 가슴을 펴고 다닐 수 있어서 참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이름에 시대의 흐름이 있었다. 내 위 선배들은 숙자, 영자, 길자, 춘자, 명자등 자자 돌림으로 동명이인이 많았다. 몇년 아래세대인 우리는 ‘희’자 돌림으로 내 친구는 명희, 승희,정희, 상희이거나 ‘숙’자가 많았던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내 후배들은 경애, 정애, 선애 등 애자가 많았었다. 이름을 보면 몇 년도 출생인지 짐작이 갔었다.
미국으로 이주하자 남편 성인 ‘김’으로 바뀌었다.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Mrs. Kim 또는 김 정숙으로 불렸다. 그러나 학교 동창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 이름이 사용되었다.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부터는 집으로 빛 독촉 하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크레딧 카드를 쓰고 돈을 안 갚았다는 편지다. 얼마 후 콜랙션회사로 넘겨져서 집과 직장으로 전화가 빗발쳤다. 해마다 몇 건씩 해결하지만 그치지 않았다. 소셜시큐리티 사무실에서 믿을 수없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비슷한 다른 내가 있었다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미국도 별 수 없는 나라로 여겨졌다. 이민자이고 이름이 흔해서 생기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졌다.
기회는 왔다. 시민권 인터뷰를 할 때 담당자가 지금 이름을 계속 쓰겠느냐고 묻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암시이었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이름으로 창작할 기회이었다. ‘정숙’은 받침이 있어 미국사람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는다. 스펠링을 불러주면 엉뚱하게 불러서 발음을 고쳐주느라 웃플 때가 많다. 내 나라도 아닌 중국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아 세련된 서양 이름을 생각해 두었었다. 첫 이민지인 Santa Monica를 기념하여 ‘Monica’가 좋을 듯했다. Saint Monica에 사는 Monica라면 그들은 미소가 넘칠 것이다.
성도 Lee Kim으로 새로이 만들었다. 내성과 남편성이 합친 새로운 성을 만들어 쓸 수가 있는 미국이 신기했다. 이름의 변천사를 남기기 위해 중간이름으로 Jung Sook을 넣었다. ‘Monica Jung sook Lee Kim’ ! 내 작품에 양쪽 입 꼬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고유명사인 내 이름에도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된 것도 며칠이 안 걸렸다. 사람들이 이름을 물으면 갑자기 그 긴 이름을 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상황과 경우에 따라 나누어 불렀다. 미국사람에겐 Monica Kim, Monica Jung Kim, Monica Lee Kim, Monica Js Kim, Jung Kim,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겐 이정숙, 김정숙, Mrs. Kim, 국화.정숙등으로 흥 따라 흘러나왔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거대한 사이버세상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 동안 기분 따라 입력한 나의 이름들이 모두 나서서 유희한다.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걸까. 누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할 것인가.
사기꾼처럼 여러 얼굴로 변장하기 위함은 아니지 않은가. 특별한 존재감을 위해 이름으로 멋을 부리고 싶었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하면 평범한 여인이 이름으로 쇼를 벌이다 널 부러지는 것 같아 머시기 하다.
내가 만든 업보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죄 값을 받을 일 없으니 억울하다. 그것을 ‘조각보’ 라고 불러보면 좋을 것 같았다. ‘인생은 미완성, 내가 만드는 조각보.’로 불러보자. 롤러코스터를 타며 어지럽게 달릴 때, 천둥, 번개, 따가운 햇발, 영글은 땀과 눈물방울들이 범벅이 되었다. 그 모양과 색깔이 다른 조각들과 어우러져 ‘내 인생의 조각보’를 짜고 있었다.
국화꽃과 그 향기에 폭 쌓여서 바라보시던 영정의 어머니.
“국화 야 ! 남은 너의 인생은 국화 향기만 같아라.”
조각보 속 국화가 엄마 젖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엄마 냄새로 촘촘한
내 이름은 ‘국화’ 다.
(2020.9) e-mail 주소 jungkimheal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