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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프타임 쇼 ( 미주 문협 가을호)    
글쓴이 : 국화리    24-10-09 08:06    조회 : 1,713


                                                                                                  하프타임 쇼
 
                                                                                                                                                                               국화리
 
  미식축구 경기는 뜨겁다. 매해 2월 초 일요일에 열리는 슈퍼볼은 올해 58회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6만 명 이상의 관중과 일억 명 이상이 TV 앞으로 모인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치킨 윙과 피자를 먹으며 즐기는 미국인의 축젯날이다.
40여 년의 미국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미식축구를 배울 인내가 없었다. 내 몸은 거친 경기에 몸살을 한다. 언젠가부터 그 광란의 시간대에 나의 외로움을 쾌락으로 역 전환해 주는 15분이 있었다. 하프타임 쇼다.

   재미 수필가 문영애 씨가 ‘슈퍼볼’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우린 같은 문학회 동인이다. 미국민이 열광하지만 나에게 난해한 경기종목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글은 매력적이고 흥미로워 호평을 받았다.
작가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다. 삼부자가 슈퍼볼을 즐기는 것에서 남성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글을 보면 이들이 슈퍼볼을 즐기는 동안 그녀는 딸과 함께 쇼핑을 즐겼다는 구절이 나온다.
   슈퍼볼은 공을 발로 차고 들고 뛰면서 한 단계 10야드씩 마지막 4단계 상대지역을 점령하는 경기다. 땅따먹기 전쟁이다. 경기 중 몸싸움으로 사상자가 가장 많은 종목이다. 요즈음 선수들은 얼굴에 철창 가면을 쓰고 갑옷으로 가슴과 어깨 부분을 가리고 경기를 한다. 선수들이 긴 창을 든다면 로마의 병사들 같을 것이다. 여자들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운동경기에 미치지 않는다. 가족 과반수가 좋아하면 여자들도 옆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으니, 그녀는 나보다 조건이 좋았다.
  나는 딸만 두 명 있다. 여자만 있어 외톨이인 남편은 주말 드라이브를 좋아했다. 우리는 그 시간에 캠퍼를 타고 킹스캐년이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서 일박하고 돌아오곤 했다. 한가한 도로 위로 차가 달리면 가슴이 뻥 뚫렸다. 2월은 봄이 땅속에 머물러 초록빛과 들꽃을 선물해 주지는 못한다. 산 위에 듬성듬성 흰 눈은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지루한 차 안에서 한국서 배워온 노래를 불렀다. 그중에 한 곡은 잊을 수 없다. 나도 즐겨 불렀던 조영남의 ‘인생’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던 그때에······사랑이 미움 이기고 평화는 전쟁을 이겼네. 마지막 숨을 거두며 그가 남긴 한마디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 

    긴 가사의 철학적인 노래를 8살 아이는 앵무새처럼 부르고 또 불렀다. 후일에 딸에게 왜 그 노래가 애창곡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곡의 흐름이 좋아 부르는 것이 재미있단다. 여러 해 동안 큰딸이 <인생>을 들려주었지만, 우리 부부는 노랫말을 깊이있게 마음에 담지 못했다. 지금에야 고장 난 축음기 소리로 끝없이 나를 맴돈다.
  슈퍼볼 시청자들이 집안에서 환호할 때 우리 가족은 숲속을 걸으며 솔향에 취하곤 했다. 요세미티 폭포 소리를 들으며 신에게 경배도 했으니 좋았다.
   아이들이 십 대에 접어들자 그들은 그들만의 주말을 갖기 원했다. 나도 남편과 둘만의 장거리 드라이브가 내키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시간개념은 상대적이다. 500마일의 거리를 연인과 함께 운전한다면 2시간도 안 걸리지만 서늘해진 부부에게는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부부가 침묵으로 차를 타는 일은 둘이 다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혼자 운전하면 명상 시간이 되기에 남편에게 잘 즐기라 했다. 그는 그곳을 자주 다녀왔고, 언제부터인지 그에게 새로운 동행이 생긴 것을 몰랐다. 내 남편은 1박2일 드라이브를 계속했고 동행은 나도 아는 여자였다.
   나는 집안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시끄러운 슈퍼볼 날은 호기심으로 TV를 켜놓는다. 선수들이 공을 움켜쥐고 엉겨 붙어서 뒹굴며 태클을 걸며 난장판이 된다. 운동경기가 무지막지하다고 생각하며 미국 사람의 복잡한 내면이 있는 걸까 생각도 했다. TV는 시청자 없이 내 거실에서 경기를 진행하기 일쑤다. 나는 잡일로 이방 저방을 왔다 갔다 했다.
  어느 해 슈퍼볼 날이었다. 선수들이 원초적인 싸움을 하다 멈추었는지 중간에 화려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TV 앞에는 검은색 미녀가 긴 다리를 맵시 있게 흔들며 열창을 했다. 요즘 핫한 가수 비욘세가 아닌가. 백 명이 넘는 백댄서들이 운동장 무대 여기저기서 출몰하여 춤을 추었다.
  게임의 전반부는 15분씩 두 차례인 30분이다. 선수들은 질긴 싸움으로 1시간 이상 운동장에 서 있다. 나는 이 지루한 한 시간 전에 TV를 꺼버리곤 했던 것이다.
  하프타임 쇼에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최고 인기 가수가 초대된다. 거대 관중과 억 소리의 시청자를 열광시키는 공연이다. 공연을 좋아하는 나는 TV 앞으로 바짝 달라붙게 되었다. 자주 볼 수 없었던 마돈나, 레이디 가가와 비욘세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니.
  하프타임 쇼는 팝 스타들에게 꿈의 무대이다. 그들은 출연료 없이 이 무대에 선다. 그동안 롤링 스톤스, 프린스, U2, 레이디 가가, 비욘세, 위켄드 등 정상급 스타가 이 무대에 올랐다. 작년 리한나의 출연은 역대 가장 많은 시청자가 본 쇼였다. 만삭의 배를 빨간 바지 드레스로 드러내며 격정의 댄스와 노래를 했다. 가슴에는 시선을 끄는 노출 브라가 출렁거렸다. 올해는 R&B의 전설 검은 피부의 어셔가 공연을 펼쳤다.
  슈퍼볼의 하프타임 첫 쇼는 1967년에 시작하여 소규모로 해왔다. 슈퍼볼이 대중의 인기를 끌자 방송사들은 시청률 전쟁에 돌입했다. 슈퍼볼이 다른 방송사들에 시청자들을 빼앗기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망해가는 슈퍼볼의 시청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1993년에는 마이클 잭슨을 출연시켰다. 이때 쇼의 폭발적인 인기는 지금까지도 하프타임 쇼의 최고 무대라는 평판을 가져다주었다. 슈퍼볼의 최대 시청률을 되찾았다. 하프타임 쇼 이벤트는 여성 시청자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내 딸들도 나처럼 슈퍼볼 경기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하프타임 공연에 미치지도 않았다. 나는 홀로지만 슈퍼볼이 있는 날은 미국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공짜 공연에 빠진다. 경기장이 무대가 되는 공연 규모와 화려함에 탄성이 나온다. 동시대를 풍미하는 가수들의 활활 타오른 공연에 나는 노예가 된다. 13분 만에 끝남이 아쉬워서 한 시간 공연으로 채우기도 한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 쇼를 간식으로 즐기며 천천히 식힌다.
  이날은 인공조미료로 한껏 맛을 낸 거대한 쇼를 보느라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 년의 하루쯤은 솔로인 나를 쇼에 폭 빠지게 허락한다.

20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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