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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    
글쓴이 : 김창식    15-02-17 14:38    조회 : 7,120
 
                                       제비 
 
 
 한 밤중이나 새벽녘이었을 것이다. 수상한 소리에 깨어 거실로 나오니 냉장고가 신음하고 베란다의 화초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숨을 몰아쉬었다다음날엔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열악한 근로조건을 불평하고, 모르는 새 위치를 바꾼 의자와 탁자는 시치미를 떼었다작은 양철 곰 인형은 북 채를 쥔 손을 올리려다 말았다.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불안한 꿈과 수상한 소리는 계속되었다. 집안의 모든 움직일 수 없는 것들에게 비밀스런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것을 감추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은 진즉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밀린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현상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었다시나브로 체중이 줄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위로했다. “당신이 직장을 그만 둔지도 벌써, 그게 아무래도.” 말을 흐리던 아내가 작심한 듯 권했다. “병원에나 가보지 그래요?”
 병원은 건물 이층에 있었다. 아직 삐걱거리는 낡은 목조 건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미닫이문을 젖히고 들어서자 표정 없는 간호사가 볼펜과 종이를 내밀었다. 백지 위에 이름과 연락처, 주민번호를 적는데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나 외에 다른 환자는 없었다. 낡고 헤진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 증세를 듣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헛것을 본 것이지요. 심신의 균형추가 무너진 것인데.
  그가 안경 너머로 눈을 반짝 빛내더니 단정적으로 말했다.
 “키우시는군요.”
 "? "
  의사가 차트 위로 손을 놀리며 고갯짓으로 답변을 재촉했다. 시답지 않다는 듯새삼스럽게 뭘 그러냐는 듯 알면서.
 “선생님, 키우다니요? 그러니까 무엇을, 무엇을 말입니까?”
 의사가 웃었다. 희미한 웃음 속에는 그 자신 곤혹스러워 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앵무새나 카나리아는 아니지요. ! 그러니까 제비제비를 키우시냐고요. 암컷 제비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비 몰러 나간다? 내가 흥부도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며 여전히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그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답답해했다.
 “,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 모양인데. 제비, 그러니까 여자 말이지요.”
 , 그 제비남자 중에도 제비를 키우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보다 내게 여자 문제가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것이 언제였던가. ‘정답던 얘기 가슴 가득하고~’ 라틴 트리오의 노래 <제비>의 선율이 바이올린의 현()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항변했다.
 “선생님, 전 결단코 여자 문제가 없습니다. 아내와도 사이가 좋은 편이고요.”
  의사는 불쾌해 하며 한꺼번에 말을 쏟아 냈다.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솔직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더 이상 진료를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무의미하지요.”
 난 의사의 협박성 질책에 다급하고 초조해 졌다. 병원에서 의사의 화를 돋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떻게든 관계 복원을 시도하여야 했다
 “, 그렇군요. 선생님, 제가 사실은.
 누구든 여자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여자 하나 쯤 대충 만들어 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나는 급히 가상의 서랍장을 헤집어 여자 하나를 꺼냈다그러자 그 여자를 전부터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됐습니다, 선생님. 그래서 전 무척 괴롭습니다.
이야기하는 내내 의사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는데, 별로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말했다.
 “그러셨군요. 저도 말입니다사실은.
 의사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그의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그가 울먹였다고백이 끝나가고 있었다이 세상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날조된 것이거나 각색된 것이다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기이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누구이며 그는 또 누구인가?  모든 것이 안개 속 풍경처럼 흐릿했다. 의사는 환자로서 내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의사가 되어 그의 호소를 들었다.
 상담은 얼마간 더 계속되었다. 우리는 한 달 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35백 원을 지불하고 침묵하는 간호사로부터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낭하에나 계단엔 어떠한 온기도,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그러니까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한 달쯤 지나 병원을 찾았다거리는 질척였고 으깨어진 얼음 조각이 발길에 차였다. 겨울이 퇴각을 서두르고 있었다. 먼 산에는 연기인지 아지랑이인지 모를 희뿌연 기운이 아른거렸다머지않아 삭막한 도시 빌딩의 처마 밑에도 제비 몇 마리 쯤 날아들 것이다.
 병원 건물 주위 여기저기에 널빤지와 마대종이 같은 허섭스레기가 널려 있었다. 지게차가 연신 흙더미를 퍼내는데 인부 서넛이 파 헤쳐진 검은 구덩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댔다. 바람이 일며 흙먼지가 풀썩 날아올랐다.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수필2015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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