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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오후    
글쓴이 : 박병률    15-07-28 22:39    조회 : 5,704

                            행복한 오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무용단의 <제의CEREMONY 64>(안무 윤성주)를 관람한 뒤 아내와 장충동 원조 족발집에서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바람, 축원, 감사의 마음을 담은 제 의식을 지내왔고 그 의식에는 무용이 뒤따랐다.

   불교의식에서 추는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 장면에서 갑자기 커다란 북이 등장했고 북소리는 고요 속에서 내 심장을 더 뛰게 했다. 민속춤의 하나인‘도살풀이’ 춤은 긴 수건으로 그려지는 선의 아름다움과 화려한 발 디딤새의 특징이 살아있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 순간 커다란 조명이 둥글게 비추고, 동그라미 안에 아기를 잉태한 여인이 섰을 때였다. 배를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 여인의 주변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모든 생명에 드리는 감사의 메시지 같았다. 우린 감상평을 주고받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옆자리에 할머니 세 분이 자리를 잡았다. 앉자마자 “무대에서 춤만 추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 라고 한 분이 말했다. 그러자 다른 분이 답했다. “내일 선생님이 줄거리를 다 말해줄 건디, 뭣땜시 걱정혀.” 라고. 

   얼핏 듣기에 우리와 같은 <제의>를 본 모양이다. 이야기를 더 기대했지만, 금세 막을 내리고 “사람 몸에 대해서 배우다 보니 과학 시간이 재밌어” 라고 또 다른 할머니가 말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영어를 몇 회 통과했어?” 라는 등 서로에게 물어볼 뿐 답변은 가늘고 연신 웃음보가 터졌다.

  “할머니 좋은 일이 있으세요?”

라고 내가 물었다. 할머니가 듣는 둥 마는 둥 웃고 있자 다른 할머니가 나서서“우리 사회 선생님은 웃고만 있어도 15점을 준대요”라고 말했다.

  학교에 다니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까 웃고 있던 할머니가“인생은 60부터, 우리는 중학생이오.”라고 큰 소리로 답했다.

  내가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더니, “나도 왕년에 …….”하며, 초등학교 6학년 학예회 때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인 스크루지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스쿠루지가 지독한 구두쇠로 묘사되듯 나이, 성격, 특징에 걸맞게 중절모를 삐뚜름히 쓰고, 매부리코를 달고, 검은색 양복에 나비넥타이며 콧수염을 달고, 동냥하러 온 사람한테 지팡이를 휘둘렀다고 한다. 그때 “‘밥 크라칫’은 정민이라는 남자애가 맡았지…….” 라고 말끝을 흐리며 창문 쪽을 뚫어지라 본다. 잠시 후 혼잣말을 하신다. ‘친구가 책가방을 메고 중학교에 갈 때, 자신은 골목에 숨어서 친구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분위기를 살릴 겸 지금 하시는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른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인천이 집인데 하루 4시간 잠을 자고 영등포에 있는 옷 수선집에서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학교에 간다는 것이다. 반장을 맡고 있다는 분도 학교에 가려고 식당을 운영하면서 틈을 낸다는 것이 다들 행복한 오후인 듯.

 

   유엔이 새로 정한 기준 즉,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에 대한 측정 결과에 따르면 ‘0세~17세가 미성년자, 18~65가 청년이고 66~79세가 중년, 80~99세가 노년으로 100세가 넘으면 장수노인이란다. 사람의 나이를 5단계로 나누어 발표한 것이다.

  한숨을 돌린 뒤, 할머니께 막걸리 한 잔을 따라드렸다. 걸죽하게 한 잔 들이켜시더니 “난, 어린 시절 이야기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어.” 그러시며 초등학교 시절로 화제를 돌렸다. 

  어느 날 국어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칠판을 세게 내려칠 때, 맨 앞자리에 앉았던 할머니는 “선생님 방귀 뀌었지?”하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질문을 받은 선생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단다. 수업이 끝난 뒤 교무실까지 선생님 뒤를 따라가며 “뀌었지, 뀌었지” 라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과 맞물려서 할머니 세 분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자랑이 늘어졌다. 남자들이랑 몰려다니며 깡통을 발로 차기도 하고, 개구리를 맨손으로 잡고, 논배미를 돌아다니며 메뚜기를 잡던 일, 길에 죽어있는 꽃뱀을 막대기에 감아서 남자애들한테 내밀어 겁을 주기도 하고, 정월 대보름날 이웃 마을과 불 싸움할 때 남자보다 깡통을 멀리 던졌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수다는 무용수들이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생명력 순환, 재생산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였다. 이 세계를 지속시키고 계속 돌아가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은 생명의 힘! 마치 작품에서, 말랐던 가지에 봄에 새싹이 돋아나듯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 귓속이 출렁거렸다.

 

                                                                                                     책과인생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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