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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백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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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삐라같은 사람    
글쓴이 : 백춘기    16-05-28 11:28    조회 : 5,919
 197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니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회식문화였다. 학생 때는 기껏해야 중국집에서 군만두에 고량주나 소주를 마시거나 변변한 안주도 없이 라면이나 김치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갑자기 그 격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회식을 했다하면 갈비나 불고기를 주로 먹게 되고,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학교 다닐 때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식집에 가서 비싼 광어나 도다리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진 것이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봄철에 본사의 부장이 현장에 순시 오던 날 일이 엉망이라고 전에 없이 엄청난 꾸중과 기합을 주고 나서 위로와 격려차 직원들과 일식집에서 저녁을 같이 하게 되었다. 횟집에 갈 때마다 도다리는 눈이 좌측에 있고 광어는 우측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둘 다 너부데데한 모양이 얼추 비슷하여 몇 번을 들어도 분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머리를 나의 쪽으로 놓았을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광어는 좌측에 눈이 있고 도다리는 우측에 눈이 있다. 즉 ‘좌광우도’가 옳다. 또 도다리는 등에 단단한 띠가 있으며 더 확실하게 구별하는 방법은 광어는 이빨이 있고 도다리는 없는데 광어는 동물성이고 도다리는 잡식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양식기술이 발달되어 값싸게 회를 먹을 수 있지만 그때는 모두 자연산으로 값이 만만치 않았다. 회를 담은 접시 바닥에는 무우채를 두툼하게 깔아 회의 양이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무채에 함유된 비타민 C는 생선의 산화를 방지하고 염분을 흡수하며 습기를 제공하여 신선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침내 회가 나오고 건배를 한 다음 호랑이 부장님이 “자 먹지!”하고 식사 시작 신호를 하였다. 모두 부장님이 먼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입사 동기인 황**군이 회 접시의 한편에 쭈글쭈글하고 볼품없는 회를 모아 자기 접시로 옮겨 담는 것이다. 잠시 그의 행동을 뜨아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부장은 점점 얼굴이 굳어지며 성난 장비처럼 눈을 치켜뜨고 젓가락을 상에 집어던지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흥분하였다.
“야, 인마! 너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넌 위아래도 없냐?
이 버르장머리 없는…….”
아뿔싸~ 그것은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가장 쫄깃쫄깃하고 맛이 있다는 소위 ‘엔삐라’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 감히 젓가락이 가지 못하고 상사가 먼저 들기까지 눈치만 보는 중인데 그것도 모르고 황군은 주방장이 회를 썰다가 남은 부스러기까지 알뜰하게 다 접시에 담았는가보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기 딴에는 반짝 반짝 빛나고 모양 좋은 것은 윗분들 드시고 볼품없고 못난 것은 자기가 처리하겠다는 착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엔삐라’는 광어뿐만 아니라 생선의 지느러미에 붙어 있는 부분 즉 뱃살을 말하는데 ‘엔가와’라고도 한다. 거센 물결을 헤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느러미 운동량 때문에 쫄깃쫄깃하며 오래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우러나온다. 간장에 찍으면 간장에 기름이 동동 뜰 정도로 부드럽고 지방이 많은 곳으로 오돌토돌한 부분만을 얇게 썰어야 제 맛이 난다. 그리하여 눈치 빠른 사람들은 ‘엔삐라’를 먼저 드시라고 윗사람의 접시에 옮겨 담아드리기도 하고 먹어보라고 권하기 전에는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윗사람이 한 점 먹어보라고 권하기라도 하면 따뜻한 마음으로 동지애의 정을 느끼게 된다. 그 후 그 때 일은 직장 내에서 제법 유명한 ‘엔삐라 사건’이라 전해졌다.
 
 민물장어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 겨울 가족들이 외식을 하게 되었는데 장어가 석쇠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노릿 노릿 보기 좋게 익어가고 있었다. 젓가락을 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익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라? 아들 녀석이 장어꼬리를 날름 자기 입으로 집어넣는 게 아닌가! 어쩌면 나의 사회 초년시절에 있었던 ‘엔삐라 사건’이 그 자리에서 똑 같이 일어난 것이다. 장어꼬리는 살도 많이 붙어있지 않고 꼴은 좀 그렇지만 남자들에게 좋다는 속설 때문에 광어의 엔삐라처럼 남자들에게는 거의 신성(!)한 대접을 받는 부위인 것이다.
“야, 이 녀석아! 영업업무를 하는 사람이 거래처나 직장상사와도 식사하는 기회가 많을 텐 데 눈치 없이 네가 먼저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 식사를 같이하는 윗사람이나 상대방에게 ‘요즘 힘드시지요? 이 꼬리 좀 드시고 힘내십시오!’ 하고 먼저 권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무랐다. 그러나 아들은 그것마저도 잔소리라 생각하는 표정이다. 세상에 그렇게 눈치코치가 없어서야 원!
사람도 모든 사물도 마찬가지다.
  겉모양이 비록 엔삐라나 장어꼬리처럼 생긴 외모가 볼품없다고 무시하거나 쉬이 볼 일이 아니다. 말만 앞서는 번지르한 사람보다 허름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쓰임새가 많고 오랫동안 풍겨 나오는 품성이 아름다운 엔삐라 같은 사람이 진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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