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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窓)-제7회 흑구문학상 수상작    
글쓴이 : 김창식    16-06-10 17:58    조회 : 10,553
* 7회 흑구문학상 수상작
                                           창()
 
                                                                                           김창식
 
 
 ()에 매미 한 마리가 달라붙어 울어댄다. 고장 난 트럼펫 소리처럼 귀를 때리지만 하필 우리 집을 찾아 준 것이 반갑기도 하다. 빗금이 그어진 투명한 날개는 반도체 회로를 보는 것 같다. 매미는 쩌렁쩌렁 배를 움직여 울고 찌르르르 꼬리로 소리를 만다. 암컷을 찾아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도회의 잿빛 아파트 집에 짝이 있을 리 없다. 매미는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모양이다. 깨어나라고, 깨어 있으라고.
 
 창은 목적물이나 의도하는 대상 자체는 아니다. 창을 통해서는 무엇을 내다보거나 들여다 볼 뿐이다. 창은 존재를 감추면서 다른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보조적인 도구로서의 창이 갖는 함의는 만만치 않다. 창은 안팎이 있을 뿐 뒷면이 없다. 내다보는 창의 뒷면은 들여다보는 창의 앞면인 것이니까. 창은 사물과 현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창 안에 위치하거나 밖에 존재하지 않은가. 창은 내포(內包)이자 외연(外延)이다. 창은 안의 것을 다독이고 포괄하며 밖의 것을 내보이고 확장한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미지의 공간을 연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컴퓨터 운영체제를윈도스(windows?)’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멀리 내다본다는 뜻을 떠올리면,‘윈도스라는 명칭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사용자인 우리는 창을 두드려 불특정 다수와 교호하여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가상공간을 유영하고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지식과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물론 동영상을 관람하고 음악을 재생해 듣는다.
 
 수필가 김진섭이 수필 <>에서 창을 한갓 건축물로서 조명하지 않고,‘모든 물체는 그 어떠한 것으로 의하여서든 반드시 그 통로를 가지고 있을뿐더러창에 의하여 이제 온 세상이 하나의 완전한 투명체임을 본다라고 짚은 것은 앞서간 통찰이다. 시인 정지용도 <유리창1>에서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리는것을 보며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아이의 죽음을 읊었다. 창을 통해 안팎의 대상을 동일시한 것이니 같은 맥락인 듯싶다.
 
 창은 자유와 탈출의 상징물이기도 할 것이다. 수인(囚人)의 창을 생각한다. 이국의 좁은 감방에서 죽어가며 조국의 침탈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 삶을 부끄러워한 순결한 시인의 창을 생각하고, 남미 어느 작은 나라에서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다 영어의 몸이 된 이름 모를 혁명 지도자의 창을 생각한다. 또한 오페라 <<토스카>>에서 처형의 날이 밝아옴에그래도 별은 빛난다고 연인 토스카와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비통한 심정을 노래하는 죄수 카바라도시의 창을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수인일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가슴 속에 폐쇄된 창을 가진.
 
 창 밖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절체절명의 사람들에게야 비할 수 없겠지만,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의 거듭 된 사업 실패로 정릉동 산마루턱에 있는해 뜨는 집에 세 들어 살았다. 문패도 담장도 변소도 없는 집이었다. 하나 뿐인 방에 형제가 다섯이었으니 식구가 일곱이었다. 여자 문제로 어머니와 다툼이 잦은 아버지가 자주 집을 비우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동거자는 그밖에도 또 있었다. 식구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쥐들이었다.
 
 방은 흙벽에 신문지로 대충 도배를 한 골방이어서 매캐한 흙먼지 냄새가 났다. 한번은 자다 일어나 불을 켜보니 벽에 붉은 점들이 어른거렸다. 빈대들의 행진. 빈대들은 노역에 나선 죄수들처럼 부지런히 벽을 타고 오르내렸다. 그 방에는 창이 없었다. 나는 꿈꾸었다. 내게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창이 있었으면! 하늘로 열리는 조그만 창. 햇살이 반가운 듯 찾아들고 수줍은 달이 지나가며 별이 쏟아져 내리는 창. 이따금 큰 나무 그림자가 불쑥 손님처럼 들어서고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 소리가 구슬처럼 부딪는 창이 있었으면.
 
 내 마음에 고향처럼 남아 있는 두 개의 창이 있다. 하나는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소녀>에 나오는 격자창(格子窓)이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어느 세밑, 밤이 오면 집집마다 행복의 불이 켜지는데 성냥을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소녀는 추위에 떨며 성냥을 켜 언 손을 녹인다. 사회의 냉대와 이웃의 무관심 속에 허탕을 친 소녀는 세밑 가족들이 단란하게 모여 앉은 집 낮은 창가에 기댄 채 숨진다. 소녀는 꿈속에서 그리워하는 할머니 품에 안긴 채 하늘로 올라간다.
 
 또 다른 창은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반원형의 창이다.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아파트에 사는 무명의 여류화가 존시는 폐렴에 걸려서 죽을 날을 기다린다. 존시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침대에 누워 반원형 창문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이 모두 떨어질 때쯤 자기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한다. 심한 비바람이 불었는데도 나뭇잎이 그대로 달려 있고 존시는 생의 끈을 붙잡는다. 존시는 친구 수를 통해 이웃에 사는 노화가 베어먼의 희생이 있었음을 전해듣는다.
 
 소외돼 그늘진 곳에 자리한 두 인물 모두 같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거리의 소녀가 본 것은 들여다보는 창이고 병상의 처녀가 본 것은 내다보는 창이지만, 두 개의 서로 다른 창 또한 같은 창으로 다가온다. 거리의 소녀는 소멸의 빛을 보았고 병상의 처녀는 생명의 싹을 보았지만, 창을 통해 바라는 간절하고 순정(純正)한 마음은 다름이 없었으리라. 희망과 절망은 영원회귀의 순환궤도에 잇대어 있어 낮과 밤,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 사람은 죽어가면서 축복을 안았고 다른 한 사람은 죽음을 딛고 생명의 끈을 찾았다. 이로써 두 사람 모두 구원에 이른 것이다.
 
 두 개의 창을 떠난 눈길이 거실 창으로 옮겨온다. 침묵 속에 매미는 나를 보고 나는 매미를 본다. 매미가 나를 본 것일까, 아니면 내가 매미를 본 것일까? 창을 통해 우리는 하나가 된다. 나는 창턱에 내려앉은키이츠의 나이팅게일이 되고, 꿈속 장주(莊周)의 나비가 된다. 매미가 무엇에 놀란 듯 더듬이를 움찔한다. 집주인에게 이별을 고하려는 모양이다.‘푸릇매미가 창을 떠나간다. 나도 매미를 따라 나선다. 매미는 도회의 빌딩 숲을 지나 어릴 적 순수의 숲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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