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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박자 느리거나 빠르거나    
글쓴이 : 소지연    16-06-14 09:28    조회 : 7,829

 

한 박자 느리거나 빠르거나

                                              

  서산 끝에 걸린 해가 단박에라도 내려갈 모양새다. 무거웠던 팔다리가 하루를 무사히 동반해 준 것에 감사한다.

  고마움도 잠시, 주방과 거실 사이를 넘나들다  무릎을 호되게 부딪쳤다. 서두르는 병이 돌아온 것이다. 한 박자를 늦춘다 해서 세상이 멈추지는 않을 텐데,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일도 아니련만 나는 가끔 이런 진리를 잊고 산다.

   서두름이 빚었던 며칠 전의 일화가 떠오른다. 내키지 않던 스트레칭을 마치고 발걸음을 재촉할 때였다. 백화점 통로를 제비보다 빠르게 걸어 나가다가 무엇엔가 크게 부딪칠 뻔 한 것이다. ‘!’ 쇳소리 비슷한 것이 귓전을 때렸는데도 내 몸은 벌써 일 미터 앞을 내닫고 있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나는 무엇이든 여과하고 마는 투명 인간이 된 것일까. 곧 이어 화살같이 날아온 한 마디가 홀 안을 메웠다,

이 아줌마가 미쳤나!”

  우선은 연유라도 유추해야 했건만, 나는 폭탄 발언부터 진압하고 싶었을까, 돌아서서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갔다.한두 돌쯤 지났을, 고급 베이비 패션을 갖춰 입은 여자 아이와 엄마, 그리고 이모인 듯 한 여인이 다급하게 부르는 내 목소리에 흠칫 돌아본다. 아기엄마를 보아하니 삼십 대 중반쯤 된, 내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 같다. 가슴 한편에서 억울함을 동반한 설움 비슷한 것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아이엄마의 미안한 눈빛이 후다닥 내 눈과 마주친다. 그래서일까,

  “실수로 아기를 보지 못한 것인데, 표현이 좀 지나친 것......”

  한 박자를 늦춘 나의 투덜거림은 서투르게 끝을 맺는다.

 “제가 사과드릴게요, 미안합니다!”

 한 박자 먼저 화해의 전조를 알렸던 그녀가 다소곳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한다. 화사한 얼굴에는 계면쩍은 웃음까지 피어나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그녀답지 않은 실언에 퍽이나 당황했음이리라. 서둘러 펼치려던 내 의도는 금 새 나래를 접는다.

   항간에서는 요즘 젊은 여성들을 놓고 그들의 예의 없음을 거론한다. 세태가 다 그런 것이라고 자조하면서 말이다. 나 또한 그런 판단에 동조하면서 그들에 대해 알지 못할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우리 세대 모두가 딸아이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하게 키워왔기에, 내남 할 것 없이 그러려니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 섣부른 결론이 그날은 멈칫대고 있었다. 불쑥 아이 엄마가 친근하게 느껴지며, ‘화가 날만했으려니......’의 완만한 이해 곡조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해맑은 아기엄마의 미소는 이전의 내 안일한 독선을 지워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뒷받침이라도 하듯 기억의 슬로우 머신은 빠짐없이 그 장면을 재생시키기 시작한다. 내 몸은 아장아장 걸어오는 귀여운 아기 앞을 황야의 무법자처럼 덮치려 하지 않는가. 일촉즉발의 순간에도 눈의 초점은 다른 곳으로만 질주하고 있다. 이쯤이면 훨씬 더 모진 소리를 듣는다 해도 유구무언이다. 위기에 처해 흘러나온 아기엄마의 악의 없는 한 마디에, 서둘러 떼쓰러 갔던 내 성급함이 마치 떫은 감인 양 되새김질을 해왔다. 그래도 홀가분한 것은, 위태로운 그 한 박자 때문에 소 잃을 뻔 했던 외양간을 살피게 되었다는 점이다,

   부딪칠 뻔 했으나 비껴간 그 날, 남은 하루는 어느 새 두 박자 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오늘, 다시금 서두르다 찧은 무릎을 내려다보며 자칫하면 놓쳐버렸을 아이 엄마의 해맑은 미소를 떠올린다, 참 하디 참한 뒷모습도. 서산 밑으로 막 떠내려가던 해가 멈칫거리며 말한다, “남은 저녁 시간은 서두르지 않아도 좋아!


등단하기 전, 맨 처음 쓴 글. <<문학사계>> 겨울호,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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