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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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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싹    
글쓴이 : 박병률    19-02-22 12:43    조회 : 749

                                      새싹                                                                                                    

                                                                                                                                        

  초등학교 다닐 때 하굣길이었다. 윗마을 애들이 우리 동네 다리를 건너오지 못하도록 막대기로 다리 앞에 금을 그었다. 여학생이 다가오면 대문을 열 듯, 가랑이를 벌린 넓이만큼 줄을 지워서 통과시키고, 남학생들은 다른 길로 가라고 막았다. 어떤 애는 입을 삐쭉거리며 돌아가고, 다른 애는 보란 듯이 허리를 뒤로 젖힌 채 배를 내밀고 금을 넘어왔다. 그때 우리 편 누군가 나서서 상대편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니네는, 우리 동네 다리 놓는 데 뭐 보태준 거 있냐?”

  “너도 우리 동네 사는 사촌형 집에 오잖아!”

  “나는 니네동네 다리를 안 넘고 논두렁길로 간다. ?”

  말싸움 하면서 상대가 슬그머니 도망가자 우리는 막대기를 들고 그 뒤를 쫓았다. 윗마을로 가는 길도 마을 입구에 다리가 놓여있다. 우리 마을에서 출발하여 윗마을 다리를 건너려면 학교 운동장 대 여섯 바퀴 도는 거리라, 경운기가 다니는 논두렁길이 배가 빠르다. 등하굣길에 윗마을 애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었다.

  다리 앞에서 윗마을 애들과 말씨름을 하며 힘자랑을 하고 있을 때, 동네 어른이 장에 갔다 오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윗마을 애들이 우리 골탕 먹이려고 어른한테 달려갔다. “얘들이 길을 막고 못 가게 한대요.”라고 일러바치자, 어른이 큰소리로 화를 냈다.

  “사람이 댕기는 길을 함부로 막는 것이 아녀, 그럼 못써!” 하시며 우리 일행을 땅바닥에 무릎 꿇리고 벌을 세웠다. 잠시 후 어른이 한 말씀 덧붙였다.

  “너희들은 새싹이나 마찬가지여! 다치면 안된당게. 그렁게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야 혀.”

  우리들은 일종의 놀이였지만, 어른 눈에는 우리가 싸우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어디 그뿐인가. 윗마을로 가는 지름길에 풀이 움푹움푹 자랄 때였다. 경운기 바퀴가 지나가는 곳은 풀이 듬성듬성 난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인데 질경이 풀을 잡아당겨서 군데군데 묶어놓았다. 매듭이 보이지 않도록 주변에 있는 풀을 이용해서 감쪽같이 가려 놓고 친구랑 멀리 숨어있었다. 등하굣길에 윗마을 애들이 발이 걸려서 넘어지면 킥킥거렸다. 한 번은 여학생이 넘어져서 코피를 흘린 적도 있다.

  그 당시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편을 갈라서 땅따먹기, 못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말뚝박기를 하다가 의견충돌로 다투기도 하고,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술래잡기하며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지난 일들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데 어젯밤, 번개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천둥 치고 번개가 날을 세우고 먹구름이 끼면 하늘의 꾸지람으로 들린다. 그래서 낭만적 분위기보다는 과거에 내가 지나온 길이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고요는 차라리 소란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번갯불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공포가 밀려와 몸을 뒤척거리는데, 뜬금없이 동아일보에 소개된 오래된 기사가 생각났다.

  ‘강남에 있는 00 아파트 옆 골목길에 철문이 굳게 닫혀. 다른 단지 주민은 돌아가시오라는 문구와 초등학생들이 철조망을 기어오르고 대문을 넘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을 보자 어릴 적 기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다시 말하지만, 동네 친구들끼리 장난삼아 마을 앞 다리 앞에 금을 긋고, 윗마을 애들이 동네 앞으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을 때가 떠올랐으므로. 그때 어른이 우리한테 야단친 다음 사이좋게 놀아라.”하시며 우리가 땅바닥에 막대기로 그어놓은 줄을 발로 문질렀다. 어른이 흰 고무신을 신고 금을 지울 때 모래가 구르며 서걱거리던 울림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와 맞물려 강남에 있는 00 아파트 옆 철문이 굳게 닫혀있어.’라는 그림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마음 한구석엔 우리가 어릴 때 써먹었던 놀이를 어른도 즐기는가(!)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주민들은 자기네 땅이라고 길을 막고, 학생들은 학교로 가는 지름길을 택했다? 초등학생들이 양손으로 철망을 잡은 채 엉덩이를 뒤로 뺀 다음 벽을 기어오르는 모습은, 마치 우리가 고향 마을 다리 앞에 금을 그어놓고, 윗마을 애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할수록 고향마을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

 “너희는 새싹이여! 다치면 큰 일이란게.”

 

                                                                         한국산문 2019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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