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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층    
글쓴이 : 김창식    19-03-01 11:10    조회 : 661
                                                             1.5
 
                                                                                                                  김창식
 
 
 그 건물은 1층도 2층도 아닌 어정쩡한 건물이었다. 처음부터 그 건물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해 질 녘 산책길에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눈에 익은 초록색 바탕의 노란 리본 로고와 위로 향하는 화살표 표지가 보여 무심코 옆 계단을 올랐다. 홀을 한 바퀴 휘둘러보고 옆쪽으로 트인 출구로 나오니 그냥 널찍한 평지였다. 다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거나, 엘리베이터 또는 에스컬레이터, 하다못해 아래로 향하는 비탈진 길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엔 역순으로 쪽문을 열고 내부 홀을 가로질러 계단을 되짚어 내려왔다. 도로면에 잇닿은 평평한 땅이 나왔다. 높이는 달랐지만 계단을 올랐는데도 1층이었고 내려 왔는데도 1층이었다. 길모퉁이에 비켜서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지역농협건물이었다. 다만 건물이 아파트 입구 언덕바지에 세워져 있어 계단을 오르내리더라도 밖으로 나오면 다시 택지宅地나 도로로 연결되는 구조인 것이다. 그럴 싸 그러한지 건물이 조금 기울어져 보였다.
 
 주위 행인들은 건물의 생김새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듯 자연스레 오갔다. 건물이 한적한 이면도로에 위치한데다 피사의 사탑斜塔 같은 유서 깊은 랜드 마크나 관광명소도 아니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이다. 그렇다 해도 미심쩍고 석연치 않은 느낌이 온전히 가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그곳을 떠났다. 발을 접질려서 넘어질 뻔 했다. 뒤통수를 무엇이 잡아채는 듯 따가웠다.
 
 가던 길을 멈추어 뒤돌아보았다. 여전히 낡고 허름한 건물이었다. 초록색 바탕의 빛바랜 노란 리본 문양 간판 뒤로 해가 기울고 있을 뿐. 언뜻 건물이 기우뚱하더니 지면에서 비스듬히 분리돼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건물이 입체영화에서처럼 확대되며 다가왔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천공天空의 성라퓨타처럼.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의 움직이는 산처럼. 순간 한 생각이 스쳤고 그 생각이 그럴 듯하게 여겨졌다. 1.5층의 삶!
 
 계단을 올라가도 1, 내려와도 1층이면서도 떠도는 건물. 남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저 1.5층 건물이 우리네 삶을 에둘러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1층도 아니고 2층도 아닌 어정쩡한 사이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땅에 굳건히 뿌리박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위로 오르지도 못한다. 어디론가 흘러가거나 잠시 머물면서도 그곳이 가려한 곳인지 정작 확신이 없다. 1.5층의 삶은 떠도는 삶, 출발지도 목적지도 아닌 경유지의 삶이다. 출발지의 설렘도 도착지의 안도감도 없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유랑을 계속하는 경계면의 삶.
 
 인상주의 화가 고갱의 삶을 떠올린다. 문명세계에 염증을 느낀 고갱은 2달여의 항해 끝에 타히티 섬에 닿는다. 원주민 처녀와 동거하며 태고 적 모습을 간직한 원색의 자연과 원시생활의 순후함을 화폭에 담는다. 빈곤과 고독, 병고에 시달리다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개인전을 열지만 실패하고 주위로부터도 냉대를 받는다. 고갱은 다시 남태평양으로 떠나 필생의 역작인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남기지만 우울증과 영양실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한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영원한 보헤미안 고갱은 1.5층의 삶을 온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 아닐까?
 
 영화 <식스센스(The Sixth Sense)>도 생각난다. 주인공이 보통사람인 줄 알았는데 죽은 자였다. 그는 죽은 사람을 보는 소년과 교우하며 우정을 가꾼다. 주인공은 죽었으면서도 이승의 사람 주위에 출몰하며 기이한 공간을 떠돈다. 막판에야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이 있는 영화이면서도 애틋한 여운을 안겼다. 그런데 잠깐, 우리 주변에도 혹 이러한 허깨비 같은 삶을 사는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산 사람의 삶은 그 같은 흐릿한 삶과 어떻게, 또 얼마나 다른 것일까?
 
 다시 1.5층의 딜레마를 반추한다. 제 갈 길을 만족하며 반듯하게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1층은 내가 속한 곳이자 나를 얽어매는 남루한 현실일 수 있다. 그에 반해 2층은 지향하는 곳, 꿈꾸거나 도달하려는 이상향일 터이다. 현실의 질곡에 발목 잡혀 있으면서도 삭막한 담벼락을 힘겹게 오르는 넝쿨 식물 같은 위태로운 삶이 우리 삶의 본디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 박사의 고뇌어린 독백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어둠의 사슬을 끊고 나아간 빛의 세계 또 다른 평평한 땅으로 이어질는지 모르지만 나는 마음속 어둑한 계단을 오른다. 해 질 녘 틈새의 시간에 회백색의 낡은 건물이 침묵 속에 잠겨 있다. 본디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었다는 듯.
 
*<<에세이문학>> 2018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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