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백두현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bduhyeon@hanmail.net
* 홈페이지 :
  외식(外食)    
글쓴이 : 백두현    19-03-04 09:43    조회 : 396

외식(外食)

백두현bduhyeon@hanmail.net

 

초등학교에 다닐 때 고향 마을에 무척 가난한 친구가 있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4명의 어린 남매가 같이 살았는데 식량을 얻을 토지가 없었다. 덕분에 어머니가 읍내로 나가 생활비를 벌어왔는데 먼 거리라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요즘 풍경으로 치자면 그야말로 기러기 엄마요, 주말가족인 셈이다. 그런 친구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번 씩 남매들을 돌보러 집에 왔는데 그때마다 딱 1주일분의 쌀만 가지고 왔다. 쌀독이 적어서도 아니고 운반이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기억이다.

 

당시 뉘 집이나 먹을 것만 있으면 무탈하게 살 것 같았던 시절이라 어린 내가 보기에는 친구의 집이 별 어려움은 없어 보였는데 가끔 어머니가 오지 않는 날이 문제였다. 아이들끼리 식량 없이 사는 일주일이 어미로서 얼마나 걱정이 될까만, 장사가 안 되어 미처 쌀을 마련하지 못하는 날마다 그 집 어머니는 집에 올 수 없었던 거다. 그러면 어린 남매들은 고스란히 일주일을 굶다시피 우물물로 배를 채우며 버텨야만 했다.

 

가끔 재수 좋은 날도 있기는 했다. 어쩌다 동네 어느 집에 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마을 어른들이 음식을 챙겨주는 날이 있어서다. 그러나 대부분은 집집마다 아버지가 있어도 하루 세 끼를 챙기기 힘든 보리 고개 시절이라 이웃집 어른들도 애써 모르는 척 하기 일쑤였다. 자식들이 굶는지 알면서 오지 못하는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어린 자식들이 그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렸다. 혹시 어머니가 쌀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오해 아닌 오해를 하며 남매들은 읍내를 향해 원망 반, 그리움 반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한 주를 건너 띄고 어머니가 집에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 집은 시끌벅적했다. 일주일 분의 쌀에 더하여 라면이나 풀빵 같은 것을 추가로 사왔는데 마치 잔칫집 같았다. 굶주린 남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이었으리라. 일종의 외식 같은 거였는데 사전적 의미는 다르지만 식당을 모르는 시골마을 풍경으로는 말하자면 집 안에서 먹는 외식 같은 거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또 왜 그렇게 마른 침이 넘어가고 친구가 부러웠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외식에 대한 단상은 그렇게 가난한 친구에게 느낀 부러움이 다였다. 외식이라는 단어 자체를 알지도 못했다. 어린 마음에 내가 누리는 것은 깨우치지 못하고 친구가 가진 것에 대한 아주 단순한 질투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바로 그 장면이 외식이었다. 밖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먹지 못한 것을 먹는 것이야말로 내가 처음 경험한 외식(外食)의 정의다.

 

나이가 들어 일가를 이룬 나는 이제 그때 그렇게 부러웠던 외식을 직접 한다. 아이들과 함께 진짜 호화로운 외식을 하며 살고 있다. 젊은 날에는 기념일마다 하던 외식을 조금 형편이 나아지자 월급날마다 하고 있다. 갑자기 아이들이 상을 받아오거나 아파 입맛을 잃은 날도 꼬박꼬박 무언가 집 밖으로 외식을 하러 간다. 어린 날의 감동 같은 것이 내 자식들에게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외식은 예나 지금이나 좋기만 하다. 다만 그런 절차를 아내는 종종 악용해서 불만이지만 어쩌겠는가. 밥하기 귀찮거나 입맛이 별로여도 수시로 외식을 강요당하기는 하나 그렇더라도 응해야 하는 운명이다.

 

그뿐인가. 외식의 종류는 갈수록 진화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는 형편 탓에 우리 집 외식풍경은 밀가루 음식인 자장면에서 영양밥으로 바뀌는 추세다. 고기도 돼지고기에서 좀 더 비싼 한우로 한껏 격이 올라가고 있다. 올라가는 음식의 격을 따라 걱정까지 우아해지는 중이다. 배부르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던 소망이 한우고기를 시켜놓고 모자랄까봐 걱정하는 정도로 격이 올라갔다. 아직 부족한 것은 가격과 상관없이 비싼 한우를 더시키라고 자신 있게 호기를 부렸으면 좋겠다는 정도다.

 

그렇더라도 삶이란 가끔 뒤 돌아 보는 여유가 생기게 마련인 법,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다짐하는 것이 있다. 누구라도 세월이 흐르기만 하면 음식의 질이 올라가는 삶이기를. 그저 열심히 살기만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외식의 격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었으면. 조금은 느릴지언정 먹는 것만이라도 부침이 없이 늙을수록 그 격이 마냥 위로, 위로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었으면.


 
 

백두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22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25572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26277
22 외식(外食) 백두현 03-04 397
21 마이동풍(馬耳東風) 백두현 02-21 601
20 장모님의 숫자세기 백두현 02-14 844
19 바나나를 먹으며 백두현 07-18 2174
18 엄마와 딸 백두현 05-29 974
17 나는 새의 비밀(秘密) 백두현 04-16 3054
16 간벌(間伐) 백두현 03-26 4235
15 수필을 쓰는 이유 백두현 03-06 1836
14 설거지하는 男子 백두현 03-02 6377
13 고향집에 가면 백두현 02-08 1759
12 바늘도둑은 없어지고 백두현 10-31 7913
11 주식투자의 귀재 백두현 08-25 2714
10 대출미학(貸出美學) 백두현 05-20 3417
9 그 길은 백두현 03-09 3159
8 세상 참 좋아졌다 백두현 03-03 2760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