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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빛이 남아 있을까?    
글쓴이 : 홍정현    19-04-14 14:05    조회 : 222

그 빛이 남아 있을까?

                                                                                                       홍정현

 

  청소 시간이었다. 교탁에서 출석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정욱, 민찬, 재훈, 세 녀석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

  셋은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활짝 웃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와 보세요.”

  광주에 계신 부모님 곁을 떠나 고등학생 누나와 자취 중인 반장 정욱이. 이혼한 어머니는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는 지방 공사장에서 일하셔서 반지하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는 민찬이. 그리고 셋 중 유일하게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재훈이. 셋의 사정은 딱 우리 반 전체를 대변했다. 반에서 부모 두 분과 함께 살고 있는 학생은 학급 인원 서른네 명 중 열두 명. 나머지는 한부모 가정, 또는 조부모 가정, 아니면 정욱이나 민찬이처럼 보호자 없이 살고 있었다. 그때 이후, 나는 학생 앞에서 가족 이야기를 할 때마다 조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나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지 않도록….

  우리 반 아이들, 마음속에는 어떤 그늘이 있는지 몰라도, 학교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씩씩하고 밝았다. 다들 보통의 중학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나 된 녀석들이 학교 복도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고, 교실이 울리도록 떠들고, 장난쳤다. 물론, 금품 갈취, 절도, 폭행 등으로 학생부를 들락거리는, 이른바 ‘일진’이라고 불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녀석들은 심각한 담배 중독이었고, 수시로 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며,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해댔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잘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각각의 사연들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반 아이 중 특히 정욱이, 민찬이, 재훈이는 표정이 참 맑았다. 맑은 표정만큼 마음도 순수했다. 세 녀석은 사춘기를 비껴가는 건지, 아니면 중학교 남학생 특유의 반항심을 내게만 숨기고 있는 건지, 한 번도 투덜거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나를 부르는 셋의 표정은 더 즐거워 보였다. 나는 뭐 재미난 일이라도 있나 싶어, 녀석들이 있는 창가로 가 봤다.

  “왜? 무슨 일인데?”

  “선생님, 저기 보세요. 단풍이 들었어요. 예쁘죠?”

  민찬이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단풍나무 잎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단풍나무는…, 너무도 볼품이 없었다. 키가 작은 나무엔 짧은 가지 몇 개가 겨우 힘없이 뻗어 있었고, 거기에 붙어 있는 잎들도 듬성듬성 숱이 없었다. 주변 풍경도 썰렁했다. 개교한 지 몇 년 되지 않는 학교 운동장 바닥은 유난히 건조해 보였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심은 나무 몇 그루는 어딘지 엉성해 보였다. 그리고 그 뒤 학교 담 너머엔 오래전 지어져 낡아 보이는 저층 건물들이 색이 바랜 간판들을 달고 쓸쓸히 서 있었다.

  순간 당황했다. 저 풍경을 예쁘다고 할 수 있을까? 초라한 풍경 속에, 민찬이가 가리킨 나뭇잎의 색만 강렬하게 붉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들켜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와, 예쁘다. 정말 가을이네.”

  일부러 크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나의 반응에 아이들도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따뜻하고 투명한 빛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예쁜 빛을 본 적 있었던가? 아이들의 모습은 그대로 ‘찰칵’ 찍혀 내 안에 고스란히 각인되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때 정욱, 민찬, 재훈이는 붉은 나뭇잎을 보고, 그 색이 곱다고 느꼈을 거다. 가을이구나, 하고 저희끼리 얘기를 나누다 담임에게도 말하고 싶었나 보다. 자기들이 느낀 고운 가을 감성을 내게도 전하고 싶었겠지…. 나의 착한 제자들은 붉은색 주변의 휑한 운동장, 엉성한 나뭇가지, 낡은 건물들, 그런 것들은 보지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날 내가 본, 아이들의 미소와 운동장 단풍나무의 붉은빛은, 내 인생 최고의 가을 장면이다. 그 장면이, 그 아이들이, 나를 진짜 선생으로 만들어줬다.

  그날의 나무를 떠올릴 때마다 잎의 붉은색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텁텁한 모래바람과 초라한 풍경들은 지우고, 선명하게 빛나던 빨간색만 기억하라고…. 지금은 서른세 살인 정욱, 민찬, 재훈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창가에서 단풍나무를 바라보던 마음을 여전히 잘 품고 있을까? 그 빛이 계속 남아 있을까?

  단풍잎을 가리키던 민찬이의 손가락이 생각난다. 민찬이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자 심장이 저려온다. 고맙고, 미안해져서 눈물이 고인다.

 

 

《인간과문학》 2019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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