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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ve Fun!    
글쓴이 : 나운택    19-06-08 17:08    조회 : 4,037

 
Have Fun!
나운택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스프츠 중계방송 시청을 즐기지만, 나는 스포츠 중계방송을 잘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중계방송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같은  큰 경기를 제외하고는 내가 직접 즐기는 스포츠에 국한된다. 그런데, 내가 즐기는 테니스경기를 보다보면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경기전에 외국의 유명 선수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인터뷰 말미에 모든 선수들이 거의 예외없이 하는 말이 있다. “…I’m gonna have some fun out there!”  이 게 무슨 말인가?  동네 클럽대항 짜장면 내기시합도 아니고, 백만불이상의 상금이 걸려있는 윔블던이나 유에스 오픈같은 그랜드슬램대회 결승전 시합 전에도 예외없이 하는 말이 “코트에 나가서 재미 좀 보겠다” 즉, ‘즐기겠다’라니……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그랬다. 인터뷰를 할 때면, ‘이 번 시합에서는 기필코 이기겠다’는 비장함이 없고, 한 마디 건너서 농담을 던지고, 너스레를 떨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흔히 사람들 입에 오르는 그 유명한 “나비같이 날아서 벌같이 쏘겠다”는 재담도 나왔다.

북미에서는 축구가 미식축구나 농구, 야구등 다른 스포츠에 밀려 별 인기가 없는 편이지만, 의외로 초중등학생 여자축구는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동네마다 커뮤니티내 팀별 시합이 매주말 벌어지는데, 이 때도 따라온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시합 직전에 하는 마지막 말은 거의 예외없이 “Have fun!”이다. 나는 내 딸아이가 시합을 갈 때 거의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잘 해!”, “이기고 와!” 했었던 것 같다. 시합이 끝난 후에도 첫 마디가 “이겼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참 열심히 악착같이 한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같은 큰 시합에 나가는 선수나 코치들의 인터뷰를 듣고 있노라면, 거의 예외없이 “기필코 이기고 돌아 오겠다”, “지면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하면서, 무슨 전투에 나가는 장군과 같은 비장함을 보이곤 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당시 촉망받던 권투선수였던 김득구 선수는 레이 맨시니선수와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떄,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장수 방덕이 관우와 싸우러 나갈 때 했던 것처럼, 미국행 비행기에 작은 나무관을 싣고 갔다. 물론 상징적인 것이었겠지만, 이처럼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비장함을 보이며 떠났던 그는 실제로 경기 도중에 쓰러져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어 전 세계 권투 팬들을 안타깝게 했었다.

내가 사는 토론토에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온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다. 그런데, 한동안 내가 속해 있었던 한인  테니스클럽에게는 그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설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무릅까지 쌓인 눈을 말끔히 치운 다음 파카를 입고 테니스를 즐겼으니까. 물론 테니스 코트는 하루종일 우리팀이 독차지해도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우리는 마음놓고 느긋하게 테니스를 즐길 수가 있었다.  억척스런 한국인이 아니고야 누가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제설장비를 갖춘 테니스팀은 우리가 세계유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단 스포츠경기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얼 해도 억척스레 목숨을 걸고 하는 경향이 있다. 술을 마셔도 경쟁하듯 끝장을 봐야 하고, 심지어 오락을 할 때도 악착스레 놀아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군에 있을 때는 고된 훈련 중 잠시 긴장을 풀고 쉬어야 할 오락 시간에도 전투하듯 목숨을 걸고(?) 놀아야만 했다.  그래서, 이름도 ‘전투오락’이라 불렀다.  조금이라도 흐물흐물 맥없이 놀았다가는 금방 날벼락이 떨어지니 오락시간중에도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가수, 연극배우, 영화 배우같은 예능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공연전 인터뷰에서 거의 예외없이 “죽을 힘을 다해…”, “무대에서 쓰러질 각오로…” 라고 하면서 목숨을 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손가락 부상으로 5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후 컴백공연을 가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엔 무언가 완벽하게 쫒아가지 못 할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오히려 집착을 버리고 채찍질을 멈추니까 그 소리가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나옵니다” 라고. 저 세계적인 거장도 나이가 예순 중반에 들어서야 이 걸 깨달은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무얼 하더라도 너무 지독하게 악착을 떨고, 지나치게 결과에만  집착함으로써,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즐길 줄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논어 옹야편에도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 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고 했듯이 우리가 무얼 하든지 최고의 경지는 ‘즐기는 경지’가 아닐까 싶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계속 연구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을 넘어서는 사람이 바로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최근 마케팅에서도 ‘놀이화’(Gamification) 란 개념이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을 놀이를 하듯이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요소들을 부여한다는 개념이다. 직장인들이 마치 놀이를 하듯 신나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일터는 ‘신나는 놀이터’가 될 것이며, 출근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우리가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에서 오직 허기만을 채우기 위해서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면, 돼지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식탁에 마주 앉은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갖가지 차려진 음식들의 맛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자세가 지혜로운 식사법이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일을 하든 골프를 치든 너무 악착떨지 말고 즐기는 마음을 갖자. 그래서, 새해 결심으로 이런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I’m gonna have  some fun this year!”  (월간 에세이 2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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