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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 삼촌    
글쓴이 : 김창식    19-07-07 19:15    조회 : 5,582
                                      사랑채 삼촌  
       
 
                                                                                                                       김창식
 
  
 
 
 빛바랜 그림 속 어른 사내의 모습이 마음을 헤집는다. 누리끼리한 얼굴에 멍한 표정의 삼촌이 꾀죄죄한 한복을 입고 툇마루 벽에 기대 앉아있었다. 사랑채 갓방에 누워 지내며 좀처럼 돌아다니는 법이 없는 삼촌이 그날은 해바라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가슴이 덜컹했다. 사랑채에 가지 못하게 한 어른들 말이 떠올랐다. 삼촌이 돌아서려는 나를 손짓해 불렀다.
   
 “시끄러바서 나와 봤다.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 삼촌.”
 “공부 열심히 하냐?”
 “, 삼촌.”
 
 몇 마디 더 삼촌의 당부가 이어졌다. 뇌염 주의, 국산품 애용, 조기 체조 참석, 좌측통행 기타 등등. 이상한 것은 삼촌이 나를 보면서도 내가 아닌 내 뒤편 어딘가를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얼결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삼촌이 세상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놀이를 하느라 이곳저곳 헤집던 참이었다.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했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친구들이 꼭꼭 숨기 전에 찾아내야 했다. 술래가 아니었더라면 어른들이 출입을 금하는 사랑채에 올 일도 없었다. 삼촌의 마지막 말은 흘려들었다.
 “긍께, 뭐시냐무엇보다 몸이 튼튼해야 한다. 알겄냐?”
 
 삼촌의 나이가 몇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30? 40? 20대지만 겉늙어보였는지도 모른다. ‘돈필이라는 이름의 삼촌이 친 삼촌은 아니었다. 어떤 까닭으로 먼 친척뻘 되는 삼촌에게 사랑방을 내주어 우리와 함께 살게 됐을까? 조금은 살림이 나은 집에서 일가친척을 거두어 들여서 그랬던 듯하다. 삼촌은 폐병을 앓고 있었다. 당시는 암 같은 병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뇌염, 폐병, 간질이 몹쓸 병이었다.
 
 그 후로는 사랑채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삼촌을 다시 보게 된 일이 있었다. 앞마당에서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하며 놀고 있는데 그날따라 복구가 유난히 사납게 짖어댔다. ‘복구는 우리 개 이름이었으며, 누런 몸통에 등 쪽 색깔이 거뭇거뭇한 토종견이었다. 게다가 꼬랑지는 반 토막이었다. 어른들은 볼품없고 하는 일이 신통치 않은 복구를 미련하다고 '벅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복구였지만 신통방통한 일을 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복구가 안절부절 마당과 구석에 있는 장독대 입구를 왔다 갔다 하며 짖어댔다. 그곳에 키가 작지만 깊은 시멘트로 된 우물이 있었다. 우물 쪽으로 향하는데 공기의 흐름이, 무언가 전해오는 느낌이 달랐다. 그렇구나! 볕이 쪼이는 날이면 우물 위에 이불을 펼쳐 말리곤 했는데 이불이 없어진 것이다. 그제야 복구가 다급하게 짖으며 설레발을 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세 살 터울 바로 아래 동생 녀석이 무슨 수를 썼는지 우물 벽을 기어 올라가 방방 뛰다가 이불과 함께 빠져버린 것이다.
 
 놀던 동네 아이들을 비롯해 집안 여자 어른들과 마실 온 아낙들이 우물가에 모여 발을 굴렀다. 하필 남자 어른들이 없었나보다.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마름 아저씨도 그날따라 자리를 비웠다. 그러니 그 판국에 누가 무었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때 누군가 사람들을 헤집고 장내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것은 느닷없는 출연이어서 본디 그 사람이 그 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매 삼촌은 처음부터 우물가에 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삼촌은 아픈 사람이었고, 평소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여겨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몸이 성치 않아 골방에 누워 지내는 삼촌이 어떻게 그곳에 올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끄러바서, 그러니까 아이들 소리가 들려서? 개가 사납게 짖어댔거나, 그도 아니면 혹 사람이 그리워서?
 
 어른들 사이에 끼어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동생은 연꽃처럼 깔린 이불 위에서 허우적대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두터운 솜이불이 받침대 역할을 하는 덕분에 동생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고, 우물 내부 벽면에 철근 구조물이 엇갈리며 박혀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삼촌이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동생을 건져 안고 어렵사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온 삼촌의 누르스름한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얼핏 홍조가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언제부터인가 삼촌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삼촌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삼촌이 목숨을 구한 동생은 독일에 살고 있다. 몇 가지 큰 병이 겹쳐 투병 중인 동생이 조카아이의 결혼식을 치르러 어렵사리 귀국한다. 우리가 함께 만나는 자리에 삼촌이 불쑥 나타날는지 모르겠다. 외출복이자 실내복인 철지난 한복을 입고. 본디 그 곳에 있었다는 듯.
 
 *<<좋은 수필>> 2019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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