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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이원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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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손    
글쓴이 : 이원예    19-08-07 17:19    조회 : 3,123

  효자손 하나를 샀다. 대나무를 구부려 만든 긴 형이다. 손가락 구부린 형태와 비슷한 그것이 집안 어딘가에 있음직 한데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효자손 원래의 쓰임새보다는 한때, 아들의 훈육용으로써 더 유용했기에 그것이 사라진 궁극적인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나이 탓인지 계절 탓인지 피부가 건조해져 자주 등이 가렵다. 성인이 된 아들에게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미의 등짝을 내 밀기가 사실 좀 민망스럽다. 효자손은 꼭 집어 가려운 부위도 정확하게 잘 찾아 긁는다. 시원하다. 최소한 손이 닿지 않는 등을 긁는 데는 확실히 아들보다 낫다.

  명절을 쇠러 친정에 갔다. “형님, 시매부는 형님 등을 밀어 줍니까?” 올케의 돌발적인 물음에 잘 모르겠는데.” 라고 얼버무린다. 등을 밀어 주냐는 말은 대를 밀어 주느냐는 물음이다. 여기서도 등이 브레이크를 건다. 유일하게 내 몸에 내 손이 닿지 않는 등의 숙명이다.

  사실은 남편이 나의 등을 밀어 준 적이 없고 나도 부탁을 해본 기억이 없다. 나 또한 남편의 때를 밀어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아니라는 대답대신 모르겠다,” 고 한데는 밀어 달라면 그럴 수 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동생 부부 들에게 우리의 부부 전선 이상 없음을 알리는 데는 아니오,” 보다는 글쎄가 나을 거라는 순간적인 발상이 깔려 있었다.

  친정집은 때 아닌 토론장이 되어버렸다. 남동생들은 여성의 신비를 들추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에게 밀리는 때를 보이는 것은 아내의 여성성을 상실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여성은 양파처럼 끝없는 신비를 머금고 있어야 사랑스럽다며 능청을 떨었지만 그 보다는 은근히 귀찮다는 생각이 묻어 있는 게 사실일 것이다. 응원을 바라는 남동생들에게 나는 또 글쎄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남동생들이 말한 여성의 신비성이란 단어들이 내 신경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아내는 과연 신비함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남편은 아내에게 끝없이 양파의 속성을 기대하는가. 병상에 누운 아내에게도 여성의 신비를 강조할 것이며 호호 백발 노인이 되어도 여성이어서 신비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자꾸만 반문하고 있다.

  사람은 늘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하며 또한 확인을 하곤 한다. 아침에 알람을 울려 출근시간을 확인하고, 핸드폰의 문자나 수신을 확인하며 하루를 확인한다. 그런 한편 때때로 타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특히 연인이나 부부사이에는 애정이라는 그물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그물에는 무엇인가를 건져 올려 지길 바란다. 전문가의 손을 빌리라는 남동생들의 말에 가계부의 압박을 무기로 목소리를 높이긴 하지만, 남편에게 등을 밀어 달라는 올케들의 주문에는 애정지수를 확인 하고 싶어 하는 아내의 애교가 깔려 있을 것이다.

  문득 남편에게 애정 지수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에겐 어느 정도 사랑의 기교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무덤덤하다. 나이 탓이려니 하지만 아기자기한 애정 표현을 해본지가 기억 건너 저 편에 있다. 오랜 세월 남편의 객지 생활도 그렇지만 아들의 건사로 나 또한 서울로 이주를 하고 나니 주말부부나 월말 부부도 옛말이고 일 년에 서 너 번 기말 부부가 되어 버렸다.

  몇 년 째 초여름이 되면 몸살감기를 앓곤 했다. 추운 겨울에 조차 걸리지 않던 감기가 오 뉴월 감기는 무엇도 안 걸린다는 말이 나올 때쯤이면 꼭 나와 조우를 하자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계절이 없고 증세도 훨씬 악화되었다. 올 겨울 들어 벌써 두 번째이니 스스로 면역을 걱정하게 된다.

  며칠 째 감기의 징후를 예고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신열이 나고 통증이 시작되었다. 평소 감기쯤이야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야말로 앓아누운 것이다. 남편은 수건을 물에 적셔 내 이마에 얹어 주기도 하고 밤새 이불을 챙겨 덮어주며 땀을 닦아 주기도 하였다. 예기치 않은 남편의 반응에 재미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정을 시험하려 했던 일들이 반성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런 적이 많았는데 섭섭한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내가 문제였다.

  햇살이 빠져 나간 거실에 모색暮色이 스며든다. 어느 덧 삶에서도 옅은 어두움이 드는 나이다. 잘하고 못하고의 구분도 모호해 지고.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편안해 진다. 서로의 모자람을 묻어 줄 수 있는 아량과 기지도 생긴다. 묽은 커피처럼 은은 하게 살아가는 인생길에 당신의 손이 내 등을 긁어 줄 효자손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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