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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 해프닝    
글쓴이 : 이원예    19-08-08 13:00    조회 : 3,170

  또 밤을 세었다. 밤만 센 것이 아니라 양을 세고 숫자도세고 관세음보살님도 세었다. 그래도 잠은 날 찾아와 주지 않았다. 사흘인가, 나흘인가, 잠을 자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불면증은 나에게 있어 오래된 친구이자. 관계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짝이다.

  예전 어느 한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밤이 되면 눈이 반짝거리고 날이 새면 낮 밤이 바뀐 신생아처럼 잠이 드는 것이었다. 낮 시간에 잠을 자다보니 하루가 참 짧았다. 처음에는 그다지 심각한 병인지 몰랐다. 오히려 체질적으로 야행성이라며 은근히 자랑 아닌 자랑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아니었다. 낮에 해야 할 생활이 아귀가 맞지 않는 문처럼 삐걱거렸다. 선약된 약속조차도 잠으로 인해 어겨버리고 난 뒤에야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고 있던 볼링을 다시 시작하고 주말에는 산행도 했다. 문화센터 수필 창작 반에 등록을 한 것도 그 즈음이다. 낮에 바쁘게 살다보니 자연스레 생활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년전, 아파트 분양권 프레미엄이 화두였을 때가 있었다. 나는 아파트 몇 채를 사고팔았는지 기억이 없다. 악마의 손톱이 지나갈 무렵, 내가 지니고 있던 문서는 10여개였으니 아랫돌 빼어 윗돌 막는다.’ 그 당시의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큰 투자 손실을 본데다, 남편과의 불화로 사업체를 정리했는데 그것마저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친정어머니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불면은 또 찾아왔다. 거실이든 안방이든, 침대거나 소파거나 잠돈 자리가 그날의 내 잠자리였다. 남편이나 아들 도한 그런 나를 깨우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는 잠이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생애 가장 힘든 시기였고, 우울증 처방을 받긴 했어도 잠은 잤었다.

  이번엔 뭔가 다르다. 지난여름부터 슬슬 기미가 보였는데 추석 무렵에는 아예 한숨의 잠도 잘 수가 없었다. 내치고 싶은 불면이라는 친구가 자꾸 다가오는데 내칠 수가 없다.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다예전에 공부하던 수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은 사람 만나는 것이 좋고, 써 놓은 분량도 있었고 미완인 분량도 있었으니 퇴고하고 분량을 채우려니 하였다. 예전에 불면증을 고친 기억이 있으니 은근히 기대도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가슴으로 쓰던 글이 요즘은 머리로 쓰고 있다.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쓰려하니 자연 생각이 많아진다.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 있던 낱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듯 오르내렸고, 문장은 횡선을 타고 누비니 그것을 맞추느라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메모를 하려고 불을 켜면 잠들기가 지연 될까 미뤄버리기가 일쑤였다. 그나마 어렵게 조립한 문장이 날이 새면 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결국 불면을 고쳐보려고 시작한 글쓰기가 오히려 불면을 더 부추긴 셈이 되었다.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얻어 버렸다.

  눈을 깜빡이는데 이상한 소리가 났다. 더 이상 잠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수면제라도 처방받아 잠을 자야 했기에 병원을 찾았다. 햇빛을 보니 울컥 멀미가 나고, 눈앞에서 별이 오르내렸다. 의사가 일상을 물었다. 신경정신과는 환자의 과거와 현재의 생활을 알아야 원인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신체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이란다. 그러고 보니 지난 3월을 마지막으로 내게서 달이 뜨지 않은 후로, 얼굴이 갑자기 달아오르기도 하고 별 다른 이유 없이 식은땀이 흐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구멍이 숭숭 뚫린 우울증이라니, 예전에 겪었기 때문에 증세를 안다. 분노 조절장애, 알콜 의존 후 난폭해짐, 그대로 소멸되고 싶은 유혹, 내가 겪었던 우울증의 증세다. 불면증 때문에 괴로울 뿐이지 다른 사항은 해당이 없다. 의사의 진단이 내내 미심쩍다. 간호사가 내 혈압을 체크 할 때부터 그랬다. 생뚱맞게 혈압이 높다니, 지금까지 했었던 혈압검사는 오히려 저혈압 쪽이었는데 말이다.

  수면제의 힘을 빌린 잠속에서 계속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리막길을 걷다 미끄러지기도 하고 지인들과 여행을 하다가 일행을 잃어버려 혼자 헤매었다. 바다의 파도가 나를 계속 쫒아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꿈속에서도 무섭고 섬뜩했다. 아들은 아이 일 적의 모습으로 보였다. 꿈이 끝나고 나면 다른 꿈을 꿀 때까지 깨어있었다. 개운치 않은 수면, 어쩌면 우울증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과 씨름한지 한 달여, 멍한 시선으로 텔레비전에서 약차 이야기를 시청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 출연자의 한마디에 나는 기함氣陷이라도 하듯 휘청했다. 긴 시간 고아 식혀놓은 물을 모두 쏟아버렸다. 지독한 불면증의 원인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있었다.

  한 때 약초 산행을 다녔다. 직접 채취한 상황버섯으로 약차를 끓여 마셨다. 5년 쯤 되다보니 너무 한 가지 약초만 마시면 부작용이 있을 듯싶었다. 독성을 중화 시키는 약재를 구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 봄, 집 아래 삼거리에 건재약초를 파는 트럭 한 대가 있었다. 상인의 권유에 한 점 의심 없이 감초를 구입하였다. 약방의 감초라 했듯이 다른 약재의 독성을 중화시키는 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감초의 부작용을 몰랐다. 감초를 장복할 경우 불면증, 혈압상승, 신장기능이 약한 사람은 방광에 무리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근래에 참을 수 없는 이뇨를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대체로 반응이 빠른 편이다. 우스갯소리로 약발을 잘 받는다. 부작요이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시간이다.

  약 좋다고 남용한 나의 무지와 불면이 무조건 우울증의 증세라고 생각한 의사의 오진을 확신했다. 무지와 선입견의 이중주가 빚어낸 그 동안의 참사를 생각하니 조소 섞인 웃음이 나왔다. 큰 소리로 웃다가, 비실비실 웃다가 여하튼 자꾸자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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