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진연후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namoojyh@hanmail.net
* 홈페이지 :
  전방에서 우회전입니다    
글쓴이 : 진연후    19-08-19 14:36    조회 : 5,034

전방에서 우회전입니다

진연후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이십대로 돌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누군가 물었다. 가장 아름답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시기라며 생각만으로도 흐뭇할까. ‘내가 만약 이십대로 돌아가면 이렇게는 안 살아’라고 대답할까. 열려있는 가능성에 꿈을 꾸기도 했겠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방황했던 기억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그런데 정말 이십대로 돌아가면 지금처럼은 안 살까. 그럼 어떻게 살지.

“우리 애는 이과 같아요.” “우리 애는 문과 성향인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중학생 학부모, 심지어는 초등학생 학부모까지도 고등학교에서 선택할 이과 문과에 대해 고민하고 일찌감치 결정한다. 앞으로 어떤 능력이 더 발견되고 개발될지 모르는 체 약간의 관심이 있다는 것, 재능이 살짝 엿보인다는 것만으로 말이다.

느긋하게 앉아서 제주도를 달리는 중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바다를 실컷 보여주겠다고 해안도로를 선택했다. 도착한 날은 공항에서 출발하여 함덕, 김녕을 거쳐 성산으로 돌았다. 쇠소깍까지 갔다가 한라산 근처에 있는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날은 다시 서귀포로 내려와 마라도에 들렀다가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공항으로 오기로. 바다를 왼쪽에 두고 섬을 거의 한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곳곳에 아직도 공사가 말끔하게 마무리 되지 않아서인지 해안도로가 중간에서 끊기거나 안으로 들어가버리곤 한다.

돌아오는 날 우리의 목적지는 제주국제공항. 네비게이션에 도착지를 입력하자 곧 가장 빠른 길을 알려준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한 우리는 제주 바다를 보며 천천히 돌아갔으면 싶고. 하여 친구는 좁은 길이거나 포장 안 된 길이거나 상관없이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을 고집한다. 네비게이션 아가씨는 전방 백미터 앞에서 우회전하라고, 갈래길만 나오면 평정심을 잃지 않고 수없이 안내를 한다. 경로를 벗어났다고 짜증 한 번 안 내고 수십 번을 반복하는 그녀에게 친구는 꼬박꼬박 대답을 해 주면서도 우리는 바다를 좀 더 보겠다고 말을 듣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일 년쯤은 넉넉히 꺼내볼 양의 바다와 파도를 두 눈에 가득 채웠다.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망설이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야 할 길을 누군가가 콕 집어 말해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으리라. 그 때 누군가 방향을 결정해 준다면 그 길로 갈까. 그럼 후회가 없을까. 만약 이십대에 했던 길 찾기를 사십 오십이 넘어서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목적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무작정 빨리만 가려고 서두르고 조급해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어쩌면 도착하는 순서가 아니라 과정에서 찾아야 할 무엇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스무 살의 꿈이 아름다웠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지금 빠른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 누군가의 우회전 안내가 그다지 절실하지는 않다. 그저 가끔 버스 뒷좌석에서 창밖을 보다가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는 상상을 하면서 바다로 달리는 꿈을 꿀 뿐. 행복이란, 목적지에 도달한 후에 누리는 것이 아님을 우회전을 거부하고 즐겼던 그 시간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한다.

요즘 남자들은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어머니, 아내 그리고 네비게이션 아가씨의 말을 잘 들으면 매사에 아무 탈이 없다고. 그러고 보면 남자들은 세상 참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셈인가? 그렇다면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된 여자들은? 게다가 옆 좌석에 앉아서 길안내까지 하는 경우도 있던데! 남자도 아니면서 아내도 어머니도 되지 못한 나는 아직 운전도 하지 못한다.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다 해도 내 맘대로 좌회전 한 번 못할 테고, 이십여 년 동안 장롱면허로 있는 그것은 언제쯤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절대로 화내지 않는 그녀를 상대로 소심한 반항을 해 볼 수 있을런지...... .

책과 인생. 2012년 9월호.



 
   

진연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41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84892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86495
41 별일 아니다. 진연후 03-21 510
40 반갑다, 주름아! 진연후 07-25 1109
39 모두 꽃이 되는 시간 진연후 07-20 1639
38 들켜도 좋을 비밀 진연후 03-29 1956
37 다른 세계를 엿보다 진연후 03-29 1809
36 다시, 가을에 빠지다 진연후 11-01 3186
35 초록 껍질 속 빨간 과육 진연후 07-05 4589
34 봄, 처음처럼 진연후 07-05 4317
33 시금치는 죄가 없다. 진연후 07-05 5419
32 사연 있는 가방 진연후 03-23 6714
31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진연후 03-23 7111
30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진연후 03-23 7153
29 끝까지 간다 진연후 10-29 10794
28 어른이 되는 나이 진연후 10-29 10002
27 너만 모른다 진연후 07-21 6921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