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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난 고래와 포경선    
글쓴이 : 오길순    19-11-04 19:29    조회 : 1,987

  



  

                    성난 고래와 포경선

                        진실도 죄가 될까봐 2

                                                                                                    오길순

  밤바다는 성난 고래 떼처럼 넘실거렸다. 포경선 속에 숨은 작살꾼들처럼 음흉해보이기도 했다. 어둠은 플랫폼에 내린 나를 수장 시킬 듯 마구 울렁거렸다. 작은 고래 한 마리 쯤 보쌈은 일도 아니라는 듯, 철썩이는 바다의 아우성이 귀곡성처럼 무서웠다.

광화문에서 정 동쪽이라는 곳, 정동진에 간 것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마음 어쩌지 못해서였다. 처형을 하루 앞 둔 사형수가 그러할까? 누명을 쓴 사형수의 목울대가 그러했을까? 어떤 호화로운 만찬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겨울 오후, 무작정 나선 길이었다. 동해바다라면 다독여줄까? 일출이라면 보듬어줄까?

어머나! 어머니 혼자 오셨어요?”

플랫폼 끝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다. 여성건널목지기였다. 곱디고운 여성이 칠흑의 철길을 홀로 지키다니! 가로대를 틔우는 손길이 가로등처럼 환하고도 애틋했다.

어머니가 마지막 승객이세요. 내일이면 제가 다른 곳으로 가거든요.”

마지막이라는 그의 말이 두려움도 잠시 눅게 했다. 어떤 인연이었기에 간이역 마지막 밤을 함께 한 것일까? 새로 산 사진기라며 기념사진까지 찍어 줄 때는 가시에 찔린 새를 보듬어주는 거리의 천사인 양 고마웠다. 소나무가 배경인 전송사진을 함께 보려니 손톱이 타 들어가도록 담뱃재를 털지 못하는 사형수에게, 담배 한 대를 더 권하는 교도소간수인 양, 건널목간수의 다정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청량리 발 1430분 태백선은 어깨를 옭죄었다. 12월의 맹추위는 동짓달 빛의 가속도로 위세를 떨쳤다. 난생 처음 홀로 하는 밤의 여로, 고희를 넘겼어도 어둠의 공포는 목적지가 가까울수록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고한 어디쯤이었다. 도박의 불빛들이 은하수처럼 유혹했다. 그래도 철둑 옆 가난한 사람들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갔다. 네모진 창문 속에서 둥근 밥상이 별똥별처럼 스칠 때는 그들의 평화가 한없이 부러웠다. 수필을 쓰지 않았더라면, 글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저들처럼 지극한 평온을 누리련만...그 옛날 고한의 광부인 양, 눈을 반짝이며 들어섰을 가장에게 저녁연기로 지은 밥상을 고이 차렸으련만. 나는 어찌하여 동해바다 멀리 쫓기는 도망자신세가 되었는가?

  100여 년 전 형장에 오르던 도스토옙스키가 이러했을까? ‘정의가 나의 옷이었다.’는 욥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공평이 나의 두루마기요 나의 면류관이었다.’고 외친 욥이 살았다면 진정으로 대변해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든 탑을 빼앗기고도 먼 바다로 쫓겨 가는 억울한 죄인에게 승소장을 미리 주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1025, 2심판관은 2018126220분 판결을 예고했다. 한 번 읽어 보겠다며, 첫 심리를 끝낼 때는 아연했다. 꿈마다 악마들이 저울추를 흔들었다. 괴상한 탈을 쓴 악마들의 손을 힘껏 뿌리치고 나면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 거대표절내용을 아직 읽지도 않았다고? 이제야 한 번 읽어 보겠다고? ‘한 번은 혹시 한방이거나 단칼은 아니었을까? 진실 쯤 단칼로 뭉개려는 것은 아니겠지?

  문득 서대문역사박물관의 벽에 붙었던 수많은 흑백사진들이 떠올랐다.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고도 풀잎이슬처럼 사라졌을 애국지사들, 붉은 벽돌에 새겨진 암호는 단말마였는지도 모른다. 무뢰한의 단칼에 증발된 이슬들의 피눈물인지도 모른다.

  나의 지난 8년도 단말마의 세월이었다. 증언자까지도 합세한 모르쇠는 포경선의 작살꾼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피해자의 외침에도 눈썹 하나 찡긋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준비서면은 거짓과 조롱의 20년사에 서슴없었다. 투명거울 같은 21세기에 가죽에 새긴 기록이 사라질 것이며, 수천수만 쌍둥이 디엔에이가 불살라지는가? 하늘은 가려도 별처럼 많은 진실은 손가락 새로 쏟아질 일이었다.

  태맥산맥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일그러진 내 마음을 포경선처럼 묵살했다. 그래도 강물 위 교량이 서럽게 울어주었다. 무거운 철마를 지고도 견뎠을 교량의 한 생애. 뻥 뚫린 터널들도 어깨를 흔들며 애가 타는 듯 울어주었다.

  교량과 터널의 무게가 같다는 걸 태백선에서 처음 알았다. 울림과 떨림이 동일한 울음이라는 걸 태백산맥이 일러주었다. ‘한 번 읽어보겠다.’2심판관도 말끝이 떨렸었다. 바람에 흔들리듯 마세하게 떨리는 음성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철마로 교량을 누르듯 죄악으로 피라미드를 쌓듯, 그리하여 불가피 양해를 바란 악마들의 저울눈금이 1심 패소는 아니었을까?

 

                                


2019 <<월간문학>> 10월호


(죄송합니다. 미발표작을 발표작으로 알고 올렸기에 작품을 바꾸어 싣습니다. <불사조의 노래>대신 <성난 고래와 포경선>을 놓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11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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