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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앗이    
글쓴이 : 백두현    20-03-16 19:46    조회 : 4,165

품앗이                                                             

                                                                                                                                           백두현 <선수필2020봄호>       

                  

시간의 흐름이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와 같다. 그 흐름 자체가 끝없는 현재의 과거화인데 경험하는 매순간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했던 사실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라는 것은 올곧게 나가는 직선보다 구불, 구불 곡선이 더 많다. 좌충우돌하며 흐른다는 의미다.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지만 굽이굽이 돌고 돌며 앞으로 나아가는 물길처럼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로 나가려는 몸부림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란 인간에게 스스로를 반추할 수 있는 소중한 거울이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교훈삼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서 그렇다.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현재를 발판으로 멈추지 않고 진화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끌고 가는 내용물에는 자랑스러운 것도 있지만 기억하기 싫은 불편한 짐도 많다. 말하자면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던 36년간 켜켜이 삭힌 회한의 보따리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보따리 안에는 강제 징용과 위안부라는 아픈 기억이 담겨 있다. 이 또한 언젠가는 버려야할 짐이지만 아직은 더 싣고 다니며 꺼내봐야 한다. 종종 이해 못할 사람의 입을 통해 사실은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었다는 망발이 토해지는 등 궤변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괘씸하지만 어쩌겠는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의 방향을 잡아주려면 역겹더라도 거울삼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대략 두 가지 부류다. 한 부류는 그들의 흑색선전에 속아 지독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극소수의 지원자들이다. 또 한 부류는 삼천리 방방곡곡에 엄연히 존재했던 마을 이장이나 순사들의 추천을 받아 강제로 끌려간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때 그들 각자의 추천 기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손가락에 꼽을 만한 원한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대개가 그 마을에서 가장 배우지 못해 힘없는 약자들이겠다. 아니면 경제적으로 가지지 못해 소외된 취약계층일 것 같다. 이유는 약자를 지목할수록 역사의 반복으로 언젠가는 되돌아올 후한이 덜할 게 분명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땅 한 평 가지지 못한 소작농으로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던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제노역대상자가 되었다. 분명한 원인 제공자가 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지지 않은 자가 가진 자를 응징하기란 어려운 세상이다.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되어버린 사할린이라는 곳의 탄광으로 끌려가셨는데 강산이 여덟 번 변하도록 생사를 알지 못한다. 들려오는 소리로는 공산화되어버린 사할린에서 자유대한으로의 귀향이 불가능해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운 곳에서 살기 위해 북송선을 타셨다는 이야기가 바람처럼 간간히 들려왔을 뿐이다.

 

그 많은 세월동안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평생의 한을 안고 어디선가 사셨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남은 가족의 퍽퍽한 삶은 들어서도 알고 보아서도 안다. 전체 인구의 9할 이상이 농업에 종사했던 시절이라 내 땅은 없더라도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지어야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누군가의 아내라는 사실보다는 누군가의 엄마로서 얼마간의 농업을 경영해야만 했다. 그 때 여자로서 미약한 힘은 노동의 시간을 늘려 충당할 수 있었지만 품앗이가 어려웠다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모내기를 하던 벼 타작을 하던 돌아가며 품앗이로 일손을 교환해야 했는데 이웃에서 어린 자식과 젊은 여자를 품앗이 대상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거다.

 

있던 남편이 없어졌더라도 남은 아내는 살아야 했다. 있던 아버지가 없어졌더라도 남은 자식들은 버티고 또 버텨야 했다. 그 흔한 말로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는 격언을 실천해야 했는데 여자라서 반 일당으로 품앗이를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벅찼다. 많이 배우지 않던 시절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버지도 농업에 뛰어들었지만 어린애라서 이웃들의 품앗이 기피현상은 똑같았다. 그런 역사의 거울을 들여 볼 때마다 할머니의 인생이 가여워 얼마나 가슴이 아렸는지 모른다. 또 아버지의 인생역정이 얼마나 측은한지 평생 마음이 짠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웃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생각이지만 당한 사람의 설움을 생각하면 그저 눈시울이 붉어질 따름이다.

 

문득 품앗이의 정의가 궁금하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노동의 양을 서로 돌아가며 합동으로 감당하는 것일 테다. 그 훌륭한 제도의 구성원이 되기 어려웠다는 질곡의 세월이 생각할수록 서운하고 울분을 토할 길 없다. 그렇더라도 살기 힘든 시절 인정 하나만으로는 분명 극복하기 어려웠을 마을 어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번 품앗이의 성사가 어려웠지만 결국 누군가는 품앗이를 받아들여 준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겠으나 할아버지를 징용대상자로 추천한 마을 이장의 배려도 있었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진리를 실천한 인근 종친 어른들의 의리도 있었다.

 

최근 위안부 배상판결로 시작된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이웃나라는 다시 먼 나라로 회귀했고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라는 표어로 맞대응 하고 있다. 급격히 악화되는 한일관계를 바라보며 지금이야말로 역사의 거울을 꺼내볼 때라고 생각한다. 서러웠던 한 집안의 품앗이를 되 뇌이며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가난하면 억울하게 당한다는 생각이다. 역사가 아무리 나아가고 진보하더라도 가정이든 국가든 그날처럼 억울하지 않으려면 저마다 우선은 부강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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