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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항(避港)    
글쓴이 : 김창식    20-07-26 15:50    조회 : 609
피항(避港)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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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기를 피해 찾아든 곳은 도로에 면한 슈퍼마켓 건물 안쪽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 얼마간 머물러야할 것이다. 빗물로 흥건한 여닫이 유리창 위로 또다시 빗방울이 후드득 부딪쳐 도랑처럼 흘러내렸다. 나무가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형형색색의 우산을 쓴 사람들이 몸을 움츠린 채 걸음을 빨리했다. 깜박등을 켠 자동차들이 주섬주섬 몰려들며 뒤엉켰다.
 
 창을 통해 이지러지고 뒤틀린 바깥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오래 전 근무했던 이국 공항에서의 경험이 입체화면처럼 펼쳐졌다. 80년대 초 항공사 프랑크푸르트 지점에 근무했다. 그날은 서울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우리 공항에 도착했다가 승객을 태우고 다시 서울로 출발하는 날이었다. 새벽녘 집을 나서는데 시야가 온통 안개로 뒤덮였다. 안개는 거미줄 같아 헤집을수록 감겨왔다.
 
 폭우나 태풍, 안개 같은 기상 악화로 항공기가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피항(避港Divert)’이라고 한다. 우리 공항에 착륙해야 할 항공기가 다른 공항으로 방향을 틀기도 하고, 다른 공항으로 향하던 항공기가 우리 쪽으로 날아들기도 한다. 남의 공항으로 날아간 항공기가 그곳에 오래 머무는 경우도 있다. 피항은 항공종사자에게는 악몽이자 꿈같은 현실이다. 바로 그 피하고 싶은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해야 할 비행기가 짙은 안개로 인해 대체공항인 쾰른 공항으로 피항한 것이다. 출국장 로비에 설치된 항공기 운항현황판이 차르르르 돌아갈 때마다 'CANCELLED(운항 취소)'란 글자가 찍혀 나왔다. 연고도 없는 낯선 공항으로 항공기가 피난가면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원래 공항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피항한 항공기의 승객이 되어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상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입사해 10여년이 지났을 무렵 같은 회사 직원인 아내와 결혼했다. 결혼식 날은 잿빛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스산한 바람이 일던 11월 하순 어느 날이었다. 신혼 여행지는 제주였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상공을 몇 차례 선회하다 부산공항으로 피항했다. 신혼여행지가 바뀐 것이다. 이후 아내와 함께는 물론 혼자서도 제주를 방문하지 못했다.
 
 항공사 입사가 본디 계획했던 바람은 아니었다. 대학시절 좋아한 작가는 카프카와 헤세였다. 나는 카프카적인 삶의 부조리와 머뭇거림을 헤세 유의 서정적이고 자기성찰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인간존재의 본질을 궁구하고 인간성의 고양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은 꿈으로 남았다. 집안 형편 상 당장 취직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항공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렇다 해도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탑승라운지는 몰려든 승객으로 부산하고 소란스러웠다. 탑승을 기다리는 이들 승객은 비행기가 도착하지 않은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다. 탑승라운지 너머로 보이는 주기장(駐機場)에는 비행기 동체들이 희뿌연 안개 비 속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승객들에게 당장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없어 그것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삶도 마찬가지인지는 모르지만 출발 여부 역시 마지막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다.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나아져 피항했던 항공기가 우리 공항에 도착했다. 워낙 늦게 도착했으니 지연 출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객들의 불평불만을 다독이는 한편, 정비 상태도 살피고, 화물 탑재작업도 독려하며, 관제소와 운항 가능여부를 점검했다. 몇 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다행히 항공기 출발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탑승을 권하는 아나운스멘트가 흘러 나왔다. "아흐퉁, 비테. 마이네 다멘 운트 헤렌(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잔무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주위가 어둑했다. 머릿속에는 항상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닫힌 공간에 남겨진 나. 떠나간 비행기의 항적이 남긴 나의 좌표는 무엇인가? 한 가닥 아픔이 가슴을 찌르며 파고들었다. 대학 시절의 꿈을 놓아버린 회한이 축축한 토사물처럼 남았다. 내 삶의 비행기는 어느 이름 모를 권역(圈域)을 날고 있는 것일까? 내 삶도 혹 악천후로 인해 길 잃은 항공기처럼 비껴난 것이 아닐까.
 
 사뭇 세월이 흘렀다. 1990년대 중반 외환위기로 나라가 기우뚱 하며 곳곳이 허물어져 내렸다. 국가는 항로를 이탈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대책 없는 항공기였고, 국민 개개인은 우연히 그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이었으며, 나 역시 그들 승객 중 한 사람이었다. 허울도 좋은 희망퇴직 후 사는 것이 실감나지 않은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눈을 들어보니 차창에 웬 낯선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어둑한 눈빛을 한 저 수상한 존재가 누구인가? 그때 느낀 낯섦과 씁쓸함, 허허로운 실존의 인식은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했고, 30여년을 건너 뛰어 글을 쓰는 계기로 작용했다. 수필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수필 역시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되 전심전력을 쏟아야 하는 문학의 한 갈래이자 삶의 의미를 찾는 치열한 구도의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빗방울이 성글어졌다. 문을 열고 한 발걸음 내딛으니 찬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들었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다. 어디로 향하든 나는 '지금, 여기, 이곳'에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줄곧 떠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끊임없는 여정이었다. 도상(途上)의 인간!
 
 *<<에세이문학>> 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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