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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밤에 '코'를 잡고 (2021. 2월 한국산문 특집)    
글쓴이 : 김주선    21-02-05 12:10    조회 : 9,798

특집 :  나에게 글쓰기란 

이 밤에 를 잡고 


김주선

    모두가 잠든 밤, 털실을 꺼내 뜨개질을 한다. 떴다, 풀기를 수없이 반복한 실이라 털도 많이 빠지고 낡아 어떤 뜨개질을 해도 헌것처럼 되었다. 엉킨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뜨개질만 한 것이 없었다. 밤새 뜬 것을 다시 풀어 실뭉치로 둔다 한들 아깝지 않았다. 두었다가 언젠가 또 불면의 밤이 오면 뜨개질을 할 것이기에.

글이 쓰이지 않는 날이 많아지자 나는 부쩍 뜨개질 바구니를 꺼내 거실 바닥에 펼쳐놓았다. 마음이 심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끝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바늘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은 고요해지고 근심했던 문제가 해결될 때가 있었다.

   강원도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겨울방학이면 여학생들은 딱히 할 것이 없었다. 주로 털실을 사 화롯가에 모여 뜨개질을 했다. 처음 바늘을 잡았을 때는 쉬운 목도리부터 떴다. 소질이 있는 친구들은 조끼도 떠 교복 속에 입고 다녔다.

한 친구가 뜨개질 교본을 갖고 있었다. 교본대로 똑같이 코를 잡고 떠도 조금씩 달랐다. 바늘과 실의 굵기에 따라 차이가 났지만, 무엇보다 뜨개질하는 사람의 성품에 따라 코가 촘촘하거나 느슨해 완성도가 달랐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배색 무늬도 넣는 친구는 인기가 많았다. 편물 기능공이었던 큰언니 덕에 어깨너머로 배운 재주는 교본 없이도 다양한 패턴의 목도리도 뜨게 되었다.

며칠 밤을 지새워 짠 것을 부모님께 선물해 드렸더니 무척 기뻐하셨다. 솜씨가 늘어 코바늘뜨기에 도전했다.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뿌듯했다. 그저 실타래에 불과했던 것이 바늘을 만나 코를 만들고 고리를 연결해 누군가의 목에 두를 목도리가 된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뜨개질과 멀어졌다. 진로 상담 중 문학적 기질을 발견한 담임의 권유로 문예반에서 특활(特活)을 시작했다. 글짓기 교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장을 짓는 일도 뜨개질 같았다. 원고지의 칸을 채우고 비우는 일, 문장을 확장하고 줄이는 일이 처음 뜨개질바늘을 양손에 쥐고 서툰 코 걸기를 할 때처럼 어려웠다. 하지만 마음을 술술 풀어낸 글이 문학으로 짜이는 것을 볼 때 희열을 느꼈다.

너는 나중에 글 쓰는 사람이 되어라.”

손재주만 좋은 줄 알았더니 글재주도 좋다며 특히 교양과목이었던 작문(作文)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했었다. 문학부 학생이라면 전국 고교 백일장이나, 대학에서 열리는 특기생 모집 백일장에 참석하느라 새벽 기차를 타는 날이 많았다.

문학부 친구 중 한 명이 동국대학교에서 주체하는 백일장에 입상하자, 나는 꿈나무에 거름을 주기 시작했다. 욕심 때문이었다. 때 묻지 않은 서정시가 기차를 타고 난 후 얼룩을 묻혀오자 지도교사는 어린아이가 뾰족구두를 신고 어른처럼 걷는 꼴이라며 언젠가 넘어질 것을 우려했다.

돌이켜보니 결과에 연연해 조바심을 냈고 나를 증명해 보이고자 서둘렀다. 서두른 작품은 늘 빠뜨린 코 때문에 듬성듬성 짜였다. 과욕의 결과였다. 결국,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문과에 낙방하자 담임은 간호전문대학의 원서를 써주셨지만, 나는 재수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화려한 불빛에 현혹되어 지방대학의 원서를 찢어버린 결과는 참담했다. 자만했던 손가락 마디를 접어 절필한 채 오래오래 시()와 의절하고 살았다.

  담을 쌓고 살던 문학과 화해를 하고 삼 년 전에 서울디지털대학교의 문화예술학부에 입학했지만, 창작 수업은 녹록하지 않았다. , 수필, 소설, 게다가 시나리오까지 과제에 치여 살았다. 불면의 밤, 뜨개질 바구니를 꺼내놓는 이유였다.

직장과 살림과 학업 중 어느 한 곳이 삐걱거리니 불안감이 찾아왔다. 밥보다 카페인에 매달리고, 위장약을 달고 살자 남편이 고생을 사서 한다며 나무랐다. 문학이 무엇이기에 늘그막에 미련이 남아 문예창작과 문을 두드렸을까. 세상은 온통 글 잘 쓰는 사람, 재능이 넘쳐나는 문학도뿐이고 내 글은 그 어디에도 내놓기 부끄러웠다.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인지 녹슨 머리를 써먹자니 여간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갱년기에 가속이 붙어 밤낮으로 열불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지난 학기 문학개론기말 과제가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였다. 제출한 과제는 대충 이러했다. “나에게 문학은 학문이고 버거운 공부고 노동이고 동시에 스트레스다. 정년을 앞둔 늦은 나이에 새삼 자아를 찾겠다고 선택한 공부에 발목이 잡혀 내가 이러려고 문학을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과제를 쓰는 이 시간도 문학이 주는 피로감에 자양 강장제의 도움을 받을 정도다.”라고 썼다.

즐거운 작업이어야 할 문학이 피로감을 몰고 오자 아무리 창작이 고통을 수반한다 해도 내 나이로 감당이 안 되는 스트레스 범위였나 보다. 그러나 이 답은 옳지 않았다. 새벽 기차를 탔던 그 날처럼 이라는 코를 빠뜨린 채 욕심만 앞선 문학을 한 것이다.

글 쓰는 이치도 뜨개질과 같을진대 처음부터 두툼한 겨울 스웨터를 뜨고자 많은 고무단 코를 잡았던 게다. 대바늘의 길이가 짧으면 반드시 빠뜨리는 코가 있기 마련이다. 민무늬도 어려운데 꽈배기 무늬까지 넣다 보면 정말 꽈배기처럼 뜨개질이 꼬이게 되어있다. 특히 여러 올의 실을 바늘로 고리를 만들어 짜는 스웨터는 빠뜨린 코 때문에 올이 풀릴 수도 있었다. 옷으로서 가치가 없으니 처음부터 잘못 잡은 코는 풀고 다시 치수에 맞는 코를 잡아야 했다. 그동안 내가 수없이 떴다 푼 뜨개질처럼 문학도 그러리라.

문득, 어떤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그냥 써라 무슨 얘기든 그냥 써라, 자신의 이야기부터 써라.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면 더 좋다고 했다. 그래 맞아, 문학이 별건가.

밤을 새울 만큼 재미있었던 뜨개질이 누군가에게 선물할 실력이 되자 얼마나 행복했던가. 늦더라도 조금은 서툴더라도 문학으로 뜨개질하리라.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의 어깨를 감싸줄 따뜻한 망토였으면 좋겠다. 애착 인형처럼 내 불안을 잠재우는 뜨개질 바구니를 꺼내놓는 대신 컴퓨터를 켜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가 사뭇 경쾌하다. 글자 하나하나가 바늘에 걸린 코처럼 보였다. 한 단 두 단 문장이 떠지는 것이 영락없는 뜨개질 모습이다.

깜빡이는 커서를 백스페이스 한다 해도, 떴다 푸는 뜨개질처럼 또다시 쓰면 되리. 이 밤에 코를 잡고.

 

<2021.2월 한국산문, 특집 신작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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