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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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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모에서 벗어나기    
글쓴이 : 봉혜선    21-03-02 10:30    조회 : 9,390

                                  네모에서 벗어나기

 

                                                                                                                   봉혜선

 

뺑덕어멈. 춘향이 엄마 월매, <장한몽>의 김중배. 공통점을 알아 맞춰보세요. 학창 시절 나의 연극 역할 목록입니다! 바라던 대로 계속 연극을 했더라면 벌어진 어깨와 각진 턱 탓에 파리에서 불탄 노트르담 사원의 종지기 콰지모도 역을 맡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태어나기로 한 날보다 하루 먼저 나온 죄 아닌 죄로 산파도 올 수 없던 아침 나는 한쪽 발부터 나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전날 이웃의 이사를 도우러 트럭을 타고 나가서 안 계셨다. 친할머니는 산모 머리맡에서 짚을 깐 위에 쌀을 놓고 비느라 손금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언니 조금만, 조금만 더.” 아홉이나 되는 고모들은 엄마 입에 귀한 생달걀을 한 판이나 깨뜨려 넣으며 나를 받았다고 했다. 아침상을 못 받으시고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목침이라도 좋으니 빨리만 나오라는 할아버지의 말소리도 들었다는 엄마는 왜 그리들 야단인지 몰랐다고 했다. 산모와 아기 둘 다 살기 어려운 난산이었단다. 나는 발부터 거꾸로 나오며 어깨에서 한 번, 턱에서 한 번 걸렸다.

얼굴에 대해 놀림 받을 때면 변명인 양 늘어놓을 옛날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바늘을 갖고 있다가 발부터 나오는 아기의 발을 찌르면 놀라 돌아서 나올 수 있다. 내가 태어난 그 자리에 막상 외할머니는 안 계셨다. 태어나기 전부터 외할머니는 나를 미워하셨나 보다.

다섯 살쯤이었다는데, 젓가락으로 생선을 야무지게 발라 먹는 내게 외할머니께서 어머, 애가 비리지도 않나 봐라고 말씀하신 탓에 나는 아직도 익힌 생선을 입에 대지 못한다. 사위도 손자도 아닌 조그만 계집애가 맛도 모르면서 비싼 생선을 먹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한 치 걸러 두 치인데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혜선(惠善)‘이라는 내 이름조차 외할아버지 애인의 이름을 땄다고 했다.

출생 비화는 과장되었거나 조금은 각색되었을 것이다. 엄마의 얼굴에서 각진 턱 선을 찾아보려고 했다. 고모들과 이모들 턱 어디에도 나의 호소가 파고 들어갈 틈은 없다. 아버지가 도시락을 안 들고 가신 날 나를 한 번만 업고 나가게 해달라고 조르던 고모가 소원을 풀 뻔했다. 엄마는 아기를 업은 고모가 대문을 나서며 돌아서 인사를 하는 모습에 기겁을 했다. 울지도 않고 잘 먹던 아기가 턱 아래로 쳐지는 살 때문에 눕혀놓았을 때와는 너무 달라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고 회상하신다. 아무려면 자기 딸인데 그랬을라고? 부드럽고 둥근 턱 선을 가진 오빠와 여동생에게 뒤질라치면 무엇이라도 엄마 탓을 했다. 목숨과 맞바꿀 뻔한 얼굴로 엄마를 괴롭힌 것이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는 똑바로 눕지 못하게, 얼굴형이 나를 닮게 하지 않으려고 잠도 안자고 아이를 지켰다. ‘옆으로 누워. 넓어지면 안 돼. 갸름~하게.’ 그렇게 키운 아이가 별명이 오이라며 얼굴형에 대해 불만이다. ‘너 남자라도 그게 훨씬 나은 거야.’ 나를 달래듯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말해 주었다.

큰 아들과 7년 차이가 나는 둘째를 낳을 때 출산 예정일이 열흘 쯤 늦어졌다. 노산이라 나름 느긋한 나를 기다리다 남편이 끌고 간 병원에서 의사는 뱃속 아기 머리가 나오는 데에 있지 않고 덜 돌아있다고 했다. 나를 닮았다는 말로 들은 나에게 촉진제 처방이 나왔다. 늑장을 부리며 편안함을 누리던 아이의 용틀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큰 아이 때도 시어머니가 오셔서 가자고 했을 때에야 병원에 갔고,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낳아버려 아픔을 느낀 건 처음이었으니.

촉진제를 맞은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강제로 틀어댈 때, 아픔 중에도 떠오른 엄마를 향한 자괴감이라는 괴물이 내 목소리를 틀어막았다. 원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산부인과 의사 7명 모두 들어왔다는데 엄마는 의사들이 우르르 들어온 것을 알았을까. 분만실 밖에서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며 또 마음을 졸이고 기다릴 엄마가 떠올랐다. ‘바늘을 가지고 있대도 쓸 수 없어요, 엄마!’ 간호사가 올라타고 밀어내리는 힘을 빌어 나온 아이는 열흘 넘게 큰 중에서도 우량아였다. 신생아 중에서 제일 컸다. 신생아는 옮기는 통에서 발이 빠져나와 치는 소리가 병원 로비를 텅텅 울렸다고 했다. 태변까지 먹고 늙어가면서 왜 안 나오려고 했니, 아가야?

피를 주고 살을 주신 엄마의 아픔을 이제야 짐작한다. 몸피가 작고 둥그런 얼굴 모양을 한 오빠에 비해 얼굴도 어깨도 커서 내내 놀림감이었던 나는 목숨 걸고 나를 낳은 엄마, 엄마 없이 자라지 않은 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옛이야기대로 바늘의 자극으로 다시 들어가 돌아 나왔다면 각진 얼굴 대신 무엇이 남았을까? 생겨난 대로 살아 있는, 살아가는 것조차 기적이다.

만년에 외할머니는 내 턱에 밥이 다닥다닥 붙었다고 하셨다. “할머니 반찬은요?” 당돌한 내 질문의 대답에 돌아온 무안한 표정을 짓던 할머니의 희미한 미소를 기억한다. 외국 패션쇼 무대에 서는 동양인 모델을 뽑을 때 길쭉하거나 계란형 얼굴은 환영 대상이 아니다. 각진 네모는 단연 동양 모델의 전형이다.

네모는 일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이 흔하다. 하루의 끝과 시작을 함께하는 침대, 베개, 이불, 천장에서부터 책, 휴대폰, 신문, TV, 식탁, 도마, 가방, 창문, 아파트 등 네모에서 벗어나서는 온전히 지낼 수 없다. 네모에 갇혀 지낸다고나 할까? 왜 유독 여자의 얼굴만 동그랗거나 계란형이 미인의 표준인 것일까?

17년 동안 다니는 동네 수영장의 샤워룸에 마사지용 제품들이 건너다닌다. “얼굴 작으니까 조금만 주세요.”하는 내 말에 순간 멈칫하는 손길. 다부진 어깨로 수영할 때면 단연 선두에 서는 내게 아부 아닌 아부를 바치느라 나름 듬뿍 떠올린 손끝이 떨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본인도 모르는 새 알아챈 이 몹쓸 예민함이라니. 아무렴 수십 년간 갈고 닦은 눈치라는 게 있는데. 아무렇지 않는 듯 스스로 놀림감이 되기를 자처하게 될 때까지 감수한 안간힘을 생각하면.

                                                                                                                       거울 앞에서

서울 출생

<한국산문>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ajbongs60318@hanmail.net

"밥 먹고 무얼 하는지 알려주면 네가 누구인지 알려주겠다"라고 했다. 밥만 먹으면 섬처럼 흩어지는 가족들 사이로 유투버들이 파고 들어와 있다. 조용한 가운데 듣기 고정강좌가 늘어난다.

                                                                                                            (한국산문 2021. 03)

                                                                                                           (2021.선수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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