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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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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이웃집 남자    
글쓴이 : 박진희    21-03-20 00:28    조회 : 6,229

 '암살? 코로나 바이러스 중대 발견 앞두고 중국계 학자, 의문의 충격 사망. 살인자는 자살'이란 특종이 2020년 5월 초에 떴다. 피츠버그 대학 병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중국인 조교수, 빙 루가 상당히 중대한 발견을 앞두고 그의 타운하우스에서 권총으로 살해당했다. 범인은 근처 자기 차 안에서 머리에 총을 쏴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는데, 그 또한 중국계 사람이다.

 중국과 미국이 코로나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며 해결책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민감한 시점인 만큼, 이는 중국 정부와 관계가 된 일이 아닐까. 아마도 살인자는 중국 스파이가 아닐까. 코로나를 해결하는 일, 그것에 대한 연구는 중국에서 먼저 해내야 한다고 믿는 민족주의자의 광기에서 비롯된걸까.

 살인범의 나이와 이름, 동네가 익숙해서 뉴스를 유심히 살피던 나는 숨이 막히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바로 오랜 이웃이자, 내 아들의 친구 아빠였다. 13년 전 쯤, 아들이 제롬이라는 중국아이가 이사를 왔는데 학교에서 무척 수줍음을 탄다며 방과 후에 자주 어울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제롬 엄마가 수술을 받아 문병을 갔다. 아담한 체격에 안경을 쓴 제롬 아빠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범생이' 스타일이고 아내를 정성껏 돌보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서로의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는데, 제롬 아빠는 몇가지 음식을 직접 만들었고, 특히 만두소를 빚을 때는 고기를 한 방향으로 저어야 끈적해져 잘 뭉쳐진다는 전문가다운 팁을 주기도 했다. 영어가 유창한 그는 수석 컴퓨터 엔지니어로 제법 큰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집안일과 회사일을 거의 완벽하게 해내는듯 보였다.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걸로 알던 한국 남자인 나의 남편과 비교가 되었다.

 제롬은 아들과 함께 다니던 공립학교를 떠나 사립학교로 전학했고 바이올린 개인 레슨이며 겨울에도 수영 레슨을 받는다며 바빠졌다. 또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여름 방학마다 중국에 몇 달간 다녀오곤 했다. 중국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면서 제롬 아빠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화분에 물주기와 물고기 밥주기를 부탁 받았다. 아기자기한 화분에 심겨진 갖가지 꽃들과 큰 수족관의 화사한 열대어들은 여간 정성을 들인게 아니었다. 집안 구석구석은 세밀하고 정교한 제롬 아빠의 손길로 가득했다. 한달간 돌봐주기를 한 보답으로 고급 유화 붓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바빠지면서 조금씩 거리감이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정원일을 하거나 하얀 강아지와 산보하는 그와 마주치면,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어 보이곤 했다. 3월 어느 새벽 산책길에 길 건너편에 있던 그와 손 인사를 나눈 것이 마지막이었다.

 경찰은 중국과 관련된 사건이라 FBI의 도움을 요청했으며 그의 살인 동기가 코로나 연구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일단락 지었다. 내가 봐왔던 제롬 아빠는 헌신적인 아버지이며 대단하게 가정적인 남편이자, 성공적인 이민자의 모습이었는데 어쩌다 살인을 하고 자살까지 한 것일까. 그가 스파이였다면 교묘하고 철저한 살인을 했을텐데, 혹시 중국 정부에서 거부하지 못할 의뢰를 받았을까. 코로나를 연구하는 중국 사람을 배신이라 오해를 해서 필요한 희생이란 생각으로 저지른 것일까. 만일 원한 살인이라면, 여염집 아낙을 연상시키는 그의 아내가 유부남인 젊은 학자와의 치정 관계나, 그 반대 커플의 불륜마저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가 만일 '게이'였다면, 매력적인 빙 루에게 고백이라도 했을까. 그래서 폭로하겠다는 위협을 받았다면, 그건 살인이 가능한 일이다. 그의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모든 걸 덮기 위해서...

 이미 미국인들 사이에 코로나로 중국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만일 중국 정부가 연루된 살인이라면 이 사건은 중국인 뿐 아니라 아시아인들에게도 인종차별의 증오가 불지피듯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과 중국간의 정치적 관계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두려워 그저 사적인 일이었다며 순식간에 얼버무리고 덮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의 아들과 아내가 남겨진 집이 저편 큰 상록수 나무들 사이로 보인다. 창가로 새어 나오는 불 빛이 애처롭기만 하다. 곧 대학에 진학하는 아들, 집안 일에 소질도 관심도 없던 아내는 그의 죽음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이웃집 남자의 비밀과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위로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거리에서, 먹먹함으로 나도 모르게 그 집을 바라보고 있다.

<재미수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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