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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무두질 (격월간지 <에세이스트>2022.1-2)    
글쓴이 : 김주선    21-12-23 15:30    조회 : 1,245

엄마의 무두질 / 김 주 선


 엄마는 갈걷이 후 뒷설거지하러 들에 갔는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빈집이었다. 뒤꼍 우물에 가서 물 한 바가지 퍼마시고 돌아서려는데 커다란 고무 물통에 담긴 물체를 보고 기겁했다. 역한 비린내가 나는 담요 모양의 털 껍데기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우물에 자빠질 뻔했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신 듯 비위가 상했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오리()가 넘어 어린 걸음으로 삽 십여 분 이상 걸렸다. 도중에 도축장이 있었다. 새마을 운동 후에는 다른 곳으로 이전해 문을 닫았지만, 빈 건물 앞을 지나다닐 때면 으스스한 것이 보통 담력으로는 혼자 다니기 꺼려졌다. 도축장 옆에는 두 가구가 살았다. 그중 한 집은 가죽을 염장해 천연 가공하는 분이 이사를 와 도축장 이전까지 살았다. 가끔 소가죽이나 돼지가죽, 혹은 양가죽이 그 집 마당에 널려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 많은 사람은 그 일이 배우고 싶었던지 가끔 어깨너머로 엿보곤 했다. 그중에 엄마도 있었다.

나일론 털실을 사 뜨개질 하는 것도 신물이 났던지 농한기에는 부쩍 이사 온 그 집으로 자주 마실 가셨다. 털을 제거한 소가죽보다는 그 집 안방에 깔린 양털 가죽이 부러운지 엄마는 몇 번이고 손으로 만져보며 주인 여자에게 물어보던 게 생각났다. 마침 나도 까슬까슬한 나일론 털실보다 보드라운 양털이 달린 망토가 있었으면 하던 때였다. 

수구레도 아닌 것을 뭣에 쓸라고?”

저녁나절, 국밥용 소() 부산물이 아니란 걸 눈치챈 외할머니의 혀 차는 소리가 우물에서 들렸다.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생피를 이리저리 뒤적이고 살폈다. 또 무두질이냐며 염장 된 가죽을 못마땅해했다. 덫에 걸린 산토끼도 아니고 소금물에 불어 축 늘어진 양가죽은 섬뜩할 정도였다. 그전에도 가죽가공을 해보겠다고 시도했다가 온 집안에 썩는 냄새가 진동하게 하더니 미련을 못 버린 모양이었다. 한번은 자식들 언 귀에 귀마개를 씌워주고 싶었던 엄마는 토끼 가죽을 구해왔다. 무두질 없이 뻣뻣하게 말린 모피로 귀마개를 만들었지만, 냄새도 나고 털도 빠져 털실로 짠 귀마개보다 덜 따뜻했다. 천연 가공 집이 이사 오자 제대로 된 모피가 탐이 났었는지, 수구레보다는 털이 있는 생피를 얻어왔다.

가축 털은 소금물에 이틀 정도 담갔다가 피하조직의 기름을 긁어내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냄새가 제일 고약했다. 백반에 담가 중화시킨 후 연기에 그을려서 말려 보기도 했다. 막대기로 두드렸을 때 제법 가죽 우는 소리가 났던지 흡족해하셨지만, 어느 날 보면 멍 같은 반점이 생겨 썩어 있었다. 

짐승이 죽으면 수 시간 내에 부패가 진행됨으로 요즘 같으면 염장 처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겠지만, 당시엔 약품도 귀했을 뿐더러 자연에서 나는 잿물이 고작이었다. 보고 들은 대로 양잿물에 담가 치대고 빨고 빨랫방망이로 두드리는 무두질이 끝나면 햇볕에 널어 말렸다. 부드럽게 중화하는 담금질과 무두질을 반복해야 그나마 가죽 꼴이 되었다. 건조 중에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팽팽하게 당겨 나무틀에 걸었다. 그 또한 도움을 받아 지극 정성을 쏟았음에도 열흘도 못 갔다. 덜 마른 털 껍데기에 보랏빛이 돌면서 냄새가 났다. 기분마저 축축할 정도로 습도가 높았던 산간지방의 기후 탓으로 돌렸다. 결국, 그렇게 부패 된 가죽을 쇠죽 아궁이에서 태웠다. 이렇게 저렇게 해도 흙만 파먹고 살라는 지신(地神)의 뜻인 양, 제대로 된 성공은 못 하셨다. 

그 무렵, 땅문서를 들고 집을 나간 오빠는 부모님 가슴에 울화통을 달아 드렸다. 소 판 돈이며 감자밭이며 살림 밑천이 되는 것은 남아나는 게 없었다. 꾹꾹 눌러 담은 화가 용암처럼 치밀어 오르면 엄마 속이 까맣게 탔다. 냉수 한 사발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우물가에 앉아 가슴팍을 무두질하던 엄마를 보았다. 복장에서 북소리가 나도록 주먹으로 쳤다. 자신에게 가하는 체벌 같았다. 한 바가지 눈물을 쏟았는지 세수까지 하고 코를 풀어야 무두질이 잦아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장독대 위에 놓인 정화수를 보고서야 엄마의 가슴에 멍이 들었음을 알았다.

언젠가 외할머니께 들은 이야기이다. 오빠 아래로 죽은 언니가 한 명 있었다. 오빠가 일곱 살이던 무렵에 걸음마도 못 뗀 언니를 맡겨두고 엄마는 들에 일하러 갔단다. 아기가 울면 젖먹이로 오라며 당부하고 들에 갔는데,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그만 사달이 난 모양이었다. 혼자 집에 있던 아기가 사고로 죽은 것이다. 뱃속에 돌이 찼다던가 장이 꼬였다던가, 아무튼 무엇을 주워 먹었는지 마당에서 발견된 아기는 치명적이었다고. 겁에 질린 오빠 걱정에 엄마는 울지도 못하고 가슴에 돌무덤을 만들었다. 젖도 못 먹고 죽은 아기가 생각나는지 비라도 오는 날엔 젖몸살이 느껴진다며 아파했다. 가죽만 남은 쪼그라든 젖가슴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문지르고 주먹으로 두드리던 모습이 엄마의 무두질은 아니었을까.

시월 상달에 농악패가 마을을 돌며 북을 칠 때 비로소 불끈 움켜쥔 주먹을 펴고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는 엄마를 보았다. 점잖은 여인이 고무신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동네잔치에서 노는 모습을 보니 어린 내 가슴에도 작은 북소리가 들렸다. 일 벌이는 족족 말아먹고 집 밖으로 도는 아들이 죽은 제 누이에 대한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아닌지, 엄마는 늘 돌덩이 하나를 삼킨 듯 괴로워했다. “내 속이 이렇게 상하는데 네 놈은 오죽하랴?” 엄마의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은 오빠가 장가간 이후로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잦은 트림으로 명치를 두드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똥이 묻고 건초 부스러기가 엉겨 붙은 가축 털을 깨끗하게 두들겨 빨아서 속풀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물건을 말갛게 헹구듯이 엄마 마음도 깨끗하게 헹궈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두질하는 날엔 엄마의 속 썩는 냄새도 우물에서 나는 듯했다. 시골 아낙의 일탈은 손바닥만 한 가죽 한 장도 못 만져보고 끝이 났지만, 어쩌면 무두질을 핑계로 무너지는 억장을 추스를 심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속 썩이는 자식놈들 두들겨 팰 수는 없고 자신의 복장뼈가 으스러지도록 두드리던 엄마의 가슴만은 부드러운 가죽 북이 되었으려나. 젖몸살을 앓던 마음자리엔 잔잔한 주름 무늬가 아롱아롱 새겨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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