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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의 꿈-2022.2월 <한국산문>    
글쓴이 : 김주선    22-02-07 22:33    조회 : 1,591
백사의 꿈 / 김 주 선

 

 용 두 마리가 승천했다는 영월 쌍용리는 농업이 주업일 만큼 비옥한 땅이었다. 38번 국도변 일대는 석회암 지대여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석회동굴이 많았다. 1962년 비옥한 농경 지대에 시멘트를 생산하는 양회공장이 들어서고, 70년대 건설 붐이 일자 광산업자들이 마을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외지 사람이 몰려 지역경제가 살아나자 인구가 늘었고, 무엇보다 중학교가 생겼다. 돈이 돌고 삶이 기름질수록 사람들은 욕심이 늘어갔고 더불어 몸에 좋다는 음식이라면 뭐든지 갈구했다.

그 무렵, 이웃에 뱀집이 이사를 왔다. 업고, 안고,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 앞세우고 이부자리와 가재도구 몇 가지만 손수레에 싣고 올 정도로 단출했다.

방 두 칸과 부엌이 있고 사이에 나무 마루가 있는 집이었다. 나무로 짠 마루는 위에서 양쪽으로 여닫을 수 있는 개폐식 마루였다. 마루 밑에는 1m 깊이로 판 한 평 크기의 창고가 있었다. 벽면을 시멘트로 발라 한여름에도 냉기가 돌아 식료품을 보관해도 될 정도였다. 그 창고가 뱀을 넣어두는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어느 날이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고만고만한 동네 애들과 모여 뱀집에 놀러 갔다. 뱀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눈치챈 주인아저씨가 마루 문 한쪽을 열었다. 맨손으로 뱀 한 마리를 꺼내더니 안고 있던 막내아들 목에 척 걸어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소스라쳤지만, 읍내 서커스만큼 긴장하며 지켜보았다. 마침 그 아이가 생일이라고 했다. 축하 공연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저씨의 능글맞은 얼굴 너머로 무독성 뱀 한 마리가 스르르 목을 감고 흘러내렸다.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것이 더 충격이었다.

논두렁이든 개울가든 개구리가 철없이 울던 시절, 좋은 부업거리가 생긴 마을 장정들이 땅꾼의 기술을 터득했다. 일단 뱀의 급소를 제압하는 ㄱ 모양의 도구가 있어야 했다. 포획물을 담을 자루도 필요했다. 주인이 마당에 뱀 한 마리를 풀어놓고 시범을 보였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뱀의 목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뱀 꼬리가 요동쳤다. ㄱ 모양의 나무 막대기가 움찔거릴 정도였다. 뱀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쥔 아저씨는 노련한 땅꾼이었다. TV가 없던 시절 아저씨의 영웅담을 들으러 사내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청년이 된 오빠들도 밤마다 사라졌다. 남자아이들은 주로 무독성 밀뱀이나 누룩뱀을 잡아 용돈벌이를 했다. 현재 가치로 2, 3천 원 정도였을 것이다. 머리가 세모진 살모사는 고가였으나 땅꾼이 아니면 권하지 않았다. 몸통이 굵고 짧다고 얕보았다 간 물릴 수도 있었다. 비늘이 반질거리고 윤기가 흐르는 구렁이나 누룩뱀은 독이 없고, 붉은 무늬의 꽃뱀이나 비늘이 까칠까칠한 것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동네 어르신이 사담을 늘어놓았다.

뜨거운 여름, 비가 온 날이면 어김없이 마당으로 슬슬 기어 나오는 뱀이 있었다. 더위를 피하느라 서늘한 돌담 사이나 장독대 받침돌 밑에 숨어 있기도 했다. 할아버지 산소 상석 밑에는 해마다 겨울잠을 자는 무리가 있다고 아버지는 늘 오빠들에게 주의를 시켰다. 뱀집이 이사 오고 동네에는 확연히 뱀이 줄어들었다. 3년 정도 살면서 채집한 생사를 도매금으로 판매하더니 어느 날 소리도 없이 이사 갔다. 새로운 주인이 이사 왔지만, 광산에서 일하는 잡부(雜夫)였다.

뱀집이 이사한 후에 놀라운 소문이 돌았다. 흰 뱀을 잡아 아주 많은 돈이 생겨 마을을 떠났다는 것이다. 뱀이 산삼을 먹으면 백사가 된다는 둥 한겨울에도 눈 위를 기어 다녀 백사라는 둥 별별 소문이 다 돌았다. 무엇보다 죽어가는 자도 살린다는 절대적인 영약(靈藥)이라는 소문이 마을 사람들의 탐욕에 불을 지폈다.

사람들은 백사를 꿈꾸었다. 동네 사람들은 돈독이 올라 눈이 뻘겋게 뒤집혀 뱀을 잡으러 다녔다. 그러던 중 이웃에 사는 동철 오빠가 구렁이를 잡았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여 백사만큼 값어치가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은근히 부러워했다. 광산에서 일하는 그의 아버지는 외지 사람이었다. 아들을 나무라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은 집 앞마당에 땅을 파고 큰 항아리를 묻은 다음 구렁이를 넣어두었다. 동네 사람들이 구경 가면 이무기라도 잡은 것처럼 신나서 이야기했다. 멀대같은 줄 알았는데 정말 용감한 오빠였다. 그 집도 광산 사택을 배정받아 마을을 떠났다. 뱀이 집마다 부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오빠가 정신이 돌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몇 해 전 폐교 위기에 놓인 초등학교를 위한 동문회 행사가 있었다. 한 때 1,200명가량 되었던 학생 수는 현재 30명도 안 되었다. 본 행사가 있기 전 학교나 고향을 위해 이름을 떨친 동문에 대한 공로상 시상식이 있었다. 수상자를 사회자가 소개하기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연출을 공부하고 금의환향한 영화감독이라고 했다. 객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뱀 집 아들 아무개’라는 것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아, 그 아이라니. 백사가 만들어준 영광이었을까? 얼굴은 밝고 귀티가 흐르나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최근에 소식을 들었는데 구렁이를 잡았던 동철 오빠는 원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때 구렁이는 정신이 돌 만큼의 영물(靈物)은 아닌 모양이었다. 허황한 꿈을 좇는 마을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고자 마을 어른이 꾸며 낸 말이라고 들었다. 그 구렁이는 불로장생을 꿈꾸는 어느 눈먼 자의 집에서 담금주에 저장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이제 뱀을 잡지 않는다. 요즘은 멸종 위기종으로 구분돼 포획이 금지된 종도 있어 땅꾼들이 개체 수를 조절한다고 들었다. 요즘은 산에 가면 뱀 조심하라는 말보다 멧돼지 조심하라는 말을 더 듣는다.

한때 경제발전과 건설 붐으로 뜨거웠던 고향은 찻집도 공중목욕탕도 사라진 쇠락한 마을이 되었다. 이제는 환경운동 문구가 적힌 현수막만이 마을 어귀에서 홀로 싸울 뿐이다. 마을의 부를 가져왔던 양회공장은 십수 년 전 일본에서 수입한 산업폐기물을 시멘트에 섞어 생산하면서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켰다. 시멘트에서 나온 발암물질과 중금속 섞인 분진 가루가 사람을 병들게 하고 객지로 떠돌게 했다. 자연이며 동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물인 줄 알았던 백사 또한 보호색을 잃고 도태되는 돌연변이라는 것을 안 사람들은 오랜 시간 허탈해했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처럼 경제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인간의 탐욕이 가져온 마을은 몰락했다. 뱀집 큰아들의 유학길을 터준 백사의 꿈은 마을의 전설이 된 지 오래고, 폐가가 된 어느 집 마루 밑에는 무성한 잡초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백 년 묵은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낮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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