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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체험    
글쓴이 : 박병률    22-02-15 21:41    조회 : 1,889

                                            죽음 체험


  3월 중순 양평에 들어서자 함박눈이 내렸다. 차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고 어떤 차는 접촉사고가 나서 길 한가운데 엉켜있었다. 나는, 길 가장자리에 차를 세우고 앞바퀴에 체인을 채웠다. 경험상, 강원도 길은 봄까지 도로에 눈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 체인을 챙긴 게 다행이었다.

  강원도 양양 공사 현장에 가려고, 승용차 조수석과 뒷좌석은 물론 트렁크까지 데코타일을 가득 싣고 달리는 중이었다. 봄에 함박눈을 본다는 것은 보기 드믄 일이라 자동차가 달릴 때 스키를 타고 설원을 누비는 느낌이었다. 핸들은 가볍게 돌아가고 엉덩이에 양탄자를 깔고 앉은 듯 부드러운 촉감이랄까.

  상상도 잠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붓던 눈이 양평을 벗어나자 뚝 그쳤다. 체인을 벗길까 생각하다가 눈이 또 올까 봐서 그냥 달렸다. 산비탈 해가 들지 않는 곳에 눈이 남아있고, 체인이 아스팔트와 부딪히는 마찰음이 들렸다.

  44번 국도 신남을 지날 때 커브 길이 보였다. 습관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도로는 말짱한데 눈 깜박할 사이 차가 중앙선을 넘어 한 바퀴 빙 돌았다. 차가 제 차선에 들어섰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브레이크를 더 세게 밟았다. 차가 옆으로 지그재그 움직이다가 퍽 소리를 내며 뭔가에 부딪혔다. 정신이 멍했다.

  잠시 후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내 차가, 길 가장자리에 시멘트로 만든 한 뼘 정도의 도랑을 넘어 방어벽을 들이받고 서 있었다. 방어벽이 없었다면 차가 수십 미터나 되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주변에 눈이 쌓였는데 검은색 범퍼가 눈 속에 묻혀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험사에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때마침 레커차가 사고 날 것을 예측했는지 내 앞에 섰다. 운전사가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차 꺼내야죠?”

  “.”

  내가 꺼내 달라고 하자 레커차 운전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곳은 사고가 자주 나는 지역입니더. 눈이 없어도 응달이라 오전에는 길이 얼어있는 기라. 멋모르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돌아삡니더. 차가 뒤집히지 않아서 참말 다행입니더. 며칠 전에 차가 낭떠러지로 굴러서 차는 박살 나고 사람이 크게 다쳤십니더. 그 사람 어찌 됐는지 모릅니더. 아저씨는 참말로 운이 좋십니더.”

  뒤 범퍼가 형편없이 찌그러졌는데, 레커차 운전사는 차를 끌어 내놓고 나더러 조심히 가라며떠났다. 광야에 홀로 서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운전대를 잡으려니 마음이 몹시 불안했다.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 정신을 차리자!”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공사 현장에 바닥재를 빨리 갖다 줘야 일을 마칠 수 있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차가 도랑을 넘으면서 앞바퀴 한쪽 체인이 끊어진 모양이다. 체인을 포장끈으로 얼기설기 묶고 출발했는데 얼마 안 가서 이제는 끈이 끊어졌다. 차가 달릴수록 체인이 차에 부딪히면서 덜거덕덜거덕했다. 소리가 요란해서 차를 한쪽에 세우고 체인을 벗겼다. 앞바퀴 한쪽만 체인을 채우고 대관령 정상을 향해 가는데 응달에 눈이 쌓여있었다. 커브를 돌 때마다 바퀴 한쪽에 체인이 없어서 그런지 차가 차선을 넘나들었다. 보통 때 같으면 브레이크를 밟을 텐데 차가 또 돌아버릴까 봐,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다 보니 손에 땀이 흥건했다.

  대관령 정상에 오르자 체인을 팔고 있었다. 체인을 사서 바꿔 끼었다. 대관령을 넘자 도로에는 눈이 없었는데 불안해서 체인을 채운 채로 차를 몰았다.

  불안한 생각이 밀려오면, 대관령을 넘어 7번 국도를 타고 죽변처가에 다니던 생각을 했다. 대관령 길은 구불구불하고 수십 미터 낭떠러지인데 안개가 끼어서 한 치 앞도 안 보일 때가 있었다. 앞차와 부딪칠까 봐 불안했다. 그럴 때 살얼음판을 걷듯 앞차 꽁무니 불빛을 따라가고, 어떤 날은 바람이 세게 불어서 차가 몹시 흔들렸다. 두려움과 싸워가며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차가 중앙선을 넘어 미끄러진 뒤엄습해오는 불안감 때문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대관령 길이 터널을 군데군데 뚫어서 시간이 단축되고 길도 좋아졌다.

  공사 현장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일꾼들과 밥도 먹고 차도 마신 다음에 서울로 향했다. 차 안에서 레커차 운전사 말을 떠올렸다.

  “아저씨는 참말로 운이 좋십니더.”

  내가 정말 운이 좋았던 건가? 차가 중앙선을 넘는 순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예고 없이 내 앞에 나타나서 눈앞에 아른거렸으므로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차가 요동치는 대로 끌려갔다. 몇 초의 순간이 지나 방어벽에 부딪혀 차가 멈춰 섰을 때는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았다.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중앙선을 넘을 때 마주 오는 차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중앙 분리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차에 짐을 가득 싣지 않았다면 차가 가벼워서 뒤집히지 않았을까, 차가 뒤집히면 차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테고, 나는 어떻게 됐을까?’

  차가 중앙선을 넘는 순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났으므로 죽음체험같았다. 자연스럽게 죽음체험수련원 지구별 여행자 대표 김기호가 진행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체험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자서전 쓰기, 죽음 명상, 유언장 쓰기, 묘비명 쓰기, 입관 체험으로 4시간 정도 진행됐다. 입관할 시간이다. 수의를 입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저승사자를 따라 500m 정도의 숲길을 가야 한다. 한 손에는 촛불을, 다른 손에는 나의 묘비명과 유언장을 들고 산으로 향했다. 서쪽 하늘 노을이 붉다. 관 앞에 서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관 속에 들어갔다. 도우미 두 명이 흰 천으로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마지막 양식이라며 생쌀 한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었다. 쌀을 씹는 동안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고, 무릎을 굽힐 수도 없었다.

  관 뚜껑을 덮었다. 깜깜했다. 잠시 후, 발소리가 들렸다. ! ! ! 관 위에 대고 망치질했다. 귀청이 찢어질 듯했다. 대표가 질문했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한국산문 20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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