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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빛의 과거    
글쓴이 : 성혜영    22-03-01 15:11    조회 : 2,135

내 빛의 과거

 

성혜영

 

누구에게나 빛나던 순간이나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가 스물이었을 수도 있고, 서른 마흔이었을 수도 있다.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잡을 수도 없어 보내놓고, 되새긴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을 뒤적거리다 보면,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기 일쑤이다.

가려고 한 이촌역 중앙박물관을 지나고 있을 때 한 생각이 스쳤다.

몇 정거장 더 가서 숙대입구역에 내려야겠다는 생각이다. 이쯤 살다 보면 세상사는 꼭 이거 아니면 안 돼!’ 하는 생각을 버릴 정도로 유연해져 있다. 갑자기 바뀐 하루에 무엇을 담아낼지 오히려 신선한 기분에 들떴다. 낯설지 않은 길을 쭉 따라 오르며, 양쪽에 늘어선 가게에 그윽한 시선을 보냈다.

거의 길이 끝날 즈음 언덕 양쪽에 버티고 선 숙명여자대학교 캠퍼스가 보인다.

왼쪽엔 약학대학 건물이 있고, 오른쪽엔 여러 대학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정문이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학생 외엔 못 들어간다고 막았다. 코로나는 막무가내다.

 

얼마 전 읽은 책의 주 무대인 기숙사는 본관 뒤쪽에 있다. 학교 건물을 빙 돌아 그곳을 가려면 언덕배기에 있어 쉴 겸 효창공원으로 들어갔다.

은희경 작가의 빛의 과거엔 옛날 기숙사에서 일어난 일들을 세세하게 담아냈다.

책에서 40년이 지난 그녀의 오랜 친구는 그때의 일을 소설로 발표했고, 뒤늦게 그 소설을 읽는 주인공인 나, 김유경은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을 빌려 은희경 작가는 과거의 얘기를 토해냈다. 자전적 얘기는 흥미를 더한다.

70년대에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면, 있을 곳은 기숙사 아니면 하숙이다. 여학생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1순위는 기숙사에 기거하는 일이다. 부모는 서울에 간 자식을 자랑하며 흐뭇하게 잊어버리고 산다. 기숙사 안의 여러 가지 캐릭터를 가진 여학생들의 등장과 미팅 얘기를 읽으며, 그 시절을 유영하고 있는 나를 느꼈다. 책 읽는 맛은 이런 거다. 읽는 도중 그 기숙사를 알 듯 말 듯한 생각에 긴장했다. 은희경 작가의 이력을 뒤져보니 맞았다. 전주여고를 졸업한 숙대 국문학과 출신이었다.

 

백범김구기념관이 있는 효창공원은 드넓다. 지형을 그대로 살려 오르내리는 길은 자연이 숨 쉬고 운치가 있어 산책하는 동네 주민은 복 받은 듯 부럽다.

공원 한쪽 귀퉁이에 시대를 외면한 초라한 가게가 하나 있다. 눈길이 가는 매점에 호박죽, ‘뱅쇼라고 쓴 글씨가 보였다. 3년 전쯤 왔을 때도 본듯한데 재미있다.

다음엔 춥고 배고프게 해서 와야겠다. 저 두 가지를 꼭 먹어 봐야지. ‘뱅쇼는 뜨거운 외인이라고 들었다. 와인을 즐기는 딸하고 와야겠다.

정자에 기대어 듣는 ‘G 선상의 아리아의 선율을 들으며, 스무 살 시절을 떠올렸다.

나무 위로 다람쥐가 넘나들고, 참새들은 떼지어 경쾌한 화음을 넣었다. 예기치 않은 안온한 시간에 절친을 소환했다. 같은 과에 다닌 정숙은 4년간 제일 친한 친구였다.

이촌역 박물관 가려다 지나쳐 모교에 오니, 코로나로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효창공원에 왔노라. 친구 정숙은 반기지 않고, 다람쥐와 매점만 반기더라. 친구 살던 곳은 지척에 있건만, 너는 어느 남정네 따라 먼데 가서 아니 오느냐.”

야은 길재의 시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인걸은 간데없네.’ 이 부분이 생각나서 위와 같은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그 시절 신촌에 살던 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효창동에 사는 친구 집에 자주 갔었다. 시험공부 같이하자고 해서 간 적도 있는데, 친구에 비해서 나는 집중을 못 했다. 대전에 사는 정숙은 대전현충원 둘레길을 산책하며, 우리 시아버지 묘에 꽃도 꽂아 드리곤 한다. 친구에게서 응답이 왔다.

 

오호라~숙대 정문이네. 나도 지금 산책 중이야. 그리운 내 고향 구석구석 밟아보고 변한 모습 얘기해주거라. 이 몸은 저녁 준비하러 들어가련다.” 애당초 남편으로부터 컴퓨터란 별명을 얻은 사람답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실하게 사는 친구다. 여자는 한번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된다더니 언니도 여동생도 친구도 모두 지방을 못 벗어난다. 정숙은 교육학과 출신답게 학교에서 카운슬러로 오래 일했다.

정숙이 서울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자신과 똑같은 대상을 본다는 뜻의 도플갱어란 말이 유행이다. 서로 네가 한 일을 알고 있고, 네가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고, 20대의 너를 3040대의 너를 거쳐 지금의 서로를 알고 있는 우린 도플갱어이며, 단짝이다. 단짝이라 같이 하고픈 게 많은데 멀리 있어 잘 못 만나니 아쉽다. 긴 전화 통화로 아쉬움을 달래며, 일상을 확인한다.

 

은희경 작가의 빛의 과거를 프리즘 삼아, 우리의 빛의 과거를 투영해 보았다.

 

2021.10 5회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회 수필51

 

 

 

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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