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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까시랍다고    
글쓴이 : 박병률    22-03-04 10:50    조회 : 3,176

                                       내가 까시랍다고


  ‘북두칠성을 바라보면 할머니 발자국 같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사셨는데 내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한테 할머니는 방패고 어머니는 창이었다. 어머니가 회초리를 들면 나는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어머니가 내 어린 시절을 들려주었다.

  “큰아는 어릴 때 겁나게 까실았어! 내가 회초리를 들면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빙빙 돌았단게.”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할머니가 큰소리를 질렀다. 동네 사람 보소! 이 년이 시애미를 때리려고 허네.”

  할머니가 시어머니를 때린다고 억지를 부려서, 회초리만 들고 먼 산만 바라봤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큰아는 형사를 했어야 혀. 비 온 다음 날, 할머니가 마실 나가면 집 마당에서부터 할머니 신발 자국을 따라갔다. 발자국이 잘 안 보이면 부지깽이로 이리저리 짚어 가며 용케 할머니 계신 곳을 찾아냈어. 내가 몰래 숨어서 큰아 뒤따라갔지.”

  어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범인을 쫓는 형사가 현미경을 들고 범인의 발자국이나 지문을 살피는 모습으로 비친 모양이다.

  지금은 동네 골목이 시멘트 포장이지만, 그때는 흙길이었다. 비 온 다음 날 할머니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흙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어서 할머니가 걸어가면 고무신 바닥 무늬가 선명하게 찍혔다. 집에서부터 할머니 신발 바닥 무늬를 따라가다 보면, 할머니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할머니를 큰소리로 불렀다. 마루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양손을 벌리고 나한테 다가왔다.

  할머니는 내 새끼 왔는가!”하며, 나를 껴안고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날이 좋은 날, 할머니를 찾을 때는 손바닥에 침을 뱉고 검지로 손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동쪽은 전주댁, 서쪽은 진도댁, 남쪽은 순창댁, 북쪽은 부안댁이 살고 있었다. 침방울이 튀는 방향으로 할머니를 찾아 나섰다. 거의 침방울이 튄 방향에 할머니가 계셨다. ‘택호는 할머니들 이름 대신 시집오기 전에 살았던 고향 지명을 붙였다.

  할머니를 찾아 나설 때 흙먼지가 이는 마른 땅보다, 비 온 뒤 할머니 신발 자국을 따라가는 게 더욱 신이 났다. 내 기억이 맞는지,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남았는지 분간은 안 된다.

  어머니도 구순을 바라본다. 얼굴에 주름이 많고 백발이 되어 할머니 모습이 겹쳐 보인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사시다가 지금은 동생 집에 계시는데, 나를 보면 레코드판이 돌아가듯 할머니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큰아는 어릴 때 많이 울고 까시랐어!”

  “엄니, 내가 얼마나 순했는데, 까탈스럽다고 혀요?”

  “큰아는 할머니 치마폭만 붙들고 늘어져서 손도 못 댔어.”

  “아녀요, 엄니 회초리를 많이 맞아서 내 장딴지가 튼튼한겨?”

  내가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가 말했다.

  “할머니가 그랬다. 동네 마실 나갔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집 앞에서 큰아랑 병팔이가 딱지치기하고 있더래. 병팔이가 먼저 할머니를 보고 너네 할머니 온다. 병률아 가봐라.’했디야.”

  사촌지간인 병팔이 형이 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셔서 샘이 났던 모양이다. 한번은 병팔이 형이랑 골목에서 놀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나를 살짝 부르더니 눈깔사탕 하나를 손에 쥐여 주었다. 형이랑 어릴 적에 구슬치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연날리기하며 놀았다.

  사촌 형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다. 지난 추석 무렵 형님이랑 할머니 산소에 들렀다. 벌초를 마치고 형님 집에서 하룻밤 잤다.

  “어머니가 할머니한테 들었다는데, 어릴 적 집 앞에서 형님이랑 딱지치기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집으로 오는 중이었대요, 형님이 할머니를 보자마자 나더러 너네 할머니 온다.’라고 했다면서요?”

  “내가 그랬던가?”

  사촌 형도 기억이 없고 나도 생각이 안 났다. 할머니를 떠올리며 밤새 뒤척거리다가 새벽녘, 마당에 나와서 하늘을 봤다. 새벽 공기는 차고 북두칠성은 유난히 밝았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별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따라갔다. 할머니가 걸어간 길처럼 보였으므로.

 

                                                              문학사계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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