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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 않을 고향의 봄 (2022.봄호<수필미학>_생태수필)    
글쓴이 : 김주선    22-03-11 15:01    조회 : 2,063

오지 않을 고향의 봄

                         김 주 선

 몇 해 전 기록적인 가뭄이 든 적이 있었다. 수몰되었던 남한강 주변 마을 터가 유적지처럼 모습을 드러낸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집터와 돌담이 쌓였던 흔적, 깨진 옹기들, 수백 년은 자랐을 것 같은 당산목의 그루터기까지 적나라하게 모습이 드러난 사진이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지는 강바닥에서 수풀이 자라난 모습은 기상이변이 나은 생경한 풍경이었다. 누군가는 수석을 주워가고 또 누군가는 집터 흙을 한 삽 퍼갔다는 사연마저 들렸다.

 제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청풍면의 거의 모든 마을이 수몰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일가친척들과 종친의 집이 수몰되어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는 걸 보고 마음이 쓰렸다. 평생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원주민들은 수몰지구 근처로 이주해 물에 잠긴 고향을 바라보며 여생을 사신 분들도 많다.

 대부분 사람은 죽어서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수구지정(首丘之情)’을 지니고 있다. 여우도 죽을 때는 살던 굴로 머리를 향한다는데 사람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당시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한곳에 모아 청풍문화재단지가 조성되었다. 선사시대의 유적 외에도 일반 민가 서너 채가 옮겨져 전시관으로 복원되었다. 청풍김씨의 후손인 나는 벚꽃축제 때면 종종 다녀오곤 한다.

 언젠가 집안 어른께 들은 얘기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매일같이 찾아와 문화재 단지 내에 전시된 고택으로 선뜻 들어가지도 못하고 회한 서린 표정으로 대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더란다. 아마도 그 집에 살았던 부농의 주인장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그 정도의 집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자신도 집과 함께 수장해 달라고 강제 이주를 결사반대했을 것이라며 실향민의 아픔을 헤아리셨다. 백발의 노인장이 고향 땅으로 머리를 두고 묻히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고향 집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원통한 심정은 알 것도 같았다.

 고급 리조트에서 숙박하고, 아름다운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며 분수 쇼를 보고, 비봉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며 청풍의 절경을 감상하는 여행객은 고향을 수장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아마 모를 것이다. 청풍호의 절반은 등허리에 지느러미가 돋아난 사람들의 눈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출생지는 아니어도 학교는 제천으로 다녔다. 집에서 시내까지 거리가 더 가깝기도 했지만 모든 생활권이 제천에 있었고 형제들이 터전을 잡고 뿌리를 내린 곳이기도 하다. 제천, 영월은 주로 양회공장이 많다. 석회암 지대이고 시멘트를 생산해 지역의 경제가 살았던 호시절도 있었다. 지금 이 지역은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젠 온갖 쓰레기에 매몰될 위기에 처해 있어서다.

 항공사진을 보면 마치 어느 행성의 싱크홀 같다. 반세기 이상 석회석을 죄다 파먹은 대기업이 그 자리에서 쓰레기매립사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계산이지만, 일부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와 맞서고 있다. 석회석을 채취하는 광산으로 이용되었던 폐광산은 겉보기에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용하기에 최적의 장소일지는 모르겠다. 매립장 건설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춘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회석을 캔 자리를 쓰레기로 메꾸고 원래의 산 모양으로 되돌린다고 해서 나무가 자라고 새가 울까 싶기는 하다. 악취는 어쩔 것인가. 근처 강으로 폐수가 흘러가면 식수원은 또 어쩌고.

 

 쓰레기 매립장 건설계획은 폐탄광이나 폐광산 부지뿐만 아니라 멀쩡한 일반 농가까지 들썩거리고 있다. 바로 내 고향 산막골이다. 대부분의 마을 이름 중에 글자가 들어있다면 산으로 막혀있거나 절벽이거나 골이 깊은 산골일 것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마을처럼 오죽하면 전쟁이 났는지도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골짜기 동네다. 어릴 적에 듣던 옛말 중에 집은 강원도요 마당은 충청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만큼 도() 경계선에서 가깝다는 소리다. 나지막한 고개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걸쳐있고 농사짓는 땅도 두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개발업자는 고지대 계곡형 지형일수록 많은 양의 쓰레기를 수용하는데 용이하다는 입장이다. 지질학자인 동창 J는 지형적 요소보다 매립장 입지의 적합 여부를 진단했다. 지반 조건을 살펴 그 대안과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한다. 양 측면을 넓고 깊게 뚫으면 매립장으로는 내 고향이 최적화된 지형이라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살던 고향이 꽃피는 산골이 아닌 산업쓰레기장의 메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 심란하다. 돌밭일망정 땅을 물려받은 자손은 돈벼락을 맞겠지만 고향의 추억만 곱씹으며 사는 나 같은 글쟁이는 악취 나는 고향을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하나.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울긋불긋 꽃 대궐을 차린 우리 동네였는데 말이다. 땅을 버리고 도시로 떠난 사람은 애물단지 부동산이 처분되니 잔치 분위기일 테고, 오로지 추억 속에 사는 고향 지킴이는 객지로 쫓겨날 판이어서 원통할 일이지 싶다.

 매립이 완성되면 그럴듯한 공원이나 체육시설을 제공할 것이란 제안서를 사업자가 내놓았나 보다. 겨울이면 여행객은 리프트를 타고 산에 올라가 하얗게 눈 덮인 쓰레기 산을 활강하며 스키를 타고 내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혐오스러운 무덤인 줄도 모른 채 환호성을 지르면서 말이다.

 

 청풍호로 가는 국도는 벚꽃길이 조성되어 해마다 축제가 열린다는데 그것이 어디 수몰지구 주민을 위한 축제이겠는가. 국도변에서 뻥튀기를 팔거나 오징어를 팔던 나이 든 장사꾼의 깊은 주름이 이제야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 고향 백경농원의 자랑인 사과를 팔던 노점에서 농사꾼의 자손은 무엇을 팔며 터전을 일궈야 할지, 생각조차 서글프고 착잡하다.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 가는 산신의 노여움이 어찌 없기를 바라겠는가. 마을 어귀 서낭당 당산목에 낀 푸른 이끼가 새삼 경이롭다. 신령한 세월의 흔적을 묻어야 하는 당산목 장례야말로 가장 애통한 장사(葬事)가 될 것이다. 수십, 수백 년이 흘러도 마을 터가 드러나는 이변이 생길 리가 만무하다. 수몰지역이건 매몰지역이건 고향을 장사지내는 기분은 매한가지임을 안다. 이제 고향은 귀신만 사는 폐가뿐, 깨진 옹기 조각에 마음이 베인다. 솟대에 앉아 울던 까마귀도 떠났는지 바람에 귀가 찢어진 현수막이 저 홀로 서럽다고 운다.

 

쓰레기 산을 바라보며 내 머리를 고향에 두고 싶어질까마는 오지 않을 고향의 봄을 기다리며 나는 늙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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