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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당연화(煙堂煙花) (계간지 『시에』2022 여름호)    
글쓴이 : 김주선    22-05-19 13:39    조회 : 2,373

연당연화(煙堂煙花)/ 김주선

 

 예닐곱 살쯤, 나는 담배꽃을 처음 보았다. 내 키만 한 줄기에 넙적넙적한 잎이 어긋나기로 자랐다. 나팔꽃 같기도 하고 분꽃 같기도 한 길쭉길쭉한 꽃이 우산대처럼 핀 모습이었다. 꼭지를 따 쪽쪽 빨아먹으면 벌들도 좋아할 달곰한 맛이 났다. 짓궂은 애들은 담배꽃 무덤에 둘러앉아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나도 엄마 몰래 꽃을 따 입에 물어보기도 했다.

 한여름 연초 밭에 꽃이 피면 일꾼들의 손이 바빠졌다. 예쁜 꽃구경은 사치인 양 가차 없이 꽃대를 베어내 꽃무덤을 만들었다. 서둘러 잘라내지 않으면 영양분이 꽃으로 가 담뱃잎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담배 농사는 짓지 않았지만, 영월 동강 근처에 사는 고모가 농사를 지었다. 동네 이름도 연당(煙堂)이었다. 연기가 나는 집이란 뜻으로 담배 농사가 주업인 마을이었다. 동강(東江) 주변에는 흙으로 만든 담배 건조장이 많았다. 연초를 엮어서 그늘에서 말리거나 불을 때 누렇게 될 때까지 연기에 쪄서 말리는 자연 건조장이었다. 척박한 땅의 소득을 올려 주는 효자 품목으로 꽃이 흐드러질수록 군수가 농가를 독려했다. 한량인 고모부 대신 고모가 농사를 짓느라 등골이 휘어 종종 일손을 돕는 엄마를 따라 고모네 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담배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힘에 부쳤는지 고모는 골반 연골이 닳아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노년을 보내다 돌아가셨다.

 전혜린을 흠모하던 여고 시절에 나는 담배에 관한 동경이 있었다. 꽃으로 담배를 배운 터라 맵고 쓴맛보다는 달다는 환상이 있었다. 당당하게 담배를 물고 서울대 교정을 휘젓고 다녔다던 그녀의 짧은 생이 어쩌면 나의 문학세계에 비뚤어진 객기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함께 전혜린의 책을 탐독하고 그녀의 생을 탐닉하던 친구는 독일 보훔으로 유학을 가 결국 그곳에서 뮌헨의 가로등이란 소설집을 냈다. 담배를 페미니스트의 상징처럼 이해한 우리는 슈바빙 밤거리의 가스등 아래서 자유와 낭만을 만끽하며 살자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꽃으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사탄의 행위인 양 세뇌당한 신앙 탓도 있을 테지만, 이십 대 시절 폐결핵 진단을 받고 담배는 기호품이 아닌 유해성으로 간주했다. 석회화로 굳어진 반쪽짜리 폐는 미세먼지에도 반응하는 잔기침을 일으켰다. 만약 내 폐활량이 들숨과 날숨에 최대치의 공기를 흡입할 폐용량을 가졌다면 나의 동경은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10년 여름휴가 때 시어머니와 호주를 다녀오면서 담배에 대한 수많은 동경과 은유를 지우고 고쳐 썼다.

 친정엄마랑 오는 딸은 있어도 시어머니랑 오는 며느리는 처음이라고 가이드가 나를 한껏 추켜세웠다. 여행 내내 어머니는 피로감을 호소했다. 장시간 금연으로 인한 금단증세 때문이었다. 낭만의 거리 달링하버에서 어머니가 사라져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찾았다. 어느 건물 앞 백인들 틈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신 어머니를 발견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동양인 할머니의 아우라가 전혜린을 넘어, 달링하버의 보행자 거리에서 당당하게 퍼포먼스를 하는 게 아닌가. 전 세계가 금연으로 편승하고 타인의 건강하고 직결되는 문제이다 보니 흡연자가 선 자리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 자리가 되었다. 노인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42녀를 두고 돌연사한 시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도색공사 일을 하셨다. 막내 시누가 배변을 가리고 밥숟가락을 드는 시기였고 큰시숙이 고등학생이던 무렵이었다. 시장 한 귀퉁이에서 열무 몇 단 파는 일로 일곱 식구가 먹고살기엔 역부족이었다. 마흔 살 여자의 몸으로 건설 현장에 뛰어들어 험한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하자라는 말의 의미는 잠시 쉬었다 하자는 암묵적 은어였다. 그만큼 산업현장에서의 담배 한 모금이 달콤한 휴식인 양 장려하던, 참으로 담배에 관대했던 시절이었다.

 페인트 냄새가 얼마나 독하고 역겨웠는지 두통과 울렁증에 시달렸던 어머니는 동료가 권하는 담배를 처음 피워 보았다. 약통에 담긴 소화제나 두통약처럼 담배는 고된 몸을 다독이는 약이었다. 자녀가 성장해 결혼을 시킨 후 일을 접었지만, 어머니는 담배를 끊지 못하셨다. 누구보다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시어머니의 고된 삶을 들어왔던 터라 여행 중에 흡연실을 미리 찾아드리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요즘은 담배의 자만 꺼내도 뭇매를 맞을 일이라 글에 올리는 일도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몇 해 전 모 대학교수는 대학입학 전형 때 비흡연자 우대제안을 청원했다는 기사를 읽고 흡연의 심각성을 느꼈다. 평생 담배를 즐긴 박경리 선생은 폐암으로 83세에 작고했는데, 올해 시어머니 연세가 그쯤 되신다. 몸이 편찮은 건 아니지만, 금연 클리닉의 집요한 권유가 과연 자식 된 도리일까 나는 요즘 고민이 깊다.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을 보았다/분홍 화관처럼 핀 그 꽃을 //잎을 위해서/꽃 피우기도 전에 잘려진 꽃대들/잎 그늘 아래 시들어가던/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 , 목을 칠 때마다 흰 피가 흘러/담뱃잎은 그리도 쓰고 매운가/담배 꽃 한줌 비벼서 말아 피우면/눈물이 날 것 같아/족두리도 풀지 않은 꽃을 바라만 보았다//주인이 버리고 간 어느 밭고랑에서/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 꽃의 아름다움을 알았다/하지(夏至)도 지난 여름날/뙤약볕 아래 드문드문 피어 있는/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을

- 나희덕 시 담배꽃을 본 것은전문


 연당마을은 더는 담배꽃이 피지 않는다. 9월의 연당은 붉은 메밀꽃이 지천이고 여행객이 머무는 휴양지가 되었다. 척박한 산비탈을 붉게 물들인 마을 앞으로 비릿한 강이 흐르고, 어느 시인의 마을처럼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목이 잘린 담배꽃 무덤만 전설로 남았을 뿐이다.

아름다우나 잡초보다 못한 대접을 받던 담배꽃 목을 베는 일처럼 늙은 어머니의 입술에 하얗게 피는 연기 꽃을 툭, 툭 분질러 강물에 던지고 푼 날이다. 어머니의 야윈 젖가슴을 태우는 한 많은 저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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