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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수업료 (계간지 『문학사계』2022 여름호)    
글쓴이 : 김주선    22-05-27 14:30    조회 : 4,977

인생수업료/ 김주선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운명의 도깨비와 기억상실증 저승사자가 매력을 뚝뚝 흘리며 TV 화면을 가득 채웠던 2017년 봄, 금요일이었다. 그날 밤, 큰아들은 늦은 귀가를 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재방송 드라마 도깨비를 몰아보던 중이었고, 남편은 맥주 안주로 북어포 살을 발라내던 중이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의 소인이 찍힌 봉투 하나가 아들의 안주머니에서 툭, 떨어질 때 내 심장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입대 날짜를 받아놓고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할 무렵, 아들은 아프리카TV에서 진행하는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솔깃한 시사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큰애는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는 시원한 BJ의 발언에 탄산수 같은 위로를 받고 좀 더 다양한 시사방송을 기웃거리다가 망치부인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천안함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녀석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더란다. 처음엔 아들도 동조하였으나 의혹을 사실처럼 퍼뜨리는 그녀에게 실망해 방송을 끄려는 찰라, 금기어 한마디를 대화창에 남기고 말았다.

어휴, 저 빨갱이.’

 그것이 화근인 줄 모르고 불씨를 남긴 채 아들은 2년간 군대에 다녀오고 복학했다. 신도시에 아파트 분양을 받고 입주로 들떠 있던 우리 부부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맞벌이인 관계로 우편물이 오는 낮 시간대에는 늘 부재중이어서 법원에서 날라 온 등기우편은 매번 반송되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등기우편인지 궁금하여 당사자인 큰아들을 성남 우체국에 보내 방문 수령 서비스를 신청하도록 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그 밤, 저승사자에게 온 우편물인 양 손해배상 청구소장을 받아들고는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건번호 2017가소00000의 피고인은 아이디 dm5*** 사용 성명불상자 외 6이었다. 부산에 사는 주부 김 모 씨와 우리 큰아이였고 확인되지 않은 다섯 명의 성명불상자가 더 있었다. 사건은 201410월의 어느 새벽 시간에 있었으나 2017년 봄, 아들의 전역에 맞춰 소장이 배송된 것이다.

 원고는 아프리카TV에서 인터넷 개인 방송을 하는 유명한 BJ였다. ‘망치부인이란 닉네임으로 <생방송 시사 수다>를 진행하며 방송 내용은 정치와 사회 이슈를 다루었다. 팬층이 두텁고 재방송은 수백 명, 생방송은 수천 명이 넘는 시청자가 보는 방송이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를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가 모니터 화면 가득 채워졌다.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자주 제기하는 편이므로 그녀의 발언은 반드시 자체 필터링을 하면서 보라는 경고문도 보였다. 그 의혹은 개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서 믿거나 말거나 하는 문제였기에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보는 채팅창에 공연히 원고를 모욕하는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피고인 7명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빨갱이란 단어가 들어간 댓글을 남겼다.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표현임을 익히 알고 있으나 설령 빨갱이라고 해서 원고가 공산당이란 뜻이었겠는가. 나는 슬쩍 아들 편을 들어주다가 순간, 아들을 향해 따발총을 쏘아대는 남편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놀란 반려견이 식탁 밑으로 냉큼 숨어버렸다. 담겨진 화면에는 총 3번의 빨갱이란 단어가 있었고 모두 반말투였다. 원고의 방송을 보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가 입장해 있는 대화창에 원고의 국가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빨갱이라는 표현을 써 원고를 심각하게 모욕하였다는 것이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청구 취지였다.

 비이성적인 어느 악플러는 원고 남편의 직장에도 찾아가 원고의 방송을 중지시키라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고등학교 2학년인 원고의 딸 사진을 걸어놓고 성폭력적 댓글을 달거나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는 내용이었다. 망치부인의 정신적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진술서를 읽어보니 같은 엄마 입장으로 수긍했다. 그에 비하면 아들의 댓글은 협박이라기보다는 모욕에 가까웠다니 협박이든 모욕이든 원고의 입장으로 혼내주고 싶은 상대였을 것이다.

 청구원인은 구구절절했다. 반드시 엄격한 법의 심판대 위에 세워 피해보상을 함으로써 불법적인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싶다며 절대 합의는 없다는 단호한 결론까지 썼다. 위자료는 3백만 원이었다.

 우리 아이의 댓글은 정치적 의도나 목적이 없었기에 혐의없음으로 종결되거나 선고유예의 판결이 날 것이라는 변호사의 조언도 있었지만, 남편의 종용으로 결국 합의했다. 경찰서나 법정에 끌려다니며 대응하게 두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었으리라. 사과보다는 합의금 50만 원으로 모욕 값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일단락되었다. 아들의 한 달 치 편의점 알바비는 고스란히 그녀에게 보내졌다.

 갓 전역한 녀석의 인생 수업료가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씁쓸한 뒷맛은 남는다. 피고인의 연령대는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했다. 휴학을 결심할 만큼 아들은 스트레스가 심했다. 심지어 호적에 빨간 줄이 남는지 물었다. 나는 어이없어 웃었고 남편은 순진한 아들놈의 세상살이에 따끔한 훈계를 했다.

 사람은 각자의 인생에 수업료를 치렀을 것이다. 인생 장학생으로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분들도 많겠지만, 대부분 실수와 경험을 통해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아들은 살면서 이보다 더 비싼 인생 수업료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젊은 날, 전세 계약을 잘못하는 바람에 계약금 한 푼 받지 못하고 명도소송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 아주 비싼 인생 수업료를 치렀던 경험으로 똑같은 실수와 사기는 안 당하지만, 나의 인생 수업치고는 참 비싸게 치른 셈이었다. 그에 비하면 아들은 한 과목도 안 되는 금액일 수 있지만, 인생에 있어 처음 겪는 소송이라 좋은 인생 공부였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성숙한 시청자의 입장으로 코멘트 하는 것을 배운 큰애는 요즘 새로운 시사방송을 시청한다. 정치나 사회, 시사에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 나는 아들을 칭찬해주었다. 젊은이의 올바른 국가관이나 정치관이 생기길 바랄 뿐이었다. 누군가 시사정치에 간여하고 싶다면 차라리 조목조목 반박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악플은 누가 뭐래도 범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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