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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추 (월간지 『한국산문』2022.7월)    
글쓴이 : 김주선    22-07-05 12:37    조회 : 3,765

단추

 

    김주선

  뜯어진 바짓단을 깁기 위해 딸아이가 쓰던 반짇고리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지금은 집을 떠나 독립했지만, 의상학을 전공한 딸아이의 공구함은 그야말로 보물단지다.

 물감처럼 가지런히 놓인 색실 칸을 뒤로 밀치면 쓰임도 다양한 바느질 도구들이 보인다. 키가 다른 바늘집, 제도용 자와 초크 펜, 가죽 골무 등등. 가봉 시 손목에 끼는 핀 쿠션에는 알록달록 구슬이 달린 핀들이 꽃 수술처럼 꽂혀있다. 가위의 종류도 서너 가지다. 실밥 자르는 가위, 옷본 자르는 가위, 천 자르는 가위 등, 그중 철판도 자를듯한 재단 가위는 딸 몰래 가끔 부엌으로 나오기도 한다.

 주부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도구가 아니므로, 날 잡아 딸의 물건에 손을 대고 몰래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느질거리는 까맣게 잊고 이것저것 신기하여 만져보다가 순간, 벌레라도 본 듯 기겁하여 얼른 뚜껑을 닫았다. 맨 아래 칸에 크고 작은 단추들을 가득 모아놓은 유리병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내 몸에 단추가 들러붙는 기분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털었다.

 어렸을 때 나는 단추가 싫었다. 옷을 입히고 단추를 채울라치면 숨이 넘어가도록 울며 멀쩡한 옷을 잡아 뜯어버려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나곤 했다. 공주병에 걸린 고집불통이라 그렇다며 단추 대신 리본이나 끈으로 옷을 여며 입히셨다. 단추 달린 옷을 입거나 바라보거나 만지거나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깊은 병이 되어 자랐다.

 사회생활도 문제가 많았다. 상대방이 입고 있는 옷의 단추 크기나 수, 혹은 재질과 색깔에 따라 인간관계의 폭이 좁고 제한적이었다. 맞선 자리에 넥타이로 단추를 숨기고 나온 남편 덕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단추의 공포를 극복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완치는 아니었다. 옷에 단추를 다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겨울 코트에 떨어질 듯 매달려 있는 단추를 보면 머리털이 쭈뼛 서고 팔뚝에 소름이 돋아 종종 딸아이에게 바느질을 맡겼다.

 반면, 딸아이는 천생 여자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요리를 잘했고 바느질을 잘했다. 대학에서 근현대의 복식(服飾) 문화를 공부하였고 가문과 지위를 나타내는 단추의 역사도 공부했다. 옷값보다 비싼 희귀한 단추를 수집하러 해외여행을 다녔고 꿈을 사 모았다. 자식의 꿈을 응원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했음에도 발바닥에 밟히는 어질러진 단추 때문에 나는 극도로 예민하게 굴었다.

 졸업을 앞둔 딸은 올이 굵은 직물에 다닥다닥 단추를 붙여 모자이크 기법의 장식을 만들어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꽃도 만들고 새도 만들고 사람 얼굴도 만들어 옷이며 가방이며 모든 패션과 장신구에 적용했다. 나는 질색하였다. 병이 생길 정도였다. 의복의 화룡점정은 옷을 여미고 잠그는 단추라고 생각했다. 의상에 쓰임보다는 공예와 장식예술로 거듭날수록 우리 모녀는 다툼이 잦았다.

 딸아이를 출산하자마자 급성 폐결핵이 걸린 나는 1여 년을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공갈 젖꼭지와 친할머니의 옷깃에 붙은 꽈리단추에 집착했던 아기의 결핍을 외면할 정도로 심신이 쇠약했다. 할머니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던 아이는 걸음마를 배우고 말이 트일 때까지 낯을 가리며 보채더니 조금씩 엄마를 알아갔다. 완치 후 나는 직장에 복귀하였지만, 아기는 또다시 할머니 일복에 달린 매듭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늘그막에 육아를 떠안은 시어머니는 얼마나 고달팠는지 삼대독자 손 귀한 집안임에도 손자 타령이 쏙 들어가셨다.

 우리 모녀에게 있어 단추는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딸아이는 애착 물건이 되었고 나는 이유도 없이 싫은 기피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어깨와 등이 아프고 메추리알 크기의 혹이 자꾸 생겨 나는 병원 신세를 졌다. 불혹을 넘어설 무렵에는 피가 갇혀 혈관종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했다. 불안과 긴장, 몸이 경직되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면 인체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피의 순환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잦은 재발에 한방에서는 혈행(血行)을 돕는 뜸을 권했고, 일반외과에서는 꾸준한 운동과 식습관을 바꿔보라는 상투적인 말만 하더니 신경정신과 진료도 권하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얼마나 까탈스럽고 예민하게 굴었으면 정신과로 가라 하냐!”며 식구들의 핀잔도 들었다.

 예닐곱 살 때, 영화를 좋아했던 엄마의 등에 업혀 나는 영화관에 자주 다녔다. 포대기에 업힌 채로 자는 척하며 몰래몰래 영화를 훔쳐보았다. 목부터 단추가 빼곡히 채워져 있는 진한 보라색 블라우스를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 어느 여배우의 블라우스 단추를 남자배우가 하나하나 푸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거의 매일, 단추를 푸는 동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어린 내 몸에 얼음 땡놀이를 하였다.

 단추 장애의 시발점이 이때 본 성인영화의 한 장면이라는 것을 상담 치료 중에 알게 되었다. 성을 구별하고 의식하고 태도나 행동이 생물학적 성에 따라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유아기의 잘못된 경험이 장애를 만든 이유였다.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 빗장뼈와 어깨 근육을 잡아당기고 온몸이 오그라드는 아픔 속에서 알게 된 것이다.

 누구든 살아가며 한두 가지 정도 크든 작든 트라우마 증세에 시달린다지만, 조그만 단추 하나가 건강을 위협할 힘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바늘이나 모서리 같은 뾰족한 물건에 대한 트라우마는 흔했고 단추나 동전을 삼켰던 경험이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명상과 요가로 몸의 경직을 풀어주는 훈련을 꾸준히 해 오면서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된 셈이었다. 아직도 내 등허리엔 제거하지 못한 혹이 두 개가 더 있다. 생명엔 지장이 없으므로 그냥 두고 볼 참이다.

 애지중지 손녀를 키워 주신 할머니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딸아이는 겨울 외투처럼 촘촘하게 마음을 잠그고 슬픔 속에 살더니 서른 즈음 동대문시장에서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벌써 다섯 해가 흘렀다.

 햇볕이 잘 드는 거실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아 다시금 딸아이의 반짇고리를 열어본다. 유리병에 부딪힌 햇살이 형형색색의 단추 속에 스며들어 반짝거린다. 병을 깨고 나오려는 딸아이의 꿈인 듯, 눈이 부시다. 중고시장에 재봉틀을 내다 팔고 신줏단지 같은 단추를 가둔 엄마를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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